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3 14:57
한동안 듀게에 못왔는데 여러 가지가 쓸고 지나갔군요. 다 따라가긴 어렵지만 최근 종교와 결혼 문제를 보고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1.
일단 종교 이야기를 하자면, 뭐 답이 없습니다. 해결책도 워낙 다양하죠. 그냥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제 주변에는 남자 집안이 독실한 불교, 여자가 개신교였던 경우에 여자가 불교로 개종하고 결혼한 경우를 봤고(남자측이 개종하지 않으면 연애는 되도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한 모양), 천주교 집안의 남자와 개신교 집안의 여자가 만나 여자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성당에서 결혼한 경우도 봤습니다. 아직까지는 남자가 개종한 경우는 못봤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한 친구는 자기는 어려서부터 교회, 성당, 절을 다 다녀봤다며 어디든 다녀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현실은 아직 미혼 ㅡㅡ;;
종교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의 표출이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만,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해결되면 그게 종교겠습니까. 저도 종교가 있지만 종교에 관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동안만은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포인트가 오면 미안하지만 종교의 교리를 무시해버리죠. 그게 심해지면 종교를 버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여튼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아 이건 강요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가치관이 종교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냥 만나지 말던가, 한 쪽이 그냥 무조건 '희생'하는 수밖에요. 희생입니다. 이긴 측이 이걸 희생이 아니라 '교화되었다'고 보면 절대 안되요. 나중에 '너도 좋아서 다닌거 아니었냐?' 이딴 소리 하면 곤란해요.
2.
그런데 댓글을 보다가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게 종교 문제가 아니라는 댓글이었습니다. 저도 공감하는 바이고요. 이건 단순히 종교를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하면서 자기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하라고 강요할거냐 말거냐의 문제입니다. 종교는 그 중에 대표선수일 뿐이죠. 특히 우리나라의 결혼 구도에서 여자는 결혼 후 시댁으로부터 이런 저런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남편이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이쪽은 내 가정이니까 아무리 내 부모라도 간섭하지 마시오'라고 들어받아버리지 않으면 그 수많은 주문을 이겨낼 길이 없습니다. 해당 글 쓰신 분은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홀로 시댁으로 어웨이게임을 뛰러 가야 하는데 이 남편이 나랑 같은 편인지 아니면 이 사람도 상대편인지를 생각해셔야 할 것 같군요.
3.
많은 분들이 부모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남자는 결혼할 자격도 없다고 하셨더군요. 사실 저도 부모로부터 그렇게 화끈하게 독립되어 있진 못합니다. 최대한 제가 생각해도 아내가 듣거나 하기 싫어할 것 같은 내용은 제 선에서 잘라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시건 일단 주문을 받긴 하죠. 아직까지는 부모님의 생각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옛날 분들인 그 분들은 여전히 "쟤는 내 아들이고, 며느리는 내 아들의 아내. 생활 전반에 대해 간섭하고 잔소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얘들이 어디에 살지, 애를 몇이나 낳을지, 며느리는 언제까지 일을 나갈건지 같은 큰 문제부터, 아이에게 뽀로로를 보여줄건지 말건지, 며느리가 더운 여름이라고 민소매티에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되는지 안되는지까지.
4.
독립. 좋은 말이죠. 그런데 전 매우 궁금합니다. 혹시 주변에 부모로부터 깔끔하게 독립한 인격체를 많이 보셨습니까? 전 사실 이른바 '내놓은 자식' 빼고는 못본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자식은 내놓아 지기까지 부모와 엄청나게 싸우고 속을 썩였겠죠. 결혼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나이가 30살 전후라고 할 때, 그때까지는 부모에게 별 반항 없이 부모 말 잘 듣고 살던 사람이(보통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대립하며 반항적으로 자란 사람보다는 이렇게 자란 사람이 '반듯하게 잘 자랐다'는 평을 들으며 더 이상적인 배우자로 꼽히지 않나요?) 난데없이 결혼을 계기로 '난 이제 독립 가장임. 지금까지처럼 간섭할 생각하지 마셈' 이라고 선언한다면....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집안 한 번 난리날 것 같은데요.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있습니다만, 여튼 직접 경험한, 혹은 주변에서 본, 10대 청소년이 아닌, 30대 성인 남자의 독립 이야기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남들도 다 부모들과 대판 하고서 부모가 어느 정도 낙심하고 포기한 후에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는지, 아니면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독립체로 커 나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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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면 첫째가 아내, 둘째가 부모, 셋째가 자식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자식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 이해해달라
-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면 난 어쩔 수 없이 아내편을 들어야 한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부모님이랑 30여년을 살아왔지만 결혼하고 나면 난 그 사람이랑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
같은 말로 떡밥을 깔았는데 제가 효자가 아니라 '코스프레'만 해서 그런지 집안 뒤집어 지진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