지난주 듀게에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에 대한 브레이크뉴스 기사가 링크가 되었었지요. 몰랐는데 그동안 꽤 여러 기사에서 브레이크뉴스는 해당 사건 피고인 3명 중 1명의 억울함을 대변하며 실명을 공개했었더군요. 오늘도 하나 올라왔고요. 기사의 요지는 다른 두 명은 성추행에 가담했지만, 배모씨(뉴스는 실명을 깠지만 일단 전 익명으로 가겠습니다)는 그런 둘을 제지한 사실만 있을 뿐, 추행은 하지 않았는데 별다른 증거도 없이 피해 여학생의 진술에만 의존해 배씨까지 유죄판결을 받았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 '도가니'의 개봉 여파로 재판부가 무리했다는 주장도 있고요.

 

모든 사건에서 사실 판단에는 한계가 있고, 아무리 열심히 진실 판단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오판의 소지는 늘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도 누군가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현장에 없었던 제가 말하기는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이런 성추행 사건의 진실은 복마전처럼 얽혀있는 경우가 하도 많아서 말이죠.

 

다만 현재 브레이크뉴스는 배씨의 주장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면서, 법원이 배씨를 유죄라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별로 다뤄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듀게에서도 그렇고, 뉴스 댓글에서도 ‘정말 법원이 증거도 없이 배씨를 유죄판결 한거냐’고 수군거리는 움직임도 있고요. 궁금해서 찾아봤네요.

 

1. 1차 추행이 시작된 상황

 

배씨에 따르면, “술자리가 이어지던 밤 11시 40분경 여학생 D가 양쪽에 앉아 있던 한 과 박 의 어깨에 잠깐씩 기대다가 한의 무릎에 누웠다. 저와 박은 두 사람이 공개 키스를 한 일도 있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기에 둘 만의 시간을 가지라며 밖으로 나와 승용차로 간 후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한씨가 평소 피해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두 명의 남학생이 둘만 있게 두고 방 밖으로 나갔다고 나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건데, 이렇게되면 연인 간에 좋은 시간을 준 것이 아니라 추행의 기회를 제공한 게 되어버리죠. 특히 이후의 상황을 보면, 나갔던 박씨가 들어와 피해자를 추행합니다. 둘이 좋아하는 사이라서 배려하느라 자리를 피한 거라면 들어와서 추행을 시작한 박씨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고, 게다가 한씨는 박씨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추행하는데 화내거나 말리지도 않고 나가버린 게 됩니다.

 

2. 1차 추행에 대해 배씨가 학교 양성평등센터에 보낸 이메일에 대하여

 

배씨는 사건 조사가 시작된 후, 학교 내의 양성평등센터 상담원에게 이메일로 진술서를 보냈습니다. 이 때 피고인 한씨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피고인 박씨가 피해자의 상의와 브레지어를 끌어올리고 가슴과 배를 만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이래도 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피해자에게 다가가 피해자의 가슴과 배를 손으로 한번 쓸어내렸다는 취지로 기재하였습니다. 이게 일종의 자백으로 인정되어 법원에서도 중요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배씨는 경찰에서 강압적인 수사를 받았는데, 양성평등센터에서는 경찰에 진술한 내용을 그대로 보내라고 수차례 압박했다, 추행했다고 시인한 것이 아니라 옷을 내려주면서 피해자의 가슴에 잠깐 접촉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낸 것이다, 등으로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양성평등센터는 수사기관도 아니고, 배씨는 처음에는 양성평등센터의 면담요청을 거절하다가 경찰 수사 후 10일이 지난 때에 경찰이나 상담원의 입회 없이 혼자서 진술서를 써서 보냈으니 진술서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고(경찰에서의 진술이 강압에 의한 허위였다면 이번에라도 바로잡아야 할 상황), 다른 사람의 개입 등으로 진술이 왜곡되거나 허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작을 뿐 아니라 그 진술에 신빙성도 있다고 할 것인데, 배씨는 위 진술서에 피해자의 상의 티셔츠와 브레지어를 언급하거나 이를 내려주려 하였다고 기재하지 않았고, 그 문언상으로도 가슴과 배를 쓸어내렸다는 표현이 피해자의 상의와 브레지어를 내려주려고 한 행동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보기도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3. 경찰이 강압수사를 했는지

 

배씨의 주장을 기사에서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한은 이날 조사 상황과 관련해 법정에서 '경찰관이 여학생 D의 진술서를 보여주면서 배씨가 만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유치장에 쳐 넣는다고 하여 진술한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나에게도 경찰은 '피해자가 진술한 취지대로 진술을 하면 금방 끝날 것이고 아니면 큰일 날 줄 알라'고 겁을 주면서 강간을 했냐고 집요하게 추궁했었다.”

 

“경찰은 금방이라도 구속을 할 것처럼 겁을 주면서, 제대로 진술하면 집에 보내주고 또 없던 사건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진술 했을 뿐이다. (기사를 그대로 땄는데, 아마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진술했을 뿐이다’가 맞는 내용일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경찰에서 강압수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별다른 판단은 하지 않았고, 다만 경찰조사가 끝난 후 충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양성평등센터에 보낸 이메일 내용이 경찰 진술과 일치하고, 다른 피고인의 초기 진술과도 맞아 떨어지는 걸 보면 진실된 자백인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씨가 강압수사를 당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최초 경찰조사 당시에는 피해자가 배씨의 1차추행 가담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2차 추행에만 배씨가 가담했다고 진술했었는데, 그런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해 배씨가 1차추행에 가담했다고 강압에 못이겨 진술해야 했다는 점이 말이 안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좀 찜찜한 면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물고문, 전기고문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저런 사례를 보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이리 저리 얼러대며 마치 자백하면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것처럼 꼬시는 것은 경찰에게는 강압수사가 아니라 일종의 정상적인 수사 스킬처럼 받아들여지는듯 해서 말이죠. 이래서 금태섭 변호사는 검사 시절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해 “변호사가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 바 있죠.

 

4. 다른 가해자들이 배씨의 결백을 주장했는지

 

박씨는 처음에는 배씨가 함께 추행을 했다고 진술하다가, 중간에 배씨의 범행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에 대해 배씨는 ‘처음에 강압수사에 의해 그런 진술을 했다가 진실로 돌아선 것’이라고 보고 있고, 법원은 ‘처음에 맞게 진술했는데, 변호사를 선임하고나서 변호사가 니가 한 것은 사실대로 진술하고, 다른 피고인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진술하라고 조언해서 말이 바뀐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추행을 했으면 바로 옆에서 같이 했는데, 했으면 했고 안했으면 안했지 ‘모르겠다’거나 ‘기억이 안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했네요.

 

5. 2차 추행 시에 배씨는 자느라 추행에 가담하지 않았는지

 

추행은 새벽 4시 경에 다시 한 번 일어납니다. 이때 한씨는 완전히 빠져있고, 박씨와 배씨만 등장합니다. 배씨는 본인은 잠들어서 깨지 않았기 때문에 추행에 전혀 가담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고, 피해자는 배씨의 추행을 주장하면서 다소 오락가락하는 진술을 합니다. 그래서 배씨는 피해자의 진술이 문제가 있고, 본인을 박씨로 착각해서 본인을 추행범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가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카톡 내용이나 녹취 내용에서도 본인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고 있는데, 나중에 난데없이 본인까지 끼워넣고 있다고 말이죠.

 

피해자는 배씨가 본인을 추행했고, 본인이 움직이자 “얘 기억하는거 아냐?” 라고 말했다고 계속해서 진술합니다. 다만 그런 말을 잠결에 한 것 같기도 하다거나, 중간에 배씨는 아니고 박씨만 추행했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조사를 받으면서 최종적으로는 둘 다 추행에 가담했다고 결론내고요.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믿었습니다. 배씨에 대한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처음엔 1차 추행에 배씨가 가담하지 않은 걸로 알고있었기 때문에 배씨가 2차 추행에 끼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고, 처음엔 신중하게 답하느라 잠결이었을지도... 라고 했지만 결국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게 되었고, 둘이 의대 6년을 함께 보낸 것과 당시를 기억하는 정신상태를 보면 배씨를 박씨로 착각한 것 같지도 않다고 보았습니다.

 

판결문에서 이 부분이 가장 아리까리한 부분입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해 판단 내리기가 가장 어려운 이유가 피해자 진술이 오락가락 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가해자측에서는 ‘거짓말이라서 그렇다’고 하고, 피해자측에서는 ‘그런 피해를 입어 정신적 충격이 큰데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기억하고 일관성있는 진술을 하기는 어렵다’고 하지요. 법원은 이 사건에서는 결국 약간의 착각, 과장이 있었을지 몰라도, 추행을 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배씨가 억울할만한 포인트가 있다면 여기가 될 것 같네요.

 

6. 기타 등등

 

배씨는 피해자에게 문자를 보내 본인들이 못된 짓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자책한다, 미안하다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또한 자백으로 취급되었고, 배씨는 본인이 추행을 했다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추행을 말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배씨는 2차 추행 당시 피해자가 술이 깨어 멀쩡했으므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볼 때 항거불능이 맞다고 보았고요. 배씨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대법원이 사실심은 아니고... 대법원에서 붙어볼 때 그나마 가능성 있는 부분이 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항거불능 상태에 대해 잘못 판단했다는 식으로요.

 

배씨는 피해자를 비난하면서 ‘남자친구의 정액이 묻은 속옷을 본인들을 강간죄로 고소하면서 증거로 냈다’고 했습니다. 법원에서도 처음에 일단 강간으로 고소한 부분은 과장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한씨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좋은 시간 보내라고 둘만 남겨두고 방을 나가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행동인가 하는 겁니다.

 

가해자의 주장이 거의 유일하게 먹혀 들어간 부분은, 새벽 4시에 있었던 2차 추행이 그들끼리 공모해서 합동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분리된 추행이었다는 겁니다. 뭐 결국 ‘준강제추행’이라는 죄명 앞에 ‘특수’가 들어가냐 안들어가냐의 차이이고, 그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항소심에서 그게 받아들여졌지만 형량에는 변화가 없었네요.

 

이 사건은 여러 모로 씁쓸한 사건입니다. 젊은 시절을 올인해 이제 곧 의사가 될 수 있었던 청년들의 인생이 망가진 면에서도 그렇고, 예비의사씩이나 되는, 배울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했다는 점(배씨를 뺀 두 명은 혐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에서도 그렇습니다.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한 명을 빼고, 나머지 둘에 대해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고, 이렇게 서로의 주장이 엇갈릴 때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제가 판단내리기도 어렵습니다만... 이 사건에 대해 초반에 뜨거웠던 언론의 관심이 식은 상황에서 브레이크뉴스가 배씨의 결백함을 대변하고 있는데, 왜 판결은 반대로 가고 있는건지 호기심에 알아보았다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공유해봅니다.

 

p.s. 판결문을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신상보호를 위해 피고인들의 이름 등을 익명화 처리하고 있습니다. 근데 법원 담당자가 급하게 작업을 했는지, 전혀 가릴 이유가 없어보이는 부분이 가려져 있기도 하고, 기껏 다 익명화 해놓았던 피고인의 이름이 한 부분에서는 안가려져 있기도 하네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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