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심야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때 였다. 

당시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던 필자는 프로그램팀에서 자료담당으로 일하던 여성스태프에게 소심하게 찝쩍대고 있었다. 

그 분 스타일이 백옥같은 피부에 순박한 외모를 가진 청순글래머, 4차원이었다.

뭐 서로 인사도 잘 안 해봤는데 그냥 이뻐서 맘에 들었다.

어느날 이 분이 나랑 같은 숙소 쓰는 동생에게 "재밌는 영화"라며 디비디를 하나 건넸다. 

프로그램팀 자료담당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영화제 상영작 모두를 디비디로 복사해서 영화제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 자료는 '시네마테크 부산'의 소중한 자산으로 쓰인다. 

어쨌건 이 여자가 준 디비디는 이전부터 프로그램팀 사이에서 악명높은 괴작이었다. 

당시 필자 포함 남자 3명이서 숙소를 쓰던 우리는 다른 형님 한 분을 더 불러서 이 디비디를 관람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필자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당시 심야상영작인 <택시더미아>, <13자메티>, <보랏> 등을 제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심야상영작이 됐다. 

이후 2년 뒤 서울 명동 중앙시네마에서 이 영화가 공개됐을때 필자는 익스트림무비 모 회원과 보러 갔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진정한 평화주의'의 의의를 찾은 수작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이 영화는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다.


2) 역시 2006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였다. 

당시 심야상영은 '재미유무를 떠난' 괴작들이 즐비했다. 

그날 봤던 심야상영작은 <다세포소녀> TV판 전편상영, <애니프란체스카>, 이시이 데루오 감독의 <공포기형인간>이었다. 

상영관인 부천시청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라 뒷편 적당한 명당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봤다. 

헌데 내 옆블럭에서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대략 옆자리 상황을 설명해보자면...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맨 앞 줄에 앉아있다. 

이들은 심야상영을 즐기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바로 뒷자리에는 뭔가 외로워 보이는 남자 하나가 있었다. 

이 남자는 심야 첫 영화인 <다세포소녀>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일관 추임새를 넣으며 영화관람을 했다. 

추임새를 들어보자면 "헐~" "대박!" "와아" 등등이었다. 

앞의 커플은 살짝 짜증내는 눈치였지만 톤이 그리 높지 않아 그럭저럭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집중해가며 볼 영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뒷자리 찌질남은 순간 커플들을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이 찌질남은 앞자리 커플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더니 "저기요...물 좀 얻을 수 있을까요?"라며 생수병을 빌렸(?)다. 

그러더니 남의 물을 홀짝 얻어마시고는 감사하다며 돌려줬다. 

이것이 결정타가 됐을까?

<다세포소녀> 상영이 끝난 후 쉬는 시간이 지나자 이 커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찌질남은 당시 쏠로이던 필자의 인근에서 커플을 사라지게 한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그리고 의도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커플이 사라진 후 이 찌질남은 아주 조용하고 예의바르게 영화를 관람했다. 


3) 이것은 지인들에게 워낙 자주 한 이야기다. 

군대 말년휴가를 나온 2003년, 필자는 전주영화제로 향했다. 

당시 심야상영관은 지금의 전북대문화관이 아닌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이라고 꽤 좋은 곳이었다. 

워낙 졸면서 본 영화라 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침을 맞아 몽롱한 정신으로 심야상영을 마치고 빠져나왔다. 

소리문화의 전당은 전북대문화관에 비해 지리적으로 매우 좋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빠져 나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심야상영을 마치고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빠져 나온 상황에서는 택시조차 잡기 힘들었다. 

필자는 조금 걸어 내려가서 어렵게 택시를 잡았다. 

그날은 전주영화제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이기에 가장 먼저 고사동 버스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뭔가 출출한 마음에 "뭘 먹어야겠다" 싶어서 택시기사에게 "근처 맛있는 식당으로 갑시다"라고 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콩나물국밥 어떻습니까?"라고 했다. 

당시 전주에 콩나물국밥이 유명하다는 걸 모를때라 "에...뭐....그러십시다"라고 했다. 

전주 고사동 시내 인근에 2층짜리 큰 콩나물국밥집으로 향했다. 

2003년도 가격으로 3000원하는 국밥집이었다. 

콩나물국밥도 처음 먹어본 마당에 뭔가 풍부하면서 담백한 맛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콩나물국밥과 함께 나온 공기밥이다. 

공기밥이 따로 나온 걸로 보아 당연히 국 안에는 밥이 없는 줄 알고 홀딱 말아버렸다. 

하지만 안에는 밥이 있었다. 

지나치게 밥이 많아져서 먹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참고로 2003년에 필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날씬했다. 

그래서 너무너무 맛있었던 콩나물국밥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나왔다. 

그게 한이 맺혔는지 필자는 요즘도 콩나물국밥에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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