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고양이

2012.08.15 22:55

lonegunman 조회 수:1608







그냥 같이 듣자는 포스팅입니다








야옹

야옹



le duo des chats / pccb

translated by lonegunman














농담이고

한 4년쯤 전인가 듀게에 긴급 고양이 질문을 올린 적이 있었죠

나중에 알았는데 나비(가명, 약 5세, 서울)가 저에게 온 그 시기가 딱 성묘된 고양이들이 집을 잃곤 하는 나이대라고 하더군요

아기 고양이 때의 인형같은 외모를 잃고 같이 살던 사람의 애착이 떨어져 다른 탁묘처를 구하기 시작하는.

나비의 사정이야 자세히 모릅니다만 쌩뚱맞게도 건너건너건너고 건너 저같은 사람 앞에 보내질 정도였으니 생각하기 시작하면 속상하기만 하죠

아무튼 갑작스런 동거에 듀게인들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게이클리셰같지만 (난 게이가 아냐, 그 사람을 좋아하고 보니 동성이었을 뿐.) 특별히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좋아하는 동물군이라면 좀 더 비정상적인, 그러니까 말하자면 코끼리, 기린, 개미핥기, 나무늘보같이 어딘가 비정상적인 구석을 가진 외모 쪽에 가깝지요

게다가 반려동물이라면 더더욱 달갑지 않습니다, 동물 뿐 아니라 어디든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으니까


같이 산지 2년쯤 됐을까, 사료 택배가 와서 간식먹자고 비닐을 부스럭거리는데 반응이 없는 겁니다. 비닐 소리엔 귀신같이 튀어나오던 녀석이

온 집안을 뒤져도 감감무소식

순간, 청소하느라 열어놓은 방문과 택배받느라 짧은 순간이나마 활짝 열어놓은 현관문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고

늘어진 티셔츠에 슬리퍼 차림으로 20층 넘는 아파트를 꼭대기서부터 훑어내려가며

동네 꼬마들을 붙잡고 이만한 고양이 못봤냐, 하얀 고양이, 털이 길고, 하얗지 않아도 고양이가 아니어도 그 비슷한 무어라도 못봤냐, 안 비슷한 무어라도 못봤냐

지하주차장을 기어다니다시피하다, 마지막으로 집안을 확인해보고 경비실 cctv라도 보여달라고 해야지

하고 다시 집으로 갔더니만 이놈이 현관문 밖으로 뛰쳐나가긴 커녕 택배 소리에 놀라 침대밑에서 눈도 반짝이지 않고 콕 박혀있었던 겁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 자리에 주저않아 목을 놓아 엉엉 울었지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비는 나를 눈꼽만큼도 사랑하지 않지만 내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는 나비가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걸 알지만 나비를 사랑하고

그 절대적인 비대칭이 낳는 이 완벽한 관계에 대해

아주 미세한 불균형으로도 쉽사리 무너질, 그래서 인간과의 사이에선 불가능할, 그 완벽한 비대칭에 대해


부작용이라면 어느 평행우주에선 나비 자신이었을지도 모를 길고양이들에 발이 멎고

엉킨 털로 저만치 도망치는 뒷모습에 가슴이 쓰라리고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상관없는 것들에 한 번씩 마음이 기우뚱하는 것

내가 그런다고 그들 쪽에서 좋을 건 하나도 없는데

나는 별로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더위 사이 사이로 간간히 가을 바람이 부니

밤이면 거리에 슬슬 한기가 스미니

그저 그런 저런 생각들이 드는 겁니다













내 종이 고양이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내 지하방도 내 온몸을

얼음처럼 굳게 했지


그러니 야옹 야옹하고 et chante à moi (노래 불러줘)

야옹 야옹 야옹 야-아옹 하고


외딴 섬같은 이 집은

머잖아 나의 것이 될 거야


너의 그 콘크리트 둥지는

다시 온갖 쓰레기를 토해낼 거란다


그러니까 이리 들어오렴

방황으로 메말라 떨리는 발톱으로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옹


내 유리눈의 애완동물은

'블론드 온 블론드(밥딜런 앨범)'를 들으며 가르랑거렸어

그 다정한 노인네가 이제부터 너의 친구가 돼줄 거란다


그러니 발톱을 씻자, 길고양이야

아무리 너라도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단다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아옹




paper kitten nightmare / margot & the nuclear so and so's

translated by lonegun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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