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BS 스페셜을 동행, 동물 행복의 조건을 봤습니다. 


정신건강을 위해 탄수화물에 치우친 식습관을 교정하겠다며 먹기 싫은 고기와 콩, 견과류 따위를 열심히 씹으며 훈제 닭가슴살을 5kg를 주문해야 하나 10kg를 주문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 동행은 보기 괴로운 프로그램일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봤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고 '아 ㅅㅂ 그래서 어쩌라고!!' 싶은 짜증이 생겨도 그 감정도 가만히 지켜보면서 프로그램도 끝까지 보자고 생각하고 봤습니다. 아마 프로그램 마지막에 나온 "(괴로워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요지의 생각을, 저 역시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당장 채식 실행이나 건강하게 생산된 고기'만' 사 먹는 등의 실천은 진지하게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똑똑히 보고 잘 기억하자. 괴롭고 불편해도 외면하지는 말자. 뭐 이런 정도의 생각. 이게 지금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그리고, 보기 잘 한 것 같습니다. 


보기 괴로운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알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산업화, 공장화된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강퍅해지는 심리를 이해하는 개념 중 하나로 반동형성이 언급되었는데, 진심으로 이해갔어요. 진정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정신적으로 붕괴되지 않기 위해 흔히 동정심과 공감능력을 마비하고 할 수 있으면 감정도 묻어버리고 이성적인 척 쎈 척 거칠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안 그러면 정말 강한 사람이 아니면 정신이 쉽사리 붕괴하니까. 구제역 때문에 산 동물을 매장하는 일을 진행하시던 공무원 중 한 분도 과로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사망하시는 일도 생기지 않으셨던가요. 그러고보니 제가 감정을 마비시키려고 부던히 노력했던 학창시절도 객관적으로야 평온한 시절이었지만 주관적으로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을지도? 음? 생각해보니 뭔가..??


그리고 밝은 장면들은 정말 좋았어요.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집에서 기른 염소에서 짠 젖으로 만든 염소 젖 치즈를 호밀빵에 발라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감동적이었던 것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더 동물의 온건한 대우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점? 이게 일반적인 통계일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TV에 등장한 동물보호(?)활동에 주도적으로 행동중인 미국인들은 그랬습니다. 다리나 팔에 문제가 있거나, 자폐증 경력이 있었거나. 덕분에 뭔가 저도 동참해야 할 것 같은 동질감이 생기기까지 했어요. 얼..나도 문제 좀 있는데 ㅋㅋ 이런?




2.


동행을 보는 내내 제 품에는 간식을 게걸스럽게 먹다 결국 체해서 구토를 십여 차례나 해댄 즤집 강아지가 축 늘어져 있었어요. 안고 토닥이다 가끔 눈을 맞추고 따뜻한 말을 해주고, 척추뼈를 하나 하나 눌러가며 마사지를 해줬죠. 이 글을 쓰는 지금 강아지는 자기 몸을 제 옆구리에 완전히 딱 붙이고 있어요. 머리 앞발 옆라인 뒷발 싹 다요. 평소에는 엉덩이 정도만 느슨하게 제 얼굴에 대고 자는데 (하필 얼굴에. 이년!) 오늘은 자기가 아프니까 그런가 전신을 제 몸에 완전 밀착. 싸랑스러운 것.


그런데 돼지는 개보다 더 똑똑하다던데. 어린 시절 외가에서 본 소도 감정이 풍부했어요. 오늘 방송에는 닭들도 감정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상당히 똑똑하다는 이야기가 얼핏 나왔어요. 학대받다가 구조 된 가축들에게 반려동물에게 대하듯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도 많이 나왔고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고기를 생산할 목적으로만 길러지는 그들도 감정이 풍부한 생명체들이라는 것. 동물농장에서도 맨날 보는 이야기이고,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아서 동물들을 많이 접하기도 했고요. 


그냥 이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동물보호 운동이 활발해지기 이전에도 수천 년 전부터 일부 종교의 교리나 수련을 목적으로 한 생활 규칙으로 고기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하잖아요.  육식을 금한다. 그들도 소중한 생명이다. 다 고통과 감정을 느낀다. 알아. 안다고. 그래도 우리는 잡식인걸.


전 오늘 저녁도 오리로스구이를 먹고 왔어요. 훈제 닭가슴살도 새로 주문할 거고요. 




3. 


몇 차례 채식을 시도했지만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높은 GI의 탄수화물이 아편 비슷하게 작용하는 체질인데 (탄수화물 설탕 중독증에도 잘 걸리고..정서스윙폭도 크고..혈당 관리체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채식을 하다 보면 아무리 콩과 두부를 억지로 과량 쑤셔 넣는다 해도 자연스럽게 밥 등 곡류, 떡,국수,  빵 따위의 탄수화물 음식 섭취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저는 세로토닌이나 기타 뇌내 호르몬 대사가 극히 안 좋은 케이스인데, 고기류에서 나온 질 좋은 아미노산과 V.B군이 이쪽 대사를 정상화, 활성화하는데 필수란 말이지요. 그런데 채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고기를 안 먹으니 이쪽 재료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어, 그에 따른 타격이 바로 옵니다. 


그러다 보니 채식만 하면 뭔가 저는 모르는 메커니즘이 마구 돌아간 끝에 멘붕이 오고 탄수화물 중독증세 심해지고, 결국 우울증 재발... 이 지경까지 가는데 일주일에서 열흘도 채 안 걸립니다. 덕분에 몇 차례 채식을 시도했다가, 언제나 좀비화 상태에서 채식을 포기하곤 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타의로 3개월 정도 채식을 했는데, 덕분에 명상센터에 나온 후 3개월간 추가 요양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채식 자체가 문제였는지, 제한된 칼로리 섭취와 설탕의 과량 섭취가 문제의 원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후 정신건강 목적으로 매일 제 체중만큼의 단백질g 섭취를 목표로 (물론 다 못 먹습니다.) 먹기 싫은 고기와 꽤 좋아하지만 맨날 먹다 보니 질려버린 두부, 콩을 열심히 씹어가며 고분분투하고 있습니다. 고 GI 탄수화물 줄이는 것을 최종목표로 우선 단백질 섭취부터 늘리는 것이죠. 더불어 밥도 현미로 바꾸고, 간식도 바나나나 고구마 견과류 따위를 먹으려고 노력은 좀 하지만 가끔 초콜렛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니 이건 안 될 때도 잦고요.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제 정신건강에는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과거 수차례 경험했던 그대로예요. 좀 많은 양의 단백질, 낮은 GI 탄수화물, 설탕 최대한 줄임= 상쾌하고 명석한 정신상태. 


그리고 오늘 동행을 보면서, 제가 목표로 한 만큼의 단백질을, 고기류 빼고 순수하게 콩과 야채와 견과류로만 채울 수 있을지 고민을 잠깐 해봤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콩 종류 음식을 정말 많이 먹어본 적이 있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방귀가 계속... 그나마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콩 종류는..음. 농수산물 시장을 맨날 들락거려야 하나. 콩 요리법도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죠.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고기를 만드는' 곳에서 음식을 구매해야 할까요. 비싸겠지. 흑흑. 잘 먹고 제대로 먹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몸도 부지런해야 하며 시간도 꽤 많아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픕니다. 소식은 언제나 꿈으로만. 잘 먹는건 참 어려워요. 특히 돈은 부족하고 건강에는 큰 문제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리고 사실 아직은 음식을 먹는데 특별한 철학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음식을 심하게 가려먹었다가 음식에 집착했다가 하는 사이클을 여러차례 반복했기 때문에, 우선은 음식과 좀 평화로운 관계를 만드는게 정신건강상 좋은 것 같거든요. 특정 식단을 시도하기 이전에 우선은 먹을 때 종류 안 가리고 행복하게 먹는 것 부터 연습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어떤 음식이든 기왕 외식 하게 되어 눈 앞에 놓이면 행복해하며 맛있게 신나게 먹을 수 있게. 몸에 좀 안 좋은 음식이나 금지했던 음식을 먹었다고 죄책감 같은 쓸데없는 감정 좀 안 느끼고요. 요새는 많이 그리 된 편이지만.





4. 


신화방송에서 샤이니가 나왔어요. 두 번째에요. 다 보지는 못했어요. 전진 컨디션이 무지 좋았고, 태민이가 짱 이뻤고, 전진과 동완의 공기놀이 플짤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보았어요. 아이돌이 이짝 저짝 나와 우우우 같이 논 방송을 신나게 잘 보고 난 후에는 양측 팬들이 많이 모인 인터넷 게시판은 당분간 안 보는 편이 정신건강과 예능 시청후 즐거움 유지에 좋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신화방송 감상문은 1회부터 꾸역꾸역 써서 올리겠습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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