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방황해도 괜찮아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 괜찮냐고 질문했다가, 어쩌다보니 연달아 읽게 된 청춘 멘토링(?)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즉문즉설 책들보다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즉문즉설이 자식걱정 배우자 걱정 시댁과 갈등 등의 내용이 많은 것에 비해, 이 책은 결혼 대신 연애를 고민하고, 커리어를 시작 하기 전이거나 커리어에 진입한 후 회의를 느끼고 있는 20, 30대에 초점이 맞추어진 내용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출판을 위해 법문을 상당부분 정리하고 다듬은 느낌인데, 그것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법륜스님 법문 좋아합니다. 2500년 전 문화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교리를 현대에 적용시키자니 (제대로 알게 되면 현대인들은 기함을 할 윤회 이야기는 스님이 상당히 싫어하시는 편이라 안 나오기는 합니다만, 남녀차별이나 계급문제, 사회변혁에 대해서 여전히 거슬리는 면이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을 알아서 걸러듣기만 한다면 스님 법문은, 책에서 읽고 막연하게 머리로만 알고 있는 불교 교리를 실생활에 어떤 식으로 적용하고 내 삶에 어떻게 통합시켜야 하는지 훌륭한 길잡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애초에 불교 신자가 아니어서 아무것도 모르다가, 명상 때문에 불교 교리를 속성으로 읽어치워 제대로 소화도 못 시켰던 저에게는 상당히 좋은 법문이에요.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라고 할까.


책과 직접 연관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개인의 변화와 수행을 통한 고통의 해소에 관한 한, 불교가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게 함정이죠.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씨가 법륜스님을 언급하면서 '너무 강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한다.'고 하셨다 '전해만' 들었는데, 동감합니다. 저는 아직 많이 약해서, 심리치료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상센터에서 정말 절감했어요. 난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해. 그래도 법륜 스님의 법문이나 각종 서적은, 불교 교리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대로 살 수 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저에게는 많은 영감을 줍니다. 아주 강하고 건강한 사람은, 어리석은 욕심을 버린 사람은 저렇게 살 수 있구나,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하나의 이상을 미리 보는 느낌이거든요. 


즐거이 읽었습니다 ^^  이 다음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말인가>를 읽을 차례인 듯.







034.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훌륭한 사이클 선수였다가, 25세의 나이에 말기 생존률 3%인 고환암에 걸려 항암치료는 물론 뇌 수술(암이 뇌에까지 전이되어 두개골을 따고 암세포를 긁어내야 했지요-_-)까지 감행한 후 기적적으로 생존, 극적으로 재기하여 사이클 세계 최고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 7회 연속 우승을 한 랜스 암스트롱의 자서전입니다. 


랜스 암스트롱은 육체적 조건이 정말 특별하게 타고난 사람이더군요. 신체 조건을 조사 해 본 전문가들이 '너는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바로 알아봤을 정도니까. 세계 최정상급 운동선수라면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일관성있고, 참을성 강하며, 자기 통제력이 뛰어나고, 남 탓 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정신적으로 무지막지하게 강한 사람들. 어머니와 부인 둘 다 이렇습니다. 암스트롱보다 이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에요. 


물론 암스트롱의 정신력도 강합니다. 물론 정신이 붕괴되어 쓰러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초에 인내심 강하고 정신적 스테미너가 뛰어난 사람이었다기 보다, 거칠고 공격적이며 자기 조절이 안 되되는데 타고난 에너지가 너무 대단해서 그걸 마구 뿜으며 질주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주변에서 '넌 그냥 거기서 끝이야. 잘 나가다가 암 걸려 죽는거지. 처음 암 치료는 성공해도, 바로 재발할거야. 암에서 살아남았더라도 사이클 선수는 못 할거야. 프로 사이클 선수로 복귀하더라도 결국 삼류로 끝나겠지. 좀 좋은 선수가 되더라도 메달권에는 못 들거야. 일류가 되더라도 세계 1위는 못하지. 이미 신체적으로 최상이 아니니까. 무결점이어야 하는데 결점이 생겼으니까.'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욱 하며 일어나서 맹렬하게 맞써 싸웁니다. (주변에서 잘 달래기는 해야 하지만ㅋ) '난 꼭 암을 이겨낼 거야.', '난 꼭 사이클 선수로 재기할 거야.', '난 꼭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할 거야.' 이 호승심 강한 자기애와 자기 확신, 그리고 그에 따른 높은 목표와 엄청난 노력이 암스트롱의 삶을 다시 하늘로 끌어올렸지요.


사실 암스트롱이 저런 사람이라 치명적인 암에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간단하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암 회복에 정신적 강인함이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지요. 그는 환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어요. 전문적인 정보를 다 찾아 읽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서점의 모든 책 섭렵 의학논문 섭렵.), 그 바탕 하에 최상의 의료진을 선택한 후, 그들을 철저하게 믿고 하라는대로 따라갔습니다. 치료 와중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암을 이기겠다는 호승심, 믿음, 희망을 유지했으며, 움직일 수 있는 한 죽은 것이 아니라며, 조금만 힘이 나도 움직이려 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노력이 암을 완치시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종양학자인 아인혼 박사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훌륭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끝까지 버텨내지 못하는 것도 봤어요.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비열한 사람들이 살아남아 그 비열한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봤고요." 생사는 인간의 영역은 아니에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리고 암스트롱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암에 맞써 싸워야 한다 외치기는 하지만, 암 극복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지요. 그렇기에, 암에서 회복된 후, 정신적으로 굉장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의 그였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투르 드 프랑스 연속재패는 불가능했을 거에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은 사실 암 투병, 회복 부분이 아닌, 사이클 선수로 재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암 수술과 항암치료, 암 회복 과정에는 쓰러지지 않고 암재단까지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던 암스트롱도, 세상으로 복귀하는 이 과정에서는 수차례 쓰러집니다. 이 부분은 책을 발췌합니다.


인정해야 했다. 나는 이제 다시는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마도 내 몸이 가혹한 훈련을 견대낼 수가 없을 것이다. 크리스가 궁금해서 내게 전화를 했다.  "크리스, 나 무서워 죽겠어요. 연습하는 게 무서워요. 내 몸을 너무 혹사하면 암이 재발할까 봐 무섭단 말이에요."  참 이상하게도 암에 걸려 있을 때보다 회복하는 게 힘들었다. 최소한 항암치료를 받을 때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사이클 선수라고 생각되다가도 다음날이면 또 아니라고 했다. (결국 골프에 빠짐. 요새는 온라인게임 정도 되겠지요.) 

(...) 

스티브는 뚜르 드 프랑스에서 구간우승을 한 사진을 보고는 말했다. "이건 언제 다시 시작할 거야?" "나, 사이클은 끝난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이 몸으론 너무 힘들거든." "농담이지?" 스티브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투르 드 프랑스는 다시는 못 나갈 거야." 내가 말했다. 스티브는 너무나 당황했다. 그는 내가 뭔가를 포기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내가 진 것 같아. 사이클 타는 것이 이젠 겁이 나." (...) 나는 모든 것을 일정 비율로 맞추어 줄이고, 사이클과 상관없는 미래의 계획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스티브는 나를 허풍쟁이 친구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나는 그에게 마치 패배자처럼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어느날 오후,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혼란한 마음에 빌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다. (예전 같다면 그런 초보와는 절대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자전거로 동네를 돌면서 내가 말했다. "나, 대학으로 돌아가서 종양학자가 될까 봐. 아니면 경영학 대학원에 가거나." 빌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경영학 석사였고 텍사스 대학에서 법학 학위도 받았다. "있잖아, 난 대학을 11년을 다녔거든." 빌이 말했다. "나는 학교에서 고생을 한 것도 모자라 평생 동안 또 고생하며 살아야 할 거야. (ㅋㅋㅋ) 너는 그런 거 안 해도 돼, 친구야. 그럴 필요가 없는 데 왜 그런 삶을 살려는 거야?" "빌, 내 말을 이해 못하는군." 내가 말했다. "내가 계속 말하잖아. 난 이제 사이클 선수가 아니야."

(...)

"랜스" (코치)크리스가 말했다. "왜 여기서 골프를 치고 있찌? 너는 사이클을 해야 해." 나는 회의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두렵나?" 두려웠다. 나는 사이클 위에서 성난 황소만큼이나 강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면 사이클을 해서 다시 아프게 되면?  

"다시 사이클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의사는 없을 거네." 크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의사도 없을거야. 자네는 시도를 해 봐야 해. 한번 해보는 거야. 그건 엄청난 모험이고, 엄청난 도전이지. 물론 두려움도 클 테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 하지만 여기 다시 삶을 얻은 자네가 있지 않나?"

(...)

나는 여기저기서 나를 포기한 사람들, 내가 예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겉으로는 응원한다고 말하는 스폰서들 다 떨어져나감.)

(...)

어느 날 나는 니콜스 박사에게서 쪽지를 받았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암 생존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어떤 조언도 해 주지 않는다. 암 생존자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치료가 끝나면 의사들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완치되었습니다. 이제 가서 계속 삶을 살아가세요. 행복을 빕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고 나서 세상으로 돌아오려 할 때 느끼는 감정적인 부분을 돕기 위한 지원 체계는 어느 곳에도 없다. 

(...)

암 치료를 하면서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다시는 욕도 안 하고, 맥주도 안 마시고, 화도 안 내겠다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상황은 변하면서 다짐도 약해진다. (...) 사람들은 내가 사이클에 복귀한 것이 승리라고 한다. 하지만 처음에 그건 재앙이었다. 1년을 꼬박 죽음에 대한 공포에 갇혀 지내고 나면, 남은 여생을 영원한 휴가처럼 보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에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사이클에 복귀 한 후, 경기를 하다 중도에 포기함. 그의 선수 인생에 처음 있는 일임.) 나는 자전거를 멈추었고, 경주를 포기했다. 번호판을 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온 몸이 얼어붙어 추위에 덜덜 떨면서 도랑에 처박히는 건 이제 싫어. 그때 내 바로 뒤에 있던 프랭키 앤드류는 도로 옆으로 미끄러져 가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내가 허리를 펴며 일어나 앉는 모습을 보고는 한동안 내가 사이클을 타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단다. 아니면 아예 다시는 타지 않거나. 나중에 안 것이지만 프랭크는 '저 놈은 끝났군.'이라고 생각했단다. 

구간 경주가 끝나고 팀 선수들이 호텔로 돌아왔을 때, 나는 짐을 싸고 있었다. "나 그만둘래."프랭키에게 말했다. "이제 경주 안 해. 집에 갈 거야." 나는 팀 동료들이 이해를 하고 말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작별을 고하고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고 떠났다. 그만 두겠다는 결정은 몸 상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 몸은 강했다. 나는 그저 거기 있기가 싫었던 것이다. 추위와 고통을 뚫고 사이클을 하는 것이 남은 인생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경주를 도중 하차하고 은퇴 선언을 하려는 그에게 주변인들이 조금만 기다렸다 은퇴 선언을 하자며 극구 뜯어말림.) 나는 건달처럼 지냈다. 매일 골프를 치고 수상스키를 타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 체널만 돌리고 있었다. (...) 나는 자제하며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겐 제 2의 기회가 왔고, 나는 그 기회를 충분히 즐리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하지만 재미있지 않았다. 마음이 가볍지도,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억지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 나는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회의에 가득 차 있었고, 파리-니스에서의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 

완전히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암을 극복했기 때문이었다. 암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이제 뭘 하지?'하며 방황하는 전형적인 경우였던 것이다. 나는 일과 생활이 있었는데, 암에 걸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리고 다시 생활로 돌아가려 했을 때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전과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난 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었다. 사이클이 싫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이클 말고 뭘 하지? 회사에서 커피나 끓여야 하나?' 다른 것은 별로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저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내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이제 암 극복이라는 것이 단지 몸이 회복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내 마음과 영혼도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그를 일으켜세운 것은 아내 킥의 부드러운 수용과, 그의 코치의 훈련, 그리고 사이클이었지요. 부인과 코치 크리스가 공모하여 그를 훈련에 참가시키고, 훈련 와중 어마어마한 운동량을 소화하고 또 단순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점점 좋아집니다. 그 후로는 다시 일사천리. 주변인들의 회의적 시선이나 가장 중요한 순간 계속 떨어져나가는 스폰서, 끝까지 들러붙어 괴롭히는 언론들은 그를 괴롭혔지만, 본인 스스로 흔들렸던 저 순간만큼 그를 크게 뒤흔들지는 않습니다. 상처는 입혔지만.


뚜르 드 프랑스는 3주 넘게 지속되는 장기 사이클 레이스입니다. 아무도 그가 상위권에 들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던 그가 갑자기 선전하자, 암스트롱은 매일 레이스를 뛴 후 '약물 복용 한 것 아니냐.'는 언론의 공세에 맞써 매일 매일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습니다. 언론의 공격 부분을 잠깐.


언론의 계속되는 공격에 상처를 입고 기가 꺾였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했고, 다시 경주를 하기 위해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그 노력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것이었다. 기자들에게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로 임하려 했지만, 그렇게 해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약물을 복용한다고 웅성거리고 기사를 쓴 이들은 바로 내가 아팠을 때 "그는 끝났어. 다시는 경주를 하지 못할 거야."라고 했던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복귀하고 싶어 했을 때 "아니, 우리는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는 별 볼일 없을 테니까."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내가 옐로우 저지를 입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선두로 달리고, 점점 더 우승 가능성이 높아 보이자 바로 그 사람들이 그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가 없어. 그는 우승할 수 없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뭔가가 있어." 그들은 언제나 부정적인 말만 하는 이들이었다. 내가 아플 때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게 잘한 일이었다.


 요새 인지행동치료쪽 서적들을 다시 읽고 있어서 그런가, 꼭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오더군요. 제 내부에서 저를 비아냥대고 비하하고 타박하는 목소리와 너무 똑같아요. 하긴 한 사람의 생각은 타인들이 한 말과 생각이 내면화되어 형성된 것이니 똑같은 게 당연하겠지요.


암스트롱이 의학치료 와중 견지하던 강한 호승심과 생존의지를 보면서, 또 저런 외부의 부정적인 생각에 찌들은 사람들(저를 포함)을 보면서 새삼 느낀 건데, 암스트롱의 최대 행운은 암에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아주 강한 기질을 타고났고, 그런 기질을 완벽하게 살려준,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무한 애정을 퍼부어준 현명하고 훌륭한 어머니와, 좋은 코치를 만났다는 점입니다. (사실 코치는 그의 타고난 자질을 보고 돕기 시작한거지만.)  하여튼 그런 바탕 하에 그는 자기애와 건강한 자존감을 키울 수 있었고, 인생에서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그 경험으로 다시 자기애와 자존감을 강화시킬 수 있었어요. 그렇기에 암 투병 와중 불안에 흔들리기 쉬울 때도, 또 주변에서 저런 부정적인 소리를 접할 때도, 본능적으로 '뭐가 어째!! 이 *@#@!!'하고 들고 일어날 수 있었죠.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니까. 그냥 자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완전 이상한 악마가 떠드는 소리로 들리지요. 그렇기에 그만큼 '물리치기' 쉽습니다. 음, 이게 잘 안 되었던 때가 저 위에 우울증 비슷한 것에 걸려서 비실비실할 때 였고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은 (그렇게 된 복잡한 이유는 됐고, 하여튼) 자기애도 자존감도 약합니다. 그렇기에 저런 부정적인 소리에 너무 쉽게 수긍을 하고, 아예 내면화하여, 저런 부정적인 소리들을 제가 저에게 해대지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이것봐. 이게 니가 쓰레기라는 증거야. 넌 안 돼!'하고 소리쳐 비웃는 목소리가 휘몰아칩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정말 심리치료를 본격적으로 받고, 본인도 아주 많이 노력해야 하며, 자기 사랑을 바닥부터 다시 키워야 하지요. 사실 정말 지난한 길입니다. 평생 안 끝나는 일일 수도 있고요. 이런 점에서, 암스트롱은 굉장한 행운아라 생각했습니다. 암에서 살아남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확실히 믿고 사랑할 수 있도록 키워졌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저도 그쪽으로 가려고요. 내면에서 떠들어 대는 저런 부정적인 생각들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귀를 기울인다면 정말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뜯어고치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겠지요. 이걸 끊임없이, 어쩌면 평생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방법을 아는 게 어디에요 ㅋ  더불어 암스트롱같은 '실제' 외부 사례를 끊임없이 접하고 수집해야할 듯. 사실 이 책도 의도적으로 읽은겁니다. 뇌 속에 긍정적이고 좋은 사례 정보를 주입하는 차원에서. 


감상문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일지도. 좋고 훌륭한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그 말 속에 진정성과 힘이 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과 말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암스트롱은 유례 없는 삶을 살아낸 사람입니다. 그만큼 말의 힘도 강력하고요. 지금 좌절하셨거나, 큰 일 하나 해결해놓았는데, 삶을 어떻게 재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혼란스러워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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