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2012.05.31 08:27

being 조회 수:2906



1. 


100권 프로젝트 13번째 책입니다. 읽은 책들은 몇 권 되는데 글을 계속 안 남기게 되네요. 한 두 줄이라도 써서 기록 남기는게 좋을 듯 한데.






13.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조정래 작가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원래 소설 잘 못 읽는다. 장편소설은 더 못 읽는다.(라지만 삼국지나 드래곤라자 같은 건 읽..) 쉽고 가벼운 실용서적이나 논픽션, 아니면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좋아한다. 하지만 계속 이런 류만 읽다 보니 영혼이 강퍅해지는 것 같아, 문학과 이야기와 예술의 향기에 심취하고, 한국 소설 대가의 단련된 문장력도 맞보고자, 한국 유명 소설가분들 이름을 검색한 후, 그 중 한 분인 조정래 작가님을 선택, 이 분의 산문집을 찾아보았다. 그리하여 찾은 책이 이 <황홀한 글감옥>. 문학의 향기를 느끼자 놓고 산문부터 찾는 나도 참.. 고백하면, 김훈 작품 중 읽어보고 싶은 책도 <칼의 노래>가 아닌 <밥벌이의 지겨움>이다. 헌데 품절. 난감. )


책을 주문하여 좀 읽어보니, 단순한 산문이 아니라 작가의 자전소설, 자서전으로 봐도 될 내용이었다. 난 (자서전 주인이 직접 쓴)자서전이나 개인 인생사가 풍성히 언급된 에세이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도 정말 좋았다. 더구나 그 주인공이 장편을 3부나 완성해낸, 정말 대단한 작가 아닌가.


책은 시사IN 인턴기자들이 작가 조정래에게 보낸 각종 질문에, 조정래 작가가 하나씩 대답해주는 형식이다. 인턴기자들의 질문은 문학과 예술과 사회의 관계, 소설가 작가 되는 법부터 창작실기론, 한국의 정치, 역사, 사회에 대한 문제, 조정래 작가의 개인 에피소드까지 광범위하다. 하지만 질문자들 대부분은 조정래 대하장편소설 팬이라(당연하지 않은가) 질문 중 1/3 이상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대한 것이었으니, 소설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인생을 보는 관점과 소설가로써의 마음가짐이 진하게 녹아난 대답들, 작품을 창조고 대하소설을 쓰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 그리고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즐거이 읽은 것 같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책을 읽은 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감흥. 


소설가는 문장과 단어를 정말 소중히 여기는구나.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인터넷에 막 갈기며 쓴 글을 읽으면 정말 스트레스겠다. 책 중간에, 질문자의 문장 오류를 교정해주는 부분도 여러차례 나온다. 듀게의 작가/편집자분들이 맞춤법, 문장구성에 민감하신 이유가 있었군. 정말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막 쓴 글들 읽다 보면 참을 수 없으실 듯..


또 조정래 선생님은 소설가로서의 문학관, 역사관,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이, 상당히 젊은 나이부터 확고하셨던 듯. 그리고 그 후 흔들림 없이 그 가치관을 장편소설을 한부 두 부 써내시며 실현시켜 나가셨다. 가치관과 실제 삶의 모습이 정확히 일치되는 보기드문 경우. 이 나이 되도록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이 애매한 나는 정말 부러웠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었을까. 어릴 때 부터 책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셨나? 


개인사적으로는 아내자랑, 손주자랑 등 팔불출이실 때가 가장 흥겨웠다. 특히 아내자랑이 깨알같..ㅋㅋㅋ  김초혜 시인 시집은 100만부나 팔렸다며, 소설보다 시가 우월하다며, 사모님 이야기하실 때마다 존경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으시던데, 읽기 즐거웠다. 또 승려셨으며 시조시인이셨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모조리 싹 다 좋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자질면에서. 장편소설의 그 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사전메모나 기타 복잡한 연대표와 관련된 정보정리를 안 하신다는 것으로 보아, 또 개인사 중 기억력이 탁월한 일화들로 미루어보아, 머리가 아주 아주 좋으시고 특히 기억력이 탁월하신 듯. 이런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 지독한 노력까지 하니 대가가 된 건가. 아니면 노력하며 꾸준히 쓰다 보니 저런 능력이 탁월해진 것인가.


결정적으로, 자기관리가 정말 철저하셨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달리기를 하며 꾸준히 글을 쓰는 등, 자기관리 참 철저하던데. 유명 작가들의 일화를 접할 수록, '작가'는 술 담배 많이 하며 데카당트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사실 편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가들 중에는 오히려 수도자 같이 철저한 자기관리 하에 단순한 삶을 살아내며, 매일 지켜야 할 작업량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실하고 독한(!) 분들이 월등히 많았다.  


조정래 작가는 매일 30페이지의 원고를, 하루도 빼지 않고 써내셨다 한다. 전문 작가가 아닌 나는 이 분량을 매일 써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잘 안 온다. 몇 시간 걸려야 쓸 수 있는 분량인지, A4로 몇 페이진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시시한 인터넷 잡글이나 단순 레포트로 그만한 분량을 끄적이는 것과, 장편 대하소설의 일부로 돈을 받고 독자에게 선보이기 위한 프로의 글로써 매일 그 분량을 써 내는 것과는 소모되는 정신, 신체 에너지의 차원이 다를 것 아니겠나. 대강 짐작건대 살인적인 일정이라는 것만 알겠다. 그래서인지, 그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글을 쓰다 건강이 심하게 상한 후, 건강관리를 위해 맨손체조를 매일 3차례, 정해진 시간에 실시하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는 등 건강에도 꾸준히 신경 쓰신다고. 산책이나 맨손체조도 시간을 정해서, 하루도 빼먹지 않으려 하신다는 부분을 읽으며, '난 왜 이렇게 못 살까...' 하는 자괴감과 '나도 배우자.'는 의욕이 동시에. 이런 자기 자기관리를 이야기하는 이 부분은 서너 번 넘게 정독한 것 같다. 요새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은 직업이나 하는 일을 불문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


전반적으로 훌륭한 문장을 구사하는 한국소설가의, 즐길 것 많고 배울 것 많고 느낄 것 많은 개인 자서전격 수필(?)집. 정말 오랜만에 두 번 읽은 책. 작가 장편소설의 팬이라면 정말 금광같은 책일 듯. 아직 이분의 장편소설을 안 읽은 입장에서는, 어른의 충고를 듣고 싶을 때, 엄격한 자기관리를 통해 대가로 성장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또 꺼내 읽을 것 같은 책. 



p.s.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중 하나는 꼭 읽어보고 싶은데, 뭐 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보류 중. 뭐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_-








2. 


새벽에 일어나서 느낀 점. 아침이 정말 길구나. 도서관 가야 하는데 시간이 안 되어서 안 가고 독후감이나 쓰고 있는 중.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그런데 내가 내린 드립커피 좀 맛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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