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쉬운 사람

2010.07.27 00:37

질문맨 조회 수:4131

  "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어요. " 깊은 밤에 술병이 몇 병 비워졌을 때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평소에 괜시리 사람이 좋아 보이고 그 좋은 인상 덕분에 사람들에게서 작은 놀림감이 되는 사람에게서 더 자주 들을 수 있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술자리의 흥겨움 속에서 쉽게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겉이 유리처럼 단단한 사람은 작은 생채기라도 금방 눈에 띄기에 다른 사람들이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지만 포근한 인상을 주는 사람일 수록 그 부드러움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심한 날이 깊숙히 사람의 내면에 파고들어 어떤 상처를 내는 것인지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작은 상처 뿐일지라도 너무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기에 그 상처가 곪아서 더없는 아픔으로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겁니다. 굉장히 좋은 사람이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내는 광경은 종종 있는 일이라서 보통 사람들은 "저 사람 왜저래 평소엔 그러지 않으면서 "  혀를 쯧쯧 차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무심한 송곳같은 태도로 언제 그 사람을 아프게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은 오랜 자상으로 남지만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쉽게 알아채기 힘든 것이니까요.

 

 언어와 태도는 각자의 입장에서 조금씩 다르게 이해되고 용인되어지기 때문에 그 미묘한 차이에 의한 어긋남으로 인해 사람은 서로를 닳게 합니다. 이것은 특히 가까운 사람이고 생활의 사이클이 밀접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 미묘한 덜걱거림이 서로를 닳아내고 상처를 주다가 일탈되어 버린 톱니처럼 서로의 삶은 엉클어져 타인으로 멀어지게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삶의 부속물일테지요. 그러기에 가장 죽이 맞고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일수록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맞물리는 톱니바퀴같은 사람이라도 일방적으로 타인을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서 RPM을 올리는 것은 주의해야 할 테지요. 어느새 자신이 그 미묘한 마찰감으로 인해 다소의 찰과상을 입은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다른 사람은 불협으로 인한 더 큰 아픈 상처를 겪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기에 꼭 맞는 사람일 수록 서로에게 작은 여유가 될 수 있는 숨구멍같은 멀어짐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상처에 유리같은 예민함을 과시하는 것 또한 주의해야 할 테지요. 유리같은 예민함을 가진 사람에게 다른 이가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의 예민함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유리가 깨어질 경우 그 깨어진 유리의 파편이 날카로운 날이 되어 자신을 상처 입힐 지 모르는 경계심일 테니 말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유리가 되어 깨어져 버렸다면 온전히 시간에 맡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보듬어야 할 것입니다.  날카로운 날이 되어버린 마음의 파편은 결국 자신이 거들 수 밖에 없습니다. 자칫 자신의 상처를 방치하다가는 다른 소중한 사람이 그 널부러진 파편에 상처를 입어 또 다른 아픔의 소리를 자아내게 할 테니까요.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이 전해지듯 아픔 또한 전해집니다. 자신의 상처가 자신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면 그 아픔이 다른 사람의 아픔이 되지 않게 스스로를 감싸안을 수 있기를.  물론 이건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아플 수록 다른 사람에게 멀어지려고 하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외로움은 회복의 시간을 더욱 느리게 하는 꿈과 같습니다. 시간이 상처의 가장 큰 치료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다른 이의 삶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삶의 시계태엽을 돌려야 할 테지요.

 

 다른 사람의 눈물에 약하다 보니 괜한 오지랖으로 나서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란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 아픔만으로 그 깊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미욱한 손으로 타인의 상처를 더욱 헤집어 더 깊은 상처를 내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선의만으로는 타인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없을 테지요. 과거에 자신이 아픈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자였던 사람이 의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경험으로 예단하여 타인의 상처를 판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다른 사람이 홀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을 때 그늘이 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했건만 여전히 전 성기기 그지 없는 지라 허투른 푸념을 늘어 놓고는 합니다.  저 역시 힘든 시절에 다른 사람의 그늘에서 수 없이 울었건만 여전히 전 어른이 되기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소한 일에 기뻐하거나 사소한 일에 부글부글 끓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삶을 흘러갑니다. 막연히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스스로의 감정을 잘 알고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아무리 정교한 슈퍼컴퓨터가 복잡한 수식으로 계산하더라도 날씨를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일상의 경험들이 누적되더라도 내일의 마음을 알아차리긴 정말 어렵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이 어떤 형태일지 알아내기란 더욱 어려운 것일 테지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만나는 순간에 그건 따사로운 봄날이 되기도 하고 우울한 장마가 되기도 합니다. 아니 봄날이라도 매서운 날이 있을 테고 장마의 와중에서도 투명하도록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일 테지요.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날씨에 어떤 도덕과 고민을 과하게 담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함께하여 시즌을 구성하는 것처럼 상처를 받는 마음이 있다면 즐거움을 아는 마음이 함께하여 삶을 구성할 테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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