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업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자세한 업종은 (사실 별 상관은 없지만) 비밀이고요.

이 새벽에 일 이야기를 해서 들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먄, 답답한 마음에 글을 써봅니다.

 

어쨌든 제가 하는 일은 꼼꼼함과 착실한 진행이 중요시되는 일입니다.

그와 별개로 트렌드도 잘 파악해야하고, 나름의 기획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력을 이루게 하는 건 전적으로 후자입니다.

 

실적은 좋은 편입니다.

경력이 3년 정도인데, 저보다 배로 경력있는 사람을 넘을 만큼 됩니다.

같은 직종에서는 방귀 좀 뀔 수도 있고요.

제가 이만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기획력 덕분입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저 스스로 "짜식, 쫌 하는데?" 라고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고 봅니다.

프리랜서로도 반쯤 갑질하고도 놀맹놀맹 목구멍에 기름칠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고요.

 

하지만 진행, 이건 정말 꽝입니다.

저는 특이한 경로로 경력을 쌓았는데, 아마도 같은 직종, 다른 분야에 속해 있었다면 일찌감치 도태되었을 겁니다.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닙니다. 최악이에요.

노력은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금 추측해보기론 어렸을 적에 과잉행동장애가 있었던 것 같고, 지금도 매사에 꼼꼼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진상을 부려도-성격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꼼꼼하지도, 착실하지도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저를 보조해줄 수 있는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먹고 살려니 이 일을 그만 두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어쨌든 실적은 나오니 사람들이 어찌어찌 일을 시켜주네요.

제가 하는 일은 대충 이렇게 굴러갑니다.

 

기획안 냄 -> 진행은 개판 -> 발매 -> 어쨌든 팔림 -> ...어쩌겠냐. 또 일하자.

 

계속 이런 패턴이었습니다.

잘 해보려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진행은 정말 꽝입니다. 소질 없습니다. 그냥 나가 죽어야합니다.

다만 주거래 회사에서 적당히 매꿔줘서 엉망진창이라도 결과물은 그럴듯하게 나왔습니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되었지요. 하지만 과욕을 부린 게 문제였습니다.

 

경력이 아직은 짧고 거래 회사가 협소하기 때문에 다른 곳이랑 일을 해보려고 했어요.

마침 한 기획이 원래 거래 회사에서는 어렵다고해서 다른 회사랑 계약을 했지요.

볼때는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정도였는데, 그래도 어찌어찌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놔... 이건 원판이 진상이네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 다 괜찮습니다. 사람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일이 거지였던 겁니다.

물론 제가 잘 가늠하고, 작업 일정을 충분히 잡고, 예측을 정확하게 했다면 문제될 일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 ㅄ 근성이 어디 가지 않아서, 그런 것도 제대로 예측을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근 4달 동안 이 일만 붙잡고 피똥을 싸면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상 부리는 사람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어라어라어ㅏ아ㅓㅏ니ㅏㅓ니

 

여기까지는 좋다고 칩시다. (좋긴 개뿔이.)

하지만 반복되는 일정 연기, 전달사항 누락, 말하기 부끄러운 오류들...

이 사이에 제 밑천이 다 드러나 버렸습니다.

나름 잘 하려고는 하는데, 멘붕하는 와중에 다 엉망이 됐습니다.

일요일인데 관계자가 전화를 하더군요.

얼마 안 남았으니 그날그날 하는 일을 보고해 달라고.

말투는 상냥했습니다. 뭐... 제가 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버버하면서 넵넵 했지요.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일정이 이렇게 늘어질 줄 모르고 얼마 전에 영국도 다녀왔습니다.

3개월 전에 비행기 표도 다 끊어놨고, 취소도 안 되는 표라 관계자들에게 거짓말하고 다녀왔습니다.

정말 변명이 여지가 없습니다.

대영박물관과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다니면서 '아, 난 정말 쓰레기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싫은 인간이 된 느낌입니다.

 

어쨌든 일은 마무리 단계이긴 합니다.

희망사항이긴 합니다만, 이 물건도 그럭저럭 팔릴 겁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다 때려치우고, 정말 예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술하면서 다른 사람 괴롭히지말자,

괴롭히더라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라고 망상해 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3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0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467
70943 [후기] 보드게임 번개는 성황리에 종료되었고 지금 그 흔적을 들려드립니다. [1] 異人 2012.08.13 2204
70942 폐막식 스파이스걸스, 조지 마이클, U2, 핑크플로이드, 뮤즈, 테이크댓? [10] taormao 2012.08.13 3690
70941 떡밥 회수의 날입니다 [18] 지지 2012.08.13 3897
70940 오늘 추억놀이 하고왔어요 ㅋㅋㅋ [7] 유은실 2012.08.13 2339
70939 닉네임을 바꿨습니다. [9] 문안한애긔 2012.08.13 1962
70938 죽은 고양이. [13] 잔인한오후 2012.08.13 3141
» [일얘기] 망했으요 ㅋㅋㅋㅋㅋㅋ [6] 뚜루뚜르 2012.08.13 2779
70936 페막식에 엘보우 나왔네요 [6] 자두맛사탕 2012.08.13 2607
70935 올림픽 폐막식 감동의 연속 [15] espiritu 2012.08.13 6493
70934 아이들 체력의 미스테리 [14] chobo 2012.08.13 4512
70933 김연경과 흥국생명...그리고 귀화. [16] 자본주의의돼지 2012.08.13 6619
70932 (부탁글) lg 070 전화기 집에 묵혀두고 있으신 분 있나요? [2] 가리수 2012.08.13 1717
70931 [멍멍] 개판(corgi판)이죠 [12] 우주괴물 2012.08.13 4157
70930 지금 광화문쪽 어떤가요? (화재) [8] 안녕하세요 2012.08.13 3238
70929 바낭중의 상바낭) 듀게 시간이 안맞네요. [7] 자본주의의돼지 2012.08.13 1585
70928 (기사링크) “담임목사 횡령했다” “세습 위한 음해다” 소망교회 시끌 chobo 2012.08.13 1472
70927 연예인들 대부업 광고하는게 아무런 상관없지 않나여? [14] 아카싱 2012.08.13 2934
70926 문법이나 맞춤법에 대해서 지나치게 따지는 사람들 [10] 소전마리자 2012.08.13 3505
70925 동메달 박탈되면 박종우만 군대 가나 가끔영화 2012.08.13 1698
70924 백조, 박쥐, 좀비, 뱀파이어, 악령의 기록입니다. [2] 知泉 2012.08.13 18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