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오글오글 감상글 주의보)


오늘 손연재선수 결선 네 경기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어요. 리듬체조를 보는 것이 대체 얼마만인지..

경기에 몰입하는 모습이 너무 대담해서 놀라웠고, 음악과 안무, 의상도 정성들인 티가 확실히 나더군요.  모두 조화롭게 아름다웠어요.

광고에서 보던 철모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전혀 없었고, 진지하고 늘 웃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이더군요.

손선수를 보니,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나라 선수들은 음악성과 감정 연기 면에서 특히 뛰어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음악 선택이 사실 일종의 '사골곡' 이라고 해야되나, 잘 알려진 우아한 곡들이어서 차라리 저는 더 좋았어요.

간만에 보는 초보 관객을 익숙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단숨에 몰입시키더라고요.

후프에 나온 호두까기 인형 그랑 파드두 라던가, 볼 연기의 라임라이트 내마음의 멜로디..

특히 볼 연기 후반부에서 볼을 손 대신 다리로만 컨트롤하는 고난도의 수행을 하면서도, 음악과 싱크로율을 놓치지 않는 부분에서 정말 놀라웠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티비 너머로 본 일개 시청자도 이랬는데 본인도 최고 몰입감을 맛본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예선에 볼 실수가 있었는데, 결선에선 그걸 떨쳐내고 완벽하게 연기해서 28점대의 높은 점수도 받았구요.  

원래 후프, 리본에 강하고, 볼, 곤봉에 약하다고 했는데, 볼의 약점을 극복해내고 고득점하는 모습이 대단했어요.

곤봉에서 아차 싶은 실수 후에, 마지막 리본에서 마음 다잡고 멋지게 마무리했죠.  


특히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날이 클라이 막스로 치달을 때 

화면을 세로로 길게 가르며 날아가던 붉은 리본과,  

던진 리본을 구르고 음악의 절정에서 잡아내는 선수의 모습과, 

때 맞춘 관중들의 환호... 머릿 속에 스틸화면처럼 남아 있네요.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거실 티비로 혼자 보다가 리본 경기 후에 일어서서 기립박수 쳤습니다.  

저런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며, 얼마나 높은 집중력이 필요할까.. 리듬체조 선수들 존경스러워요.


손선수 뿐만 아니라 결선에 오른 열명의 선수들 프로그램도 서로 비교하면서 보니까 흥미진진하던데요.

특히 예술성이 강조되는 판정스포츠라서인지, 실수 없는 완벽을 추구해야 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장인정신도 느꼈습니다.

카나예바 선수는 과연 명불허전.   혼자서 다른 리그에서 신들의 경기를 펼치더군요.  

독창적인 안무와 유연성, 완벽에 가까운 수행과 연기.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섰구나 싶었어요.

아래 어떤분이 밴쿠버올림픽 김연아선수에 비유하던데, 적절하다 느꼈습니다.


손선수가 카나예바 선수와 같은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있다던데, 배우는 점이 참 많을 거에요.

혼자만의 생각일진 모르겠으나, 어려운 복합 동작을 해 낼 때의 손선수의 유연함을 보면, 카나예바선수를 연상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더 성장하는 무서운 선수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에 가라예바 선수와 동메달 경쟁을 하던 차카시나 선수의 리본 연기도 기억에 남아요.

러브스토리를 배경음악으로 이전 경기들과는 달리 참 서정적으로 풀어냈죠. 연분홍 경기복을 입고..

끝나고 바닥 매트에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K사 해설위원이 결국은 다소 울먹이시더라고요.

기구에 대한 키스가 아니라, 경기장에 키스하는 것은 은퇴를 암시하는 제스쳐인가봐요.

본인의 마지막 경기를 살얼음판 같은 올림픽에서 동메달로 마무리하는 모습이 감격적이었어요.

메달에 대한 중압감으로 긴장하며 경기하는 것이 눈에 보이던, 결국 동메달을 놓친 가라예바 선수의 눈물도 안타까웠고요.

두시간 가량 10명의 선수들이 펼치는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에요.  

메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소숫점 세째 자리 점수 하나를 위해 완벽을 기하는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


사실 리듬체조를 안 본지 백만년은 되는 것 같아요.

리듬체조하면 떠오르는 단 한 사람.

전설의 비앙카 파노바 선수.


우아하면서도 절도 있고 다채로운 연기,  특히 리본 돌리면서 귀엽게 걸어가던 제스쳐는 아직도 기억나요.

당시 TV에서 리듬체조 선수권은 빼놓지 않고 방송해 줬었고, 언제나 불가리아의 파노바 선수가 우승했었죠.

어릴 때였음에도 넋 놓고 보던 생각이 나네요.  

88 올림픽 때 실수로 4위한 이후 92 바르셀로나에서는 연맹과 문제가 있어 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제 기억에서 리듬체조하면 떠오르는 단 한 사람입니다.



추억팔이 하면서 유튭도 뒤져봤네요.

요즘 리듬체조는 훨씬 복잡하고, 점수를 따 내기위한 쥐어짜내는 듯한 고난이도 동작으로 가득차 있어서

아무리 파노바 선수라도 요즘에 나와서 출전한다면 본선진출도 힘들겠죠. 머리가 핑핑 돌 것 같아요.

하지만 예전의 단순한 우아함과 절도있는 동작들이 더욱 아름다웠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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