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문을 보고 왔어요.

마침 이번주와 지난주 영화의 전당 독립영화상영회에서 용산에 관한 다큐 를 틀었거든요. 
오두희 감독의 용산 남일당 이야기와 문정현 감독이 용산이었는데, 두 작품은 많이 울면서 봤어요. 
특히 용산 남일당 이야기는 거의 내내 그랬는데, 두 개의 문은 그에 반해 굉장히 침착하게 봤습니다. 
앞의 두 편을 보면서 분노를 벌써 많이 느꼈기 때문에 덜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이성적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김일란 감독도 09년 5월부터 남일당 건물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자리를 지키려 하셨다는 얘기로 미루어보아 
분명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 내부의 모습과 이야기들도 많이 찍었을 거 같은데, 조금 더 그 날 경찰 진압이 정당했는가, 라는 지점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그런 부분은 모두 덜어내신 것 같았어요.

그런 지점들에 대해서는 '연민을 걷어낸 용산참사의 진실'이라는 허지웅씨의 이 글에 무척 공감했습니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206191551251&pt=nv

감정적으로 동하게 하는 다큐가 있는 반면에 이런 다큐도 있는 건데, 사실 워낙 사안이 사안인 만큼 철거민 내부의 인터뷰를 따지 않은 재개발 관련 다큐를 별로 보지 못한 거 같아요. 
그 분들의 호소를 듣다보면 감정부터 이입하게 되고 정말 안타깝고 속상하고 분하고 슬프고 하는 감정들에 휩싸여서 그게 이성적인 판단이나 실천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상계동을, 행당동을, 상암동을, 풍동을, 새만금을, 대추리를, 강정을..) 꼭 기억해야지!' 정도의 다짐 혹은
자기위안적인 기능에 그칠 때도 많았구요. (물론 순기능도 많고, 그런 지점에서 으쌰으쌰해서 다른 실천으로 행동을 이어가신 분들도 계실 테니 이 얘기는 순전히 제 입장이지요.)

그런 면에서 두 개의 문은 꽤 이질적이었던 거 같아요. 
진압하는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는 것도 신선하게 느껴졌고, 물론 그것이 온전히 경찰의 입장일 수는 없겠지만 특공대원들이 자필로 썼던 진술서를 보여주는 부분들.. 
최소한 이런 식으로라도 보여준 다큐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거 같아서요. 

위에 말했던 다른 다큐들에 비해 이런 일련의 일들에 경직된 입장을 가진 분들께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만한, 과잉된 연민 같은 게 덜어진 전개의 영화가 아닌가 싶어서, 
이런 독립다큐들을 챙겨보시던 분들 외에 이러한 소재 자체를 생소하게 받아들이시는 분들께도 이 영화는 한 번쯤 권하고 싶어졌어요.


저도 용산 참사에 관해 부끄럽지만 잘 몰랐어요. 그냥 어떤 분들이 올라가있고, 어떤 이유에서 농성을 하고 정도만 알고 있었구요. 
후에 <내가 살던 용산> 같은 만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혹은 주변을 기웃거리는 정도였지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알려들지 않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늘 관심을 기울인 분들은 계실 것이고, 책이나 신문이나 자료들로 접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 같아요. 
그런 분들이 영양이 듬뿍 담긴 식단을 섭취하는 분들이라면,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 일어났는지 아닌지도 잘 모른 채 사는 쪽은 패스트푸드족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에 가까웠던 거 같은데요. 이런 영화들이 나와줌으로써.. 이유식? 아니면 생과일쥬스?  신선한 샐러드? 하여튼 영양가 있는데 먹기도 쉬운 음식 같단 인상을 주네요. 
또렷하게 알고 있지 못한 상태로 극장에 들어가더라도 영화를 보면서 알아가고, 혹은 더 알아보고싶게 만드니까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에도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자기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극장에 왔다가 감독과의 대화가 있다길래 무슨영화인진 잘 모르지만 우연히 보게 됐는데 굉장히 많은 걸 깨닫고 간다고. 

그냥 이런 영화가 더 조명받고 저와 같은 패스트푸드족들이 섭취하지 못했던 영양같은 걸 더 많이 얻어가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나온 말처럼) 용산 참사는 철거민들에게도, 경찰특공대원들에게도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일일 테고 
그걸 목격한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국가적으로도 트라우마처럼 부채감을 가지고 기억해야 할 사건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런 부채의식들이 좋은 방향으로 실천되어야 할 테구요.


*


아, 그리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김일란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
20일에 761명의 시민들이 김석기 전 경찰청장(과 당시 경찰청차장, 기동본부장, 용산경찰서장, 현장 진압지휘관, 경찰특공대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해서 오늘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전에도 유가족들이 김석기를 고발했다가 서면조사만 하고 무혐의 처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서 제대로 확실하게 조사하여서 새로운 증언이나 진상규명이 되었으면 한다구요.

그런 면에서도 (이 영화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함께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바낭글 하나 쓰고 갑니다. (파리바게트 빵 같이 획기적인 마케팅을 했었어야 했는데..... 쓰잘데 없는 스압 때문에 망글이 될 거 같네요 하하하)


*

근데 감독과의 대화 때 빵터졌던 거 ㅋㅋㅋ
이효리씨가 이 영화 보고 트위터에 두 개의 문 보고 왔다는 식으로 글을 남겼는데
거기에 다른 팔로워분이 '언니 두 개의 달을 영어로 쓰신 거에요? 센스~' 하고 답글을 다셨다고 ㅋㅋㅋㅋㅋ
아니나다를까 두 개의 문 감상평 같은 게 궁금해서 검색하다보니 
제가 가는 다른 사이트에도 '두 개의 문에 귀신 나오나요? 무서운 거면 안 보려구요' 라는 질문글이 ㅠㅠ


*

쓰고보니 또 생각나서 추가를.. 이건 관객질문시간에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했던 건데 
채증동영상을 열람하거나 소스를 받아서 편집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영화 속엔 채증 영상도 많이 쓰였길래 궁금했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31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85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008
70420 (듀나인) 인도의 영화 시스템을 현지에서 구경 할 수 있을까요? [6] 타니 2012.08.23 1268
70419 여자 백팩 추천해주세요~! [7] 대나무 숲에서 2012.08.23 2757
70418 뒤 늦게 아랑사또전 2화를 보다가 생긴 궁금증.. [4] 당근쥬스 2012.08.23 1737
70417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킨쉽은 뭐가 있나요...? [40] 정독도서관 2012.08.23 12703
70416 [바낭] 나는 가수다2' 새 출연 가수 뉴스 몇 가지 [6] 로이배티 2012.08.23 2908
70415 배꼽이 아프네요 [3] ColeenRoo 2012.08.24 1603
70414 맛있는 브로콜리 수프 파는 곳 없나요? [2] 루비 2012.08.24 2241
» [영화바낭] 두 개의 문 보고 왔어요 [2] 로즈마리 2012.08.24 1205
70412 화장품 이런저런 잡담 [4] 씁쓸익명 2012.08.24 2019
70411 dvd와 블루레이의 화질 차이 [10] 가끔영화 2012.08.24 3255
70410 전 원래 여자 주인공한테 빠지고는 했었는데... 호타루의 빛 [23] 스위트블랙 2012.08.24 3679
70409 집안마다 다른 식문화에 대해.. [138] 골칫덩이 2012.08.24 6405
70408 우주견(?) 라이카와 동물 실험의 필요성 유무에 대해서 [2] 소전마리자 2012.08.24 2103
70407 식문화 하니 떠오르는 라면 두개 섞어 먹어보셨나요? [13] 소전마리자 2012.08.24 4335
70406 [듀나인] 영화를 찾습니다 [2] 밑줄 2012.08.24 1162
70405 오늘이 그날이군요/ 0000 라면의 최고봉은 스낵면 [4] svetlanov 2012.08.24 2621
70404 보수가 집권하면 왜 자살과 살인이 급증하는가. [36] drlinus 2012.08.24 14552
70403 이웃사람 잘나가는군요 [9] 감동 2012.08.24 3618
70402 [바낭] 육아휴직과 경력... [17] 가라 2012.08.24 3625
70401 수영선수의 프로포즈 [2] 오맹달 2012.08.24 220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