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1 07:40
사실 말해서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세상의 일을 참 이야기하기 힘들다. 무슨 역사가들 뇌리에 깊은 화상처럼 남겨져 있는 어떤 기아스(geis)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라와 민족의 뭐같은 쫀심을 위해 역사를 뜯어고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존경받는 학자들이 굴비두름처럼 줄줄 끌려가 국회에서 인민재판을 당했던 국사교과서 파동 때문이 아닐까, 라고 젊은이들은 이야기하곤 하지만. 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황에서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세상 좀 잘 바꿔보겠다고 하다가 평생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상처입고 죽어서는 당파 때문에 난도질 당했던 율곡 이이에 비하면, 정치에는 관심 딱 끊고 살았던 이황이 나름 잘 살고 행복했으니까.
애초에 공부에 코박고 사는 딸깍발이들이란 완고하고 세상물정 잘 모르고, 입만 살았고 어중띤 무리들이라, 세상에 그닥 도움이 되는 지 알 수 없다. 기계과 전공자가 고장난 세탁기를 못 고치고 종교학과 전공자가 굿 못하는 것 마냥. 아니, 딱 부러지게 말해 그 분야의 전문가란 - 그거말곤 먹고 살 재주가 없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게 말을 걸면 걸 수록 상처받고 더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그 사람이 좋고 나쁘고 선량하고 악독하고를 떠나 공공도서관의 책이 아무리 소중하게 다뤄도 너덜너덜해지는 것마냥.
그렇다고 골방 깊숙히 침잠하고자 해도, 잊혀지는 게 서러운 것은 사람의 본성인지라. 어느 것도 중요하고 어느 것도 싫은 두 개를 양팔 저울에 놓고 여기 기울었다 저기 기울었다 하는 모습을 눈으로 왔다갔다 하며 한 마디 나오려는 말을 입 안에 쑤셔박게 된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말 수가 적어지고, 시야는 좁아지며 고집은 해묵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선생님이 얼마나 부러운지.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라고 해야할지)을 박차고 나설만큼 용기가 있으며, 전혀 알지도 못하는 세계로 뛰어들어 맨땅에서부터 싹을 틔워 나무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또 그 자란 나무를 또다시 버리고 새로운 땅으로 떠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 또 부러운 재능인 걸까. 한 때는 손가락 빨아가며 못내 부러워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거마저도 무덤덤해져서 아,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단편적인 감상만을 내뱉게 되었다.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나쁜 점은 둔감해지는 것이다. 가장 뛰어나고 빛나던 순간들이 역사의 파랑 속에 상처입고 변해가며 바닷속 깊은 곳으로 처박혀 잊혀져가는 것을 허다하게 보다보면 어느틈엔가 안타까운 감정도 마모되어 버린다. 그리고 기대하는 것을 잊는다. 아무리 고고하던 사람도, 가장 완벽하게 갖춰져 있던 개혁과 계획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뭉개져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외면해버린다. 어떻게든 나아가려 피를 토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해봐야 안 될 거야, 라는 쏘쿨한 말 한 두마디를 내뱉으면서.
그러나 내가 정말로 잊었던 것은, 인간이 살아가며 가장 빛났다고 기억된 순간은 바로 그렇게 무너져 가면서도 꿈을 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 덕분이란 게 아니었을까. 종교개혁이고, 훈민정음이고. 처음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듯한 무시무시한 철벽을 앞에다 두고 미친 척 머리를 박았던 인간들의 힘이 모이고 모인 끝에 결국엔 세상을 바꾸었던 것이니까. 비록 세상은 모순 투성이요 있어선 안 될 잘못들이 허다하게 많다 해도,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것을 잊는 순간 나쁜 것은 더욱 나쁘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글은 안 올려도 게시판 글은 냥냥 읽고 있습니다.
음, 생존신고네요.
2012.07.21 08:35
2012.07.21 09:09
2012.07.21 10:41
2012.07.21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