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엔 화씨 451의 센스없는 자막이라고 달아놓았습니다만,

서울아트시네마의 한글 자막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이번 회고전에 온 프린트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스페인어 자막에 대한 성토.

(근데 스페인어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화씨 451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는 자막이 없습니다.

오프닝 크레딧, 주연 누구누구, 감독 누구를, 나레이터가 음성으로 읽어주죠. 

극중 책이 없는 세상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인상적인 장치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 회고전에 온 프린트는, 그 오프닝 크레딧에서...

세상에, 자막을 화면 가운데에 딱 박아놓은 겁니다!

그것도 글씨체까지 나름 신경써가면서, 최대한 본래 있던 자막인 것 처럼 정성스런 레이아웃으로!

그냥 대사 자막처럼 화면 하단에다가 대충 박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정말 이런 과도한 친절을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스크린에서 이 영화를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인데, 이거 참 아쉽습니다.



*

화씨 451을 보면서 '줄리 크리스티 연기 괜찮네, 1인 2역을 재미있게 잘 했네'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나중에 찾아본 당시의 평론을 보니 "줄리 크리스티는 확실히 연기를 할 줄 모른다. 1인 2역이라면서 다른 건 가발 모양밖에 없어"라는 글이...

음, 저는 배우 연기도 볼줄 모르는 바보인 걸까요.

줄리 크리스티의 외모에 빠져서 판단력이 흐려진 건지도.



*

라스트의 눈 오는 장면은 다들 참 인상적인 씬으로들 꼽는 부분인데,

알고보니 본래는 그냥 쨍한 날에 찍어려던 게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갔다고 하는군요.

전 노인이 조카에게 책을 계승하는 장면과 더불어 "당연히" 시간의 경과를 나타낸 건줄 알았는데.

만일 예정대로 쨍한 날 라스트씬을 찍었다면 지금처럼 서정적인 낭만은 없었겠죠.

레이 브래드버리 본인도 좋아한 장면이었다고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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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일요일'은 "명탐정 바바라와 궁상맞은 파트너의 모험"이란 부제를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원제는 "아싸, 드디어 일요일!" 정도 되려나요? 

오프닝 타이틀을 보니 원작 소설의 제목이 대충 "기나긴 토요일 밤" 쯤 되는 거 같던데.

왠지 직장인들을 위한 제목같네요.


트뤼포 영화 속의 파니 아르당은 트뤼포 영화 속 여인들의

긍정적인 엑기스만 뽑아다가 모아놓은 결정체처럼 보입니다.

그 화사하고 활기넘치는 모습은 다른 어떤 명배우들로도 대체를 못하겠더군요.

(니가 '이웃집 여인'의 결말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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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신부'는 "검은 옷의 잔느 모로와 5인의 찌질이들"

아아, 트뤼포 영화의 남자들은 주인공이고 악당이고 조력자고

어쩌면 하나같이 이렇게들 찌질한지.

근데 요새 어떤 영화들에 나오는 찌질이들과 달리 지식인인척 잘난체 하지 않아서 그런가요.

찌질한 주제에 은근히 마초적인 것들이 밉상맞긴 해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진 않습니다.

사실 비련의 신부에 나온 찌질 5인방도 '쟤들이 죽을 죄를 지은 건가?' 갸우뚱하긴 한데

정작 죽을 때는 낄낄낄 웃으면서 잘죽었다(?)고 좋아하게 되는 게 관객의 심리.


잔느 모로는 이 영화에서 살도 많이 붙어보이고 이상할 정도로 나이들게 나와서

극중 여주인공을 그린 그림들이 잡지에 포토샵 보정한 화보들로 보일 정도인데,

근데 또 이상하게도 그런 잔느 모로가 날카롭게 콕 찌르는 매력을 풍깁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옆에 서 있는 금발 미녀가 더 날씬하고 이쁘지만

남자들이 잔느 모로만 바라보는 게 당연히 이해가 되는 상황.

이런 게 무비스타의 힘인가요.


근데 제목은 검은옷의 신부이지만 정작 흰 옷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

마지막엔 심지어 얼룩말같은 옷을 입고 나왔죠.




#

부부의 거처에는 일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죠.

예전에 이런 캐릭터를 봤다면 "뭐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정수를 농축해서 썩힌 캐릭터가 다 있어?!"라고 불만이 가득했겠지만,

요새 이런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아아... 그래 저런 사람 정말 있긴 있지..."라는 생각이 먼저듭니다.

불쌍한 앙투안. 바람 피운 건 니 잘못이지만 일본 여자라고 다 꽃에다가 쪽지 말아넣어서 밀당질하는 건 아니란다.


그리고 제가 본 회차에서만 그랬는지 몰라도,

극중 크리스틴이 분장하고 앉은 그 장면에선 (스포일러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관객들이 다 빵 터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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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H 이야기를 이제서야 봤습니다.

옛날옛적 꼬꼬마 영화광 시절부터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았던 영화 중 하나.

지금와서 보니, 뱀파이어 이자벨 아자니는 늙지 않는 여배우가 아니었군요.

(뭐 요새 사진을 보면 그것도 옛날 이야기입니다만...)

이자벨 아자니는 항상 그대로 젊었던 게 아니라,

젊은 얼굴의 이자벨 아자니 이전에 "젊은 게 아니라 어린" 버전의 아자니가 있었던 거였습니다.

근데 20살 쯤 되는 신인 시절의 아자니가 여전히 이자벨 아자니스러운 광적인 연기를 한다는 게 참...

그래도 다른 영화에서처럼 무너질 거 같이 불안한 모습이 아니라,

트뤼포 영화의 여주인공들이 그렇듯 뭐랄까요... 자기파괴적인 순간까지도 믿음직스러워보인다고 할까.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이라기보다는 요새말로 정신승리(!)의 극한을 보여주는 캐릭터니까요.

실제 아델 H는 몰라도 극중의 아델 H는 자신만의 정신 세계 속에서 즐겁게 잘 살았을 것만 같습니다.

근데 그런 아델 H에 맞서서 끝까지 버티는 핀슨군도 어찌보면 대단하죠. 요새말로 멘탈갑.


트뤼포 영화가 항상 그렇지만, 분명 비극적인 스토리이인데

왠만한 코미디보다 더 많이 웃으면서 봤던 거 같습니다.




#.

며칠전 질문 올렸던 이웃집 여인의 그림은 아직도 못찾았습니다.

구글링 한참 하다가 포기. 저한테 물어본 그 친구도 여전히 못찾은 듯.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mithrandir&document_srl=4268445


그래도 듀나님이 올려주신 사진은 잘 보았다는.

사실 저도 검색했을 때 그 사진들이 먼저 뜨길래 순간 뜨악했어요.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djuna&document_srl=4268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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