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반미의식에 대해

2012.07.05 16:07

bulletproof 조회 수:2362

전 진보진영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이 전지구적인 패권국가이며 많은 영역에서 상당한 정도로 자국중심주의,이기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중에서도 이나라가 법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진일보한(진보란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쓰지 않겠습니다) 국가라는 사실, 그것이 또다시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진보세력이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판례가 나왔죠. '오바마케어'라고도 불리는 국민건강보험이 연방대법원에서 합헌 결정을 받은 것입니다. 개인에 대해 특정 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것이 연방정부의 권한 중 하나라고 인정된 것입니다. 미국 대법원의 판례는 실질적으로 다른 사법체계를 가진(극단적으로 신정일치 사회인 아랍이나 사법부가 제대로 독립되지 않은 중국같은 나라를 제외하고) 나라들에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미국이란 나라의 정치적 영향력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판례가 없거나 법적 판단근거가 애매모호한 경우 법관들이 미국의 판례를 참고하는 게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한국에서도 국민건강보험의 위헌여부가 헌법재판소에 올라간 상태죠. 전 이번 미국의 판결이 꽤나 많은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지배계층이 미국을 사모(?)하는 나라의 경우에는요.

굳이 카터, 레이건이 김대중을 살리기위해 박정희 정권을 압박한 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진보세력은 전세계적인 패권국가가 하필 미국이라서 생긴 이점들에 대해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홍콩의 사례를 보더라도 패권국가가 어디냐는 정말 중요하죠) 미국사회가 WTC 주변에 이슬람사원 건립을 허용한 일련의 과정은 개인의 권리와 시민권 보장에 대한 미국인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죠.위선적인 톨레랑스가 아니라요. 프랑스에서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걸보면 알 수 있듯이 감성에 호소하는 진보성은 쉽게 전복되기 마련입니다.

얼마 전 국내 최대 진보매체에서 오바마의 Cultural War 선거전략에 대해 비판적 늬앙스를 내비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오바마 정권의 보수적 속성을 감추고 진보성을 가장하기위해 동성애이슈를 건들이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물론 오바마가 동성결혼에 대해 찬성입장을 밝히기 전에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이해득실을 따졌을 겁니다. 정치인이 그정도 노련함도 없다면 오히려 문제겠지요. 근데 국내의 진보언론은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제대로된 논평을 해주기는 커녕 반미 반제국주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게 고작입니다. 이정도면 진보진영에게 있어 반미란 거의 관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미국에선 오바마선언 이후로 인종그룹중에서 가장 낮았던 흑인들의 동성결혼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극마초적인 힙합계에서도 커밍아웃을 하는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등 실질적으로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죠. Jay-Z도 찬성입장을 밝혔구요. 앤더슨 쿠퍼도 영향을 받은 걸까요? 이들의 대중적 영향력은 상당할 겁니다.

(덧붙여)
'오바마케어'에 대해 좀 더 얘기하자면 원래는 연방대법관 구성이 보수5, 진보4라서 오바마의 패배가 예상되었죠. 근데 부시정권이 임명한 보수 대법관 로버츠가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기적적으로 합헌판결이 났습니다. 로버츠 대법관은 임명과정에서 오바마로부터 강한 공격을 받았고 지금까지 오바마와 사사건건 충돌해오던 사람입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찬성을 한 건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압도적 표결로 통과된 법안을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던 것같습니다. 한마디로 의회존중태도) 국내 진보정당의 일부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호러수준의 반민주적 위법적 행태들에 비하면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한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뭐 공화당이 뒤집어 엎자고 난리인데 하원이 날뛰어봤자 상원은 민주당이 장악한 상황이라 소용없을 겁니다. 티파티에선 주정부를 통해 건강보험 추진을 방해하자고 공작중이지만 글쎄 애초에 연방정부랑은 활동영역이 달라서 그것도 확실하지 않구요. 권력의 분할과 상호견제가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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