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저는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늘 주인공인 (와타나베건 누구건) 남자들 말고, 그들의 친구를 좋아했어요.

청춘3부작 시리즈에서는 '쥐', 그리고 댄스댄스댄스에서는 '고혼다'.  그들과 느낌은 다르지만, 태엽감는 새에서는 '시나몬'군...

그외에 남주의 베스트프렌드가 인상적이지 않은 소설에서는 딱히 아끼는 캐릭터가 없네요.

뭐 그건 그렇고..1Q84의 교주님의 처리 과정을 보니까, 다시 한번 이 거대한 하루키월드가 얼마나 많은 전작들의 그림자들이 중첩된 세계인지 느껴지더라구요.

하루키의 소설들중 최근 몇몇 작품은 땡기지 않아서 생략한 관계로, 그 그림자들을 일일히 다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1권을 읽었을때만 해도, 그리고 우시카와씨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선구'와 '교주'의 세계는 <태엽감는새>에서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은 '와타야 노보루'의 언더그라운드버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2권까지 다 읽고 나니 교주를 보면서 떠오른건 '쥐'였어요. 그리고 한번 '쥐'를 떠올리고 보니까 교주를 혐오하기란 불가능해졌고...

 

오래된 고분에 올라가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고, 그때 올라가서 느낀 바람 냄새, 땀냄새를 잊지 못하던 이십대 초반의 쥐.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 '양' 이 자신의 뇌 속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 기억하기 위하여 '양'을 자신의 뇌 안에 집어넣은채 자살을 택했던 '쥐'.  댄스댄스댄스에서 자기 안의 어둠을 통제하지 못하다가 결국 그걸 안고 죽음을 택했던 고혼다처럼... 하루키 월드에서는 이런 거대한 어둠에 의해 선택된 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삶을 닫거나, 아니면 아예 그 어둠과 함께, 어둠에 먹혀서 살아가다가 그 자신이 거대한 어둠이 되버리죠. 그리고 하루키의 남주들은 그런 자들과 맞서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구조로,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왔다 갔다 거리고.

 

아무튼 2권까지 보고나니, 이 소설은 당연히 4권까지는 나와야한다고 생각되네요. 그냥 2권에서 끝낼 생각이었다고 (하루키가) 말하는건 뭔가 균형감각이 없는 발언이거나 실없는 대답 같아요. 그의 소설이 늘 그렇듯이 하루키의 남주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거대한 세계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내겠지만... 과연 리시버로 찍힘 받은 덴고는 어떻게 버텨나갈지 기대가 되네요. 그리고 다시금 느끼지만, 전 하루키 월드에서 한번도 가벼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는 거... 주인공들이 뭘 마시고, 뭘 듣고 살건간에...그것만이 하루키의 세계라고 말하는건 여전히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는 <양을 쫓는 모험>때부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댄스댄스댄스>,<태엽감는새>,그리고 이 <1Q84>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를 끌어당기는/ 혹은 작가가 증오하는 것같은 이 어둠의 세계가 작품을 거듭하면서 한층 더 구체화되는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해요. 그리고 애초에 이 사람을 <상실의 시대>로만 안다는건 참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 남의 일에 참견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그래서... 만족과 불만족 사이를 오가게 하던 최근의 하루키 월드였지만, <1Q84>의 이 익숙한 세계관은 반가워요. 그리고 덴고가 고마쓰를 잃지 않고  (여자 캐릭터들은 잘 버틸거라는 긍정적인 믿음이 있어요!) 리시버의 운명을 잘 극복하고 싸워주기를 바래요. 4권에 덴고가 설사 자멸을 택한다 해도 그러려니 할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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