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외국에 왔다는 것

2012.06.20 23:00

에아렌딜 조회 수:3073

안녕하세요. 여전히 일본 생활을 보내고 있는 에아렌딜입니다.

여긴 오늘도 구름이 잔뜩이었고 지금은 밤비가 내립니다만 여러분 계신 곳은 어떠신지요?

날씨가 안 좋았던 것인지 왠지 센티멘탈한 글이 많이 보이는군요.

그 센티멘탈함에 숟가락 하나 얹어봅니다.


저의 오늘은 새삼 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다행히 그리 바쁘지는 않은 하루였습니다만 뭔가 할 일이 없다는 것, 뭘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참 고역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혈압인 탓인지 낮 동안은 도무지 정신이 안 듭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아서 내내 꾸벅꾸벅 졸곤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심스럽군요.


머리가 잘 안 돌아간 탓인지, 아님 저의 모자란 일본어 실력 때문인지... 사람들 말을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대화를 하는데 반도 알아먹질 못하겠더군요. 

물론 외국어인데다가 대화의 맥락도 전혀 모르고, 방송이나 교재가 아닌 사람들의 평범한 대화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나름 일본어 듣기는 어느 정도 된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건만, 역시나 좀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외국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전까지는 자각이 없었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닌데... 왜인지, 정말로 낯모르는 세상에 왔구나, 낯선 땅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소외감을 느꼈어요.


이상하지요. 한국에서도 딱히 누군가의 무리에 끼어서 활발하게 대화하거나 하는 편은 아닌데 말이에요.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한가로이 자신만의 생각을 즐기곤 했는데.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어떤 때보다도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는군요.

자신이 선택한 고독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뭔가 즐거워보이는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울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나쁜 습관이 또 도질 것 같았어요.

누군가가 절 보면서 웃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습관이요.

누군가 날 보면서 친근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살갑게 대해주지 않으면, 날 미워하거나 경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뭉클뭉클 피어나는 겁니다.

강박증이 아닐까 의심될 지경이지요. 참 나도 내가 이상해요.

누가 날 미워하거나 하는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날 미워하고 뒤에서 욕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속 한 구석이 불안해지고 있어요.

그냥 낯설은 것 뿐일거야, 라고 자신을 달래보지만... 의심은 굴뚝의 연기처럼 무럭무럭 피어나기만 하고, 제 마음도 시커멓게 그을리는 것 같네요.

원래부터 친화력이란 게 제로에 가깝다보니 누군가에게 잘 해주거나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건 너무나 힘들어요.

뭔가 물어볼까 하면서도 자꾸 쭈뼛쭈뼛, 눈치만 보게 됩니다.


하아. 

큰일이에요.

어서 대화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빨리 대화에 익숙해져야 전화예약도 받고 프론트에서 손님 접수도 받고 할 텐데. 

또 대책없이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의 몇 분은 일본어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지만... 

저언혀 아닌 것 같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네요.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라곤 했지만 제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지요.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지만, 속을 잘 알 수가 없다는 것도 난점이에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금 많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사람 대하는 건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어렵군요.


자꾸만 굳어지는 제 얼굴 근육도 곤란하기 짝이 없네요.

안 그래도 무뚝뚝하고 불퉁해 보이는 얼굴이라서 자꾸 웃어야지 웃어야지 하고 생각은 하는데, 또 대화를 하거나 하면 웃어지질 않아요. 

자연스럽게 웃음이 묻어나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요. ㅠㅠ


에고고. 

내일은 여기에 호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호우 덕분에 손님이 없을 것 같지만 손님이 없으니 뜨거운 물이 안 나와서... 어떻게 씻을지 고민을 좀 해야겠습니다.

아침에 냉수로 머릴 감았더니 머리가 좀 아프더군요. 


한국은 지금쯤 한창 덥겠지요.

듀게 여러분도 더위와 냉방병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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