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바낭+바낭

2012.08.02 01:26

에아렌딜 조회 수:2974

안녕하세요. 에아렌딜입니다.

지금 큐슈에는 태풍이 와 있습니다. 밖에 들리는 바람 소리가 매우 사납군요.
확실히 지구의 기후가 변하고 있긴 한가봅니다. 원래는 일 년에 한 두어번 지나갔다던 태풍이 이리도 자주 오고, 얼마 전의 대폭우도 그렇고... 

일전의 대폭우로 아소 쪽은 거의 교통이 마비가 된 것 같습니다. 뭐 대로 쪽은 무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이쪽에 오시는 손님들은 아소 쪽을 지나서 올 수가 없게 되어서 손님이 반토막이 났습니다. 여기가 산쪽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길이 얼마나 망했는지(...) 복구가 오래 걸린답니다. 사람마다 하는 얘기가 다른데 어떤 이는 한달이면 복구된다고 하고 어떤 이는 3개월은 걸릴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반년은 걸릴 것이라고-_-;; 하니 누구 말이 옳은지 모를 지경입니다. 하긴 험한 산길이 그리 쉽게 고쳐야 지겠습니까만서도.... 어찌되었건 빨리 복구되길 바랍니다만서도 올해 영업은 신통치 못할 것 같아 영 큰일입니다. 제가 있는 이 곳은 8월이 피크라는데 참 한적합니다. -_-; 
그래도 바로 그저께 한국 손님들이 60여명 다녀가셨습니다. 덕분에 휴일도 없이 일해서 피로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 견습인 제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런 말하긴 그렇습니다만 한국 사람들이 단체로 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여기의 룰을 지켜주질 않거든요. 게다가 뭐든지 빨리 해주길 바라고, 주문도 많습니다. 계산할 때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빨리 해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통에 진땀을 줄줄 흘렸습니다. 바로 뒤에 온 일본 손님이 '괜찮아. 천천히 해요' 하고 말씀하실 때는 꼭 천사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_-; 국민성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역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비스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들에게서 왠지 긍정적인 걸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200명이나 되는 손님의 예약이 들어 있어서 '으아 큰일이겠네요' 했더니 어느 분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하고 말하셨는데 ...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데도 왜 그렇게 그 말에서 감동을 받았을까요. 
평상시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고 있자니, 다른 직원분이 '손님 앞에선 어깨를 펴고 걸어야지' 하고 주의를 주신 일도 있었습니다.

같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대하기 힘든 건 어쩐 일인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같이 일하는 한국인 직원 청년은 툭하면 '어우 씨, 짜증나' 소리를 입에 달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자꾸 짜증을 내면서 다니니 일본 사람들은 '대체 쟤가 뭐라는 거니' 하고 저더러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일을 하면서 왜 저리 짜증을 내는지, 한 마디 한다고 들을 위인도 아니니 그냥 냅두는 수밖에 없지만 정말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까지 짜증이 나려고 하니 피곤해지고... 요즘은 얼굴도 보기가 싫습니다. 그러면서 제 기분 좋을 땐 헤실거리고 다니니 사람 속이란 알 수가 없지요. ...한편으로는 절 보는 것 같아서 더 울적해지기도 하고요. 저도 더 어렸던 시절엔 저렇게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지금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하고 배웠으니 반면교사란 말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군요... 걸핏하면 그만둔다는데 제발 빨리 그만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편이 그를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좋을 것 같으니...

어느덧 여기 온지도 한 달이 흘렀습니다. 
조금이나마 일이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지요. 일전에는 전화를 내내 받다가 적는 걸 실수해서 제 월급 반은 날아갈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ㅠㅠ 다들 탓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그렇다고 늘 우울해할 수도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 돌멩이 하나가 굴러다니네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새삼 실감을 합니다. 다들 잘 대해주는데도 어딘가 적적한 것은 제 못난 심성 탓이겠지요. 
식료품이 다 떨어졌는데 차가 없어 여기서 나갈 수가 없으니 뭔가 살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같이 나가야 하는데, 입을 열기가 참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들이니 내가 부탁한다고 거절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폐를 끼친다는 마음이 들어서 늘 말을 꺼내질 못해요. 아니, 좋은 사람들이니 부탁해도 화내지 않을 거라는 전제 자체가 간사하군요. 어찌됐건 폐를 끼치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터인데... 괜히 비굴해지고, 입을 못 열겠습니다. 사람 마음이 어찌 이리도 간사한지... 나도 내 마음이 우습고 한심합니다.

누가 나를 보고 웃지 않으면 괜히 불안합니다. 이런 증상은 대체 뭐인지, 이럴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철렁 하면서 '내가 또 뭔가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합니다. 그냥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난 왜 이럴까요. 내가 뭔가 잘못하는 게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가 껄끄러워 얘기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싶고, 내가 진 바위만 천근만근 무게를 더해 갑니다. 왜 이리도 갑갑한지 모를 노릇입니다... 바보는 스스로 짐을 늘린다더니...
회장님이 인터넷 전화 사용 금지령을 내리셔서 더 곤란해졌습니다. 이제 집에 전화도 할 수가 없겠네요. 아직 외국인 등록증이 안 나와서 휴대폰도 없습니다. 뭐 외국인 등록증이 나온대도 휴대폰 만들러 나갈 수가 없지만요.


에고. 또 울적한 이야기이니 보기 싫으시겠지요. 본의 아니게 이 글을 클릭하신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이대로 끝내긴 그러니 아소 홍보(?) 좀 하겠습니다.;;

아소는 참 예쁜 곳이 많습니다. 뭐 관광지로 끝내주게 유명한 데야 다른 데서도 홍보를 많이 하고 있으니 제가 말할 필요는 없을 테고... 그냥 도로가도 길이 참 예쁩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는 쿠사센리랑 비슷하게 풀로 뒤덮인 평야가 가득합니다. 차를 가지신 분이나 렌트카를 쓰시는 분이 여행오시면 꼭 밀크 로드 쪽을 가 보세요. 길이 굉장히 예쁩니다. 하늘이 지평선과 맞닿은 길이나 산허리에 걸린 구름, 피어나는 안개를 볼 수 있어요. 저도 한 번 갔는데 참 예쁘더군요. 오후 느지막이 되면 소나기가 자주 내리니 우산 잊지 마시구요.
아소 역 바로 앞에는 유메노유(夢の湯)라는 작은 온천 목욕탕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은데 정말 예쁩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는데 참 깔끔하고 경관도 좋습니다. 아소 내에 사시는 분들에겐 가격도 반값이고(...) 한번 들러 보세욧.  지금은 길이 험하니 오지 마시고ㅠㅠ(...) 내년 초여름 쯤에.... 흑흑. 빨리 수해 복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근처 작은 마을에 불꽃놀이 대회가 매년 있다는데 올해는 수해 때문에 중지되었답니다.ㅠㅠ 기대하고 있었는데 슬픕니다. 엉엉.

일본 사는 동안 마쯔리 구경을 한 번 해 보고픈데 언제 기회가 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엔 여기 어디나 참 예쁩니다. 살던 곳이 아니라서 그럴까요... 여기도 사람 사는 데인데 왜 이렇게 색다르게 특이하게 비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의 시골도 이런 곳이 있을지 모르는데... 제가 가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그렇지만 여기 정말 이쁩니다. 자연이 넘쳐난다는 기분이에요. 물론 그만큼 벌레도 많고 도마뱀도 봤지만...-_-;;;

그럼 이만... 다음에 뵙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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