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월 모일 인피니트 콘서트에 다녀온 얘기입니다.

콘서트 얘기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택도 없이 부족한 양의 콘서트 얘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콘서트 얘기만 원하시는 분은 중간 쯤으로 내려가세요;;;



1. 

일단 제 컨디션이 많이 좋질 않았습니다. 

새벽 5시부터 집에서 나와 서울과 경기도 곳곳을 찍으며 이런저런 미션을 클리어해야했고, 

그 전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때문에 잠을 잘 못잤어요. 

그러니까 콘서트가 시작한 8시는 3시간쯤 잔 뒤 돌아다니기 시작한지 약 15시간이 되는 때였습니다.



2. 

왜그랬을까요. 그 더운 날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게 되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인삼의 효능(-_-;)까지 더해져서 오후내내 땀을 흘렸습니다. 

의무적인 일정이 끝난 오후 5시쯤 되니까 끈적함을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더군요. 

사람들을 만난다고 좀 갖춰입은 옷은 이미 살에 착 달라붙어 휘감기고 있었습니다.


3. 

그날의 제 인상착의가 인피니트 팬덤내에서 

"콘서트에 온 냄새나는 사람. 게다가 콘서트 내내 썩은 얼굴을 하고 있던..."

으로 회자될 걸 생각하면  끔찍했습니다. 


거기에 온 사람들은 저한테 1g의 관심도 없을 게 확실하지만, 

제가 워낙 제 위주라 저런 쓸 데 없는 걱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콘서트 중간에 

“땀냄새는 삼계탕 때문에, 썩은 얼굴은 잠을 못자서 어쩌고 저쩌고" 

하며 변명을 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 씻기에는 집은 너무 멉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검색에 걸린 여성전용 사우나;;;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피니트 콘서트 보려고 목욕재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팬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4. 

그렇게 사우나에서 나와 콘서트장으로 향했습니다. 

목욕재계는 했지만 팬은 아닌 저는 이미 콘서트 시작인 8시가 넘었지만 뛰지 않았습니다. 

아니 뛰기엔 땀도 나고 너무 덥고;;; 삼계탕때문에;;;; 흑흑.

10분쯤 늦었는데, 이미 콘서트가 시작되었더군요. 

"훗, 신인들의 칼같은 시간엄수라니!"라고 말도 안되는 업신~ 을 하려고 했는데, 

진심은 “두 시간에 십만원이니까 십분이면 얼마야...”라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죠.

그리고, 공연장 객석문을 열고 들어간 저는 잠시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우나에서 잠이 들었던 걸까요? 

공연장 문을 열었는데 아직도 여성 사우나네요?!?!?


네, 그냥 여자분들이 한가득 있었다는 얘기를 재미없게 한 겁니다.



5. 

그렇게 콘서트를 봤습니다. 

너무 피곤했어요. 미리 준비한 병커피를 마시며 겨우 버텼습니다. 


혹시 인피니트 멤버들이 열광하는 팬들틈에서 

심령사진에서처럼 흙빛에 표정없는 얼굴을 하나 발견하고 공포를 느꼈다면 안심하라고 전해주세요.(->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귀신 아니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게 샤워하고 화장도 다시 한 얼굴이에요;;;;;



6. 

콘서트가 끝났습니다. 

1층에서 일본여성팬들이 꽤 나오더군요. 

그보다 적은 수의 백인여성팬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백인여성 관객수보더 적은(;;) 한국 남자 관객들도 목격했습니다.

저는 워낙 남초인 분야 종사자라 콘서트 내내 어딘가 간지러운 사람처럼 마음 속으로 어쩔 줄을 몰랐어요.

(거기 계신 분들이 어떻게 저를 불편하게 한 게 아니고, 하도 여자분들 사이에 있어본 적이 없어서 내 행동에 어디 이상하게 보일만한 게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거죠.) 


이런 압도적인 여초비율은 정말 오랜만이라, 방금 여성전용 사우나에 갔다왔다 하더라도 어색해져버리더군요. 

일단 인원수가.....



지난번 콘서트는 더 대형콘서트였다니.....로이배티님 존경합니다.



7.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콘서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어이..)







이 콘서트 가기 전엔 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제가 발라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콘서트 컨셉이 "그 해 여름"인지라 줄창 의자에 앉아서 발라드만 불러댈까봐요. (->이러면 아이돌 콘서트 간 이유가 희미해지죠;;;) 그리고 야광봉만 흔드는 것 말고 정말 신이 나서 흔들흔들 어깨춤(;;)이 나오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사실 아이돌 콘서트는 "아름다운 나의 아이돌이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열심히 환호를 보낸다"가 정석이니까요. 게다가 정해진 팬구호는 여전히 좀 적응이 안되는 부분인지라;;;



그런데 왜 인피니트 콘서트에 가게 됐느냐......



어디엔가도 썼다시피 듀게에서 본 예매열풍에 "이 빅웨이브, 나도 타고 말겠어"라는 심리도 있기도 했고, 오랜만에 좀 강렬한 엔터테인먼트가 필요하기도 했고......



그리고 이 그룹의 전반적인 것들이 좀 흥미로웠어요. 초기에는 반응이 뭐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고 스타일링의 대실패도 맛보았지만, 돌아보면 노래나 퍼포먼스쪽에서는 막 던지는 투구가 없었고, 멤버들 개성도 개성이지만 회사의 계획된 그림이 잘 투영된 팀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20대 초반 남자아이들이 고유의 인간본성(;;)을 누르고 아이돌에게 주어진 길과 회사의 큰 그림을 따르고 있는가도 궁금하고, 인기가 안드로메다로 가기 전에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여하튼 여러가지로 흥미거리가 있는 콘서트였습니다.






후기는 사실 정리도 잘 안 되고;;;; 구구절절 쓰다보면 길어질테니 아이템별로 정리해봅니다 .



- 앞부분 느린 노래들은 저한테는 좀 쉬는 타이밍이었어요. 이유는 위에.



- 솔직히 인피니트 댄스곡의 대부분이 실제로 부르면서 신명나게 놀기보다는 "퍼포먼스를 감상하는"데 촛점이 맞춰진 노래라, 피곤하기까지 했던 저는 대략 멀뚱히 구경을 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물론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전갈춤이라든가, 추격자 안무를 카메라가 분할해주는대로가 아니라 직접 전체를 본 거라든가...



- 제가 어깨춤;;이 나왔던 곡은 "니가 없을때(신곡이라던데 제목 맞나요?)", "히스테리", "3분의 1"이더군요. (한두곡 쯤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 3분의 1에서 성규가 "야 이 바보야 끝난 일이야"하는 부분을 라이브로 본 게 소득 중 하나였습니다.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우하하 진짜 김성규 감정이 실린 듯 ㅋㅋ"라고 생각했었고, 저 혼자 야이 멍충아, 야이 곰팅아 등등으로 개사를 해서 부르는데;;;; 오리지날을 본 건 의미가 컸죠. 여전히 성규군 감정이 가득 실린 것 같더군요. ㅎㅎ



- 호야-동우는 "니가 없을때" 무대에서 등받이가 아주 높은 커다란 의자에 앉아 분위기를 꽤 잡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였고, 무대매너도 좋았습니다.  그런데......노래 앞뒤로 암전이 되면서 입장과 퇴장을 할 때, 호야와 동우가 허리를 숙이고 어두운 무대를 쪼르르 가로질러 의자에 앉았다가 노래를 부른 뒤 불이 꺼지면 다시 쪼르르 무대 뒤로 들어가는 게 보여서 왠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노래부를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입장과 퇴장은 약간 학예회 분위기랄까 ㅎㅎ



- 어찌됐든 데뷔한지 2년 된 아이돌이 두 시간을 (기억이 맞다면 중간의 밴드 부분만 빼고) 커버곡 없이 자기들 노래로 채운 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노래를 많이 내놓았다는 얘기도 되겠고, 어떻게 보면 팬만 오는 콘서트라는 얘기도 되겠죠. (아니면 새로운 걸 준비를 안했다거나;;;;;)



- 저는 다행히(?) 모르는 곡이 두세 곡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인피니트 밴드는......뭘 하려고 한 건 지는 알겠는데, 고개 푹 숙이고 악기만 들여다보면서 하는 연주라니;;;



- 야광봉은 꼭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흔들고 있는 와중에 빈 손으로 있으려니 두 손을 어쩔 줄 모르겠더군요.



- 미취학 아동 관람불가 문구를 보고 예상은 했지만, 진짜 건전한;;;; 콘서트더군요. 지난 콘서트 직캠을 보면 전에는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콘서트는 가족 3대가 함께 관람해도 좋을만큼 건전했습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섹드립은 엘의 지식인에서 동우군 입술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질문과 답변이 정확히는 기억은 안나지만) "입술이 이 정도면 큰 건가요?"라는 질문에 엘은 대답을 모두 대명사를 써서 "그게 그 정도면 크네요" 해버립니다;;;; 근데 거기서 큰 게 입술이 아니라......로 들렸던 거죠. (저만 그랬을지도;;; 사실 팬들의 반응도 심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의도적인 거였다면 아마도 비틀즈코드에서 엘이 대명사로 대답을 했다가 분위기가 상당히 꼬여버린 걸 이용한 것 같은데, 건전한 콘서트에 은근슬쩍 끼워넣을 정도의 농담이었다고 봅니다.



- 팬들만 아는 농담을 여기저기 많이도 이용하더군요. 저는 엘이 지식인 활동(;;)을 했다는 걸 전에 들은 적이 있었는데 완전히 잊고 있다가 콘서트 다녀와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 그 전에도 그랬고, she's back 일본판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더 그랬고.... 엘과 성열은 회사에서 지어준 짝;;;이로구나 했는데 과연 그렇더군요. 사장님의 깨알같은 비지니스 시나리오.



- 다른 아이돌도 콘서트에서 팬들과의 유사연애를 이렇게 대놓고 하나요? 저는 이거 양현석 이후로 끝난 건줄 알았는데.  인피니트는 유사연애를 들이대는 강도가 상당히 노골적인데, 이게 다 놀이고 상황극이지만 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라 저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좀 오그라들었어요.  근데, 이게 바로 기획사에서 원하는 방향이라는 느낌도 들더군요.  인피니트가 나름 꿈과 희망의 정통아이돌을 추구하는만큼, 순수하게 정말 연애하듯 하는 좋아해줄 팬들만 따라오라는 신호랄까요.  이게 다 계획이라면 사장님은 정말 치밀한 듯;;;;;



- 그러면서도 이 팀을 너무 아름답게;;만 포장하지는 않았고, 객관화가 상당히 잘 되는 게 보였습니다.  장점이죠. 객관적인 시각을 잘 유지하는 성규군이 리더인 것도 확실한 장점인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저한테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이벤트였고, 이 팀이 음반을 한 두세 장쯤 더 내고 콘서트 내용이 많이 바뀌면 한번쯤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제가 컨디션 조절을 좀 더 해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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