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와 장필순, 라디오헤드와 이하 그리고 스톤로지스에 이르기까지 라인업이 발표된 순간 저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음악의 황금시대를 상기하며 지산으로의 4번 째 음악 여행을 떠나기를 기대하였지만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다시 떠올려 보는 올해의 지산은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움과 환호가 상충할 수 밖에 없었던 오늘 날의 사람들이 각자의 느낌으로 여름의 페스티벌을 즐기는 더운 여름의 한 때였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 지산의 첫날은 그 여느 때보다도 심각했던 교통체증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리역의 셔틀은 시간이 지체되어 제 때 도착하지 않았고 그 오랜 대기 시간 끝에 탑승한 셔틀은 느릿느릿 거북이마냥 이동하여 첫날에 보고자 했던 김창완 밴드나 검정치마의 공연을 놓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산의 첫날은 노장 밴드들의 열정이 빛을 발한 하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둘러 티켓팅을 마치고 볼 수 있었던 첫 번째 공연은 이번 지산에서 가장 오래된 관록을 자랑하는 뮤지션인 엘비스 코스텔로가 임포스토 밴드와 함께한 열정적인 록큰롤 사운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그 유명한 “she”로 알려진 뮤지션이지만 땡볕 같은 무더위로 인해 땀에 흠뻑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절모와 양복을 벗지 않은 의지에 걸맞게 별다른 멘트 없이 한시간 가량을 빼곡하게 록큰롤 사운드로 채워 놓았는데 새삼 그 관록과 열정에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공연이 끝나고 들국화의 공연을 보러 가는 길에 김창완 밴드의 공연에서 무지 잘 놀았다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와중에 멀리서 전인권의 독특한 사자후 같은 목소리로 행진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행진과 그것만이 내세상으로 이어지는 들국화의 무대는 80년대 그들의 전성기를 다시 되돌린 듯한 힘과 우직함으로 가득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는데 자연인으로서의 전인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으로서 자신의 삶을 토로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떤 긍정과 공감을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흘러간 세월을 돌리지는 못한 듯 사노라면을 부를 때쯤의 전인권의 목소리는 조금 심하게 갈라져서 제대로 발성이 되지 않는 아쉬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별다른 기교나 화려한 제스쳐도 없는 무대였지만 그 여느 지산의 무대보다 묵직함을 전해주었던 들국화의 공연은 50분이 채 안되는 시간만으로도 그린 스테이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이었던 말할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헤드를 보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너무 익숙한 기타 리프와 함께 스모크 온 더 워터가 들려왔을 때 다시 저의 발걸음은 들국화로 향하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둘쨋날 지산의 그린 스테이지는 그야말로 저에게 있어서는 팬심을 가득 폭발 할 수 있는 환상의 라인업이었습니다. 2000년대 제가 가장 좋아했던 밴드들인 속옷밴드와 MOT의 이이언, 페퍼톤즈 그리고 조윤성 세미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루시드폴의 무대까지 기대를 금치 못할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지만 그 기대만큼이나 커다란 실망을 남길 수 밖에 없는 무대로 기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페스티벌에 야외공연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너저분하기만 한 사운드의 셋팅 때문이었는데 이들 뮤지션들이 굉장히 섬세한 디테일까지 음을 조율하여 사운드를 구축하는 뮤지션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운드의 너저분함은 엔지니어링의 단계에서 극복 불가능한 기기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속옷밴드의 폭풍 같은 노이즈도 차가운 얼음 같은 이이언의 전자음향도 짧은 시간을 최대한 쥐어짜내 록큰롤의 열정을 만들려고 했던 페퍼톤즈의 그루브도 모두 밸런스가 맞지 않은 사운드 믹싱 속에서 답답하기 그지 없는 먹먹한 베이스 음향 만이 귀를 괴롭힐 뿐이었습니다. 예의 록페스티벌의 무대라고 하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세션을 대동한 루시드폴의 무대는 그 성실함에 반비례하여 가장 끔찍한 소리를 내어주었으므로 몇 곡 듣다가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는데 뮤직 페스티벌의 이름을 내걸고 음향사고 급의 사운드가 연속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린 스테이지의 저질스러운 사운드는 본 페스티벌의 가장 큰 불만으로 페스티벌 기간 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메인 스테이지인 빅탑 스테이지도 그렇게 사운드가 좋다고 말 할 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헤비니스와 템포가 빠른 음악을 하는 밴드들의 무대가 이어졌기에 뙤약볕의 더위를 그럭저럭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해리빅 버튼과 아폴로 18이 크래쉬도 피아도 없는 지산 록 페스티벌의 해비니스 사운드의 보루를 굳건히 지킨 와중에 작년에도 내한하여 J록의 경쾌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SPY AIR와 작년에 THE MUSIC이 있었다면 올해는 모션 시티 사운드트랙이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가장 신나는 무대가 이어지며 가장 해외 아티스트들의 네임밸류가 떨어졌던 토요일의 오후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였습니다.

 

 아울시티와 제임스 블레이크가 토요일의 헤드라이너라고 하기에는 다소 갸우뚱하게 하는 인지도였던 만큼 실제적인 토요일의 헤드라이너는 이적이라고 부를 만 했는데 다만 작년의 DJ DOC가 역대 록 페스티벌 사상 최악의 무대를 선보였던 만큼 GMF의 헤드라이너라고 하나 이적의 무대 또한 다소간의 걱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첫 곡을 그대랑으로 시작했건만 이상하게 기타 톤이 먹먹하게 잡히고 이적의 마이크 또한 지나치게 경성의 느낌이 강해서 답답한 사운드로 시작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적으로 사운드의 밸런스가 조금은 나아지고 한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다양한 그의 히트곡 퍼레이드는 본 페스티벌을 통틀한 가장 큰 싱어롱 시간을 가지기에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애초에 준비한 곡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더위에 지친 듯한 이적의 보이스는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델리 스파이스가 보여주었던 감성의 공감을 통한 고양된 에너지의 시너지를 이끌어내기에는 다소 힘겨워 했는데 계속 달려야 하는 부분에서 가뿐 숨을 내쉬며 중간 중간 멘트로 숨을 고르는 모습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아마 2009년 GMF의 이적 무대는 기억에 남을 만큼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어낸 공연이었기에 그의 그런 모습은 2011년의 GMF에서도 그리고 2012년의 지산에서도 재현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울시티와 제임스 블레이크 중 메인 스테이지에 누가 더 걸맞는 뮤지션인가를 따져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앨범의 말랑말랑한 그루브함과 별개로 기타를 든 아담 영의 모습은 팝스타가 아닌 록스타의 아우라가 가득하였으므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슈팅스타의 점핑 퍼레이드는 아울시티가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와 재현해도 충분히 장관일 듯한 멋진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잠시의 틈을 두지 않으려는 듯 악기를 교체하는 와중에도 신디 배경음을 깔아서 공연의 연속성을 꾀한 그의 무대는 깊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벼운 음악을 할지언정 아울시티의 음악성에 대해서는 가볍게 치부 할 수 없는 성실함과 매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한시간을 빼곡히 채운 무대는 그린 스테이지에 올라왔을 망정 헤드라이너 이상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제임스 블레이크에 대해서는 지산에서 헤드라이너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호기심과 더불어 상당한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서 듣는 그의 음악은 미묘한 매력을 불러 왔으므로 어떻게 그의 사운드가 라이브로 확장되어 재현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전형적인 덥스텝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곡의 비트가 무겁고 느릴 따름이었는데 보통 일렉 뮤지션들이 라이브에서는 곡의 비트를 강하고 빠르게 가져가는 것에 비해 그의 비트는 여전히 느리고 더욱 무겁게 전개되어 몰입이 쉽지 않은 페스티벌의 메인 음악으로 즐기기에는 어려울 따름이었습니다. 기타와 키보드 드럼의 단촐한 3인조 밴드 형식에 화려한 조명도 스크린 연출도 없이 마치 서브스테이지의 무대와 같은 구성으로 70여분을 채운 그의 무대는 너무 난해한 나머지 역대 헤드 공연 뿐만 아니라 보통의 빅탑 무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청중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의 드럼연주가 만들어낸 비트가 너무나 불균질한 드럼 터치와 리듬감으로 당혹스러울 밖에 없었는데 점차적으로 그의 음악에 흡인되어 가곤 했지만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다른 청중들의 수다로 인해 종종 그 감흥이 깨져버리곤 했습니다. 가장 완벽한 기크형 미남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블레이크의 미소가 스크린으로 비쳐줄 때에만 아이 러브 유라고 외치는 여성 팬의 환호가 이어질 따름이었는데 그의 공연이 끝난 이후에 생각보다 큰 환호와 앵콜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와서 일부 청중들에게는 꽤 인상 깊은 순간으로 남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좋은 뮤지션이 좋은 헤드라이너의 필요충분 요건이 아님을 확인 할 수 있었고 그의 음악은 보다 작고 내밀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을 터였습니다.

 

 

3. 지산의 3일은 갈수록 더워져서 3일 째는 정말 햇살이 화살처럼 느껴져서 공연장의 작은 그늘을 찾아 사막의 여우처럼 헤매기 시작합니다. 이 와중에 록페 사상 가장 더웠던 2009년 ETP에서 4대 헤드라이너에 밀리지 않은 테크노와 록 사운드의 멋진 하이브리드를 선보였던 Boom Boom Satellites가 지산의 가장 더운 3일차 오후를 더욱 후끈 달아오르게 합니다. 카메라 옆 그늘에 앉아 있었건만 그들의 예리한 전자비트와 헤비한 리프가 계속될수록 몸은 절로 움직여져서 잠시 뙤약볕에 나가서 몸부림을 쳐볼까 했지만 역시나 30초만에 다시 그늘로 복귀. 그날의 태양은 햇살이 아닌 햇귀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더위 때문에 공연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몽니와 넬의 공연을 기다립니다. 더위와 어울리지 않는 가장 서정적인 밴드이자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비디아이와 스톤로지스로 시작하는 브릿사운드의 한국형 적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궁금할 따름이었는데 몽니는 의외로 적극적으로 마룬파이브의 THIS LOVE를 비롯한 커버곡으로 분위기를 흥겹게 달아오르게 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었고 넬은 자신들의 감성적인 넘버들을 조금은 거친 느낌으로 재현하는 것에 주력하였습니다. GMF의 공연이나 단콘 때의 컨디션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페스티벌의 밝은 열정과 상극되는 김종환의 애잔한 보컬은 이색적이었기에 빅탑의 무대에서 독특한 감성 포지션을 획득하는 것에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비디아이는 노엘만 없는 오아시스였지만 노엘만 있었던 2개월 전의 공연보다 오아시스라는 존재의 아쉬움을 더욱 상기하게 했던 공연이었습니다. 오아시스의 서정적인 브릿팝 넘버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여름날의 더위에 호응하는 록큰롤 넘버들로 60분의 공연시간을 채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것은 역시나 오아시스 시절의 Rock and Roll Star와 What's the Story(Morning Glory)였고 오아시스라는 밴드에 있어서 노엘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뒷짐을 진 채 시크한 자세로 노래하는 리엄의 보컬은 여전했지만 후지 공연의 후유증이 남은 듯 목상태가 과히 좋은 편이 아니었고 전반적인 사운드의 톤도 건조하고 먹먹할 따름이라서 음향적으로는 실망스런 편이었지만 오아시스 때보다도 더욱 청중과 같이 조응하는 모습에서 대스타가 아닌 록스타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기분 좋아 보였던 것은 3년만에 지산을 다시 찾아온 것 뿐만 아니라 맨시티의 우승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말입니다.

 

 장필순의 무대는 첫날의 들국화와 더불어 또 하나의 마스터 피스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00년대를 관통하는 그녀의 음악세계는 지산의 밤 기운을 고즈넉하게 포용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함춘호와의 기타만으로 그녀의 음률을 실어나르는 단촐한 무대에서 조차 그린 스테이지의 어김없이 너저분한 사운드 셋팅은 그녀의 낮고 애상적인 목소리의 힘을 방해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록 페스티벌에 있어서 좋은 뮤지션을 섭외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일일 텐데 올해는 약해진 라인업 이상으로 어렵사리 섭외한 좋은 뮤지션들의 멋진 무대들도 날려버린 순간이 너무 많아서 화가 날 지경이기도 했습니다. 장필순의 무대를 마치고 빅탑으로 가는 길은 그냥 조금은 더 작고 소담한 무대에서 장필순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는 마음뿐 이었습니다. 올해 최고의 사운드라고 한다면 올림픽 공원 뮤지라이브홀에서 열린 랄라스윗의 라이브였고 그와 동등한 음향이 장필순에게 주워진다면 그녀의 목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지산의 마지막 헤드라이너로 모습을 드러낸 스톤로지스는 올해 지산이 가졌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상기시키는 서두에 언급했던 환호와 아쉬움을 모두 가지게 했던 무대였습니다. 매드채스터 사운드의 황금시대의 전설이지만 우리나라의 록 매니아들은 매드채스터 직접적인 세례를 받은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세계에 빠져드는 것에 있어서 조금의 딜레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I Wanna Be Adored로 시작하며 호랑이 점퍼를 입은 이안의 모습을 보고도 조금은 민숭맨숭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톤로지스의 공연은 3일간의 헤드라이너 공연 중에서 사운드 체킹이 가장 미흡하여 앨범의 찰랑찰랑한 기타 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역시나 명불허전이라 할 수 이안의 고음불가 라이브는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과 별개로 이안의 관객과의 피드백을 이끌어내는 무대매너는 생각 이상으로 좋은 편이었고 보다 즉흥연주의 느낌을 살리는 존 스콰이어의 기타솔로는 본 공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12분간의 긴 호흡으로 존 스콰이어와 기타 테크닉을 모두 선보인 FOOLS GOLD가 셋리스트 중간에 배치되어 하나의 피날레라는 느낌을 갖게 하였기에 뒤의 곡들은 앵콜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 공연의 가장 멘탈붕괴를 일으킬만한 부분은 좌우 사이드 스크린의 산만하기 그지 없는 연출이었는데 스크린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공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제발 이딴 연출은 그만해 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제약 사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단 한장의 앨범으로 전설이 될 수 있었음을 새삼스레 확인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들의 아우라는 넘치도록 매력적이긴 했지만 제 자신을 매혹시키기에는 조금은 낡고 성긴 느낌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4.  첫날의 헤드라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헤드에 대한 느낌을 가장 마지막에 적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 이상으로 라디오 헤드의 공연은 제 4회를 맞이하는 지산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만큼 모든 긍정적인 정수를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산의 헤드라이너로 올랐던 매시브어택과 케미컬 브라더스, 그리고 오아시스와 뮤즈의 장점을 모두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140분간의 황흘경을 선보인 그들의 음악세계는 아트와 아키텍쳐의 영역으로 나아가 있었기에 CREEP과 같은 이모션과 패션의 경계선에 서 있는 감성 충만한 곡이 끼어들만한 여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빅탑 스테이지의 조명을 하나도 활용하지 않은 채 그들이 가져온 12개의 분할 된 스크린과 그 사이로 알알이 박혀 있는 조명만으로 단순히 무대 소품이 아닌 하나의 예술적인 오브제로 무대 예술이 지향해야 할 가장 세련되고 정교하게 셋팅된 무대 위에서 비트와 멜로디, 샘플링과 노이즈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운드는 섬칫할 정도로 정교하였지만 톰 요크의 애상적인 보컬이 곁들여 지는 순간 앨범으로 듣는 것 이상의 수정처럼 투명하고도 강고한 아름다움을 상기하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라디오헤드는 90년대가 황금시대였지만 그들의 공연을 보는 순간 그들의 황금시대는 바로 이 순간임을 바로 깨달을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최고로 열광한 공연도 아니었고 최고의 경이로움을 느꼈던 순간도 없었지만 대중예술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영민함과 정교함을 알게 했던 공연이기도 했습니다. 2012년 7월 27일 23시 40분. 마지막 앵콜곡을 끝낸 라디오헤드의 공연은 CREEP이 그리웠으나 CREEP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하나의 완벽함을 추구한 공연이었습니다.

 

 그 동안 뮤직 페스티벌을 다니면서 단 한번도 맥주를 입에 댄 적이 없고 온전히 음악만으로 온전히 취해 지냈던 저였지만 뮤직 페스티벌이 뮤직보다 페스티벌에 방점을 두게 된 것처럼 저 또한 뮤직 페스티벌에 가는 것은 즐거움이라기 보다 일종의 세금처럼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동안 보고 싶었던 볼 수 없었던 뮤지션들을 볼 수 있었다는 설렘은 이제 관습적으로 이름 있는 뮤지션들의 무대를 찾아 멍하니 보고 있는 순간이 늘기도 했습니다. 빅탑과 그린 스테이즈를 왕복하는 와중에 오픈 스테이지에서 간혹 흥미를 끄는 음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성가신 판촉 부쓰의 음악 소리와 섞여 또 다른 소음으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음악을 좋아했던 순간은 과거의 황금시대에 머물러 있겠지만 여전히 가끔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더위도 갈증도 짜증도 잊는 상쾌함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음악이 차가운 맥주 한잔의 청량함을 안겨주곤 합니다. 아마 이 느낌을 기억하는 한 새로운 여름날의 뮤직 페스티벌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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