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단편 영화제 후기.

2012.09.01 00:46

잔인한오후 조회 수:1074

대종상 시상식을 TV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위상도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구요. 그 이유는 제가 영화 자체에는 관심이 있지만 실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겠죠. 슬슬 이 버릇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는게, 책을 읽을 때는 작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작가와 상관 없이 꽤 오랜동안 책을 읽었지만, 신경쓰면서 읽는게 자신의 취향에 맞춰 책을 고르는데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주연이나 조연 때문에 영화를 보기란 매우 힘들어요. 영화 밖의 개인에 집중하기에 아직 저는 익숙하지 않아서요. 언제쯤 호감가는 사람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늦게 시작한 팬질이 무섭다던데.


대종상 단편 영화제는 49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긴 하지만, 대종상 영화제와 분리되어 시행되는 건 이번 년도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뒷사정은 알기 힘들지만, 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입니다. 첫번째로 단편 영화제가 열리는 고흥은 변변한 영화관조차 없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보게된 단편 영화는 영화관이 아닌 무대극장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무대극장은 꽤나 깊어 무대를 사용할 때는 깊이 있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영화를 볼 때는 앞에서 셋째줄에 앉아도 CGV의 15-16번째 자리에 앉는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게다가 화면 비율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스크린 크기였구요. 양 옆과 위 아래 둘 중 하나는 짤려나가 감독들이 코멘트할 때마다 한마디씩 하더군요. 아, 영화 상영 자체의 푸념을 하기 전에 이 영화제가 어떤 형태였는지부터 설명을 해야겠네요.


아마 지방에서 축제에 참여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지자체 지방 축제들은 거의 비슷한 포맷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날과 마지막날은 주요 인사들이 등장 지루한 이야기와 함께 몇몇 연예인들이 공연을 합니다. 둘째날과 셋째날에는 한국적인 공연(마당극과 판소리 등)과 이국적인 서커스(중국 곡예단 및 국적을 알 수 없는 무예단) 공연이 섞이죠. 그리고 하일라이트는 노래자랑을 하는 겁니다. 이러한 축제 포맷은 외지인보다는 내지인을 위한 포맷이죠. 이번 영화제는 그런 내지인을 위한 포맷에 영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첨가가 된 기묘한 형태였습니다. 오전 중에는 영화계의 발전을 위한 토론과 현지 사정, 영화 분석에다 오후에는 원래 있었던 포맷이 섞이고 그리고 대망의 저녁에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짜리 최신영화를 틀어주는 식이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간 당일은 부러진 화살을 상영한다고 써 있었습니다) 저는 딱 하루 참가했는데 7시부터 영화 상영을 한다고 6시 40분 쯔음에 도착해 있었죠. 자주 보던 형태의 외부 세트장이 있고 수백석의 자리 한켠에 백 명 안 될듯한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7시까지 기다렸는데 웬 오디션을 하더군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글쎄, 단편 영화는 옆의 건물 안에서 상영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 설명은 있지도 않았는데. 그 건물이 위의 서술된 그 건물이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최악이었습니다. 몇몇 대사는 씹혀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화면 화질이 좋질 못해서 특정 상황(문자메세지를 읽는다던가)에서는 아예 알아보지도 못 하겠더군요. 영화를 틀어주는 기기 자체도 예상하건데 노트북으로서, 제출된 DVD를 틀어주는 방식으로 하더군요. 상상할 수 있는 기기 문제는 모두 발생했습니다. 블루스크린부터 시작해서 DVD가 튀거나, 상영되는 도중에 멈춰서 나중에 재상영하거나 음향이 갑자기 안 나오거나. 4번 중 한 번은 그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무언가 영화의 퀄리티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장소는 상당히 더워서 나아중에 에어컨이 정상 가동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는 전부 종이부채를 만들어서 모두들 부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미 제출된 DVD로 심사평가는 다 이루워졌고 이 상영은 관람객들을 위해서 틀어주는 것일텐데 이래도 될까 싶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약 1시간마다 10분씩 쉬는 영화보기 마라톤 같았어요. (거기서 차 없으신 분들은 어떻게 돌아갔을지 상상하기 힘들더군요. 택시 몇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긴 했습니다만.) 제 첫 단편영화제 참석이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다른 부분에 있어서 저는 매우 만족했습니다. 영화 상영 방식은 영화를 틀고 끝나고 나서 감독과 5분간 코멘트, 다시 영화를 틀고 감독과 5분간 코멘트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영화를 함께 보는 대부분이 상영 영화에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아예 감독이거나 했어요. 마치 아주 거대한 대학교의 영상학과 졸업작품 상영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감독들의 편차가 상당했다는 거죠. 약 90편의 영화가 예선에 올랐고 약 30편의 영화를 저녁 7시부터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영화를 본건 처음이었을 겁니다. 영화 각각의 편차와 장르가 상당히 달랐지만 그래도 하나하나가 매우 맘에 들었어요. 또한 지자체 제작 책자가 아주 두껍게 있었는데 거기에 출품작의 섬네일과 작품의 간략한 내용(ㅁㅁㅁ가 ㅇㅇㅇ 하기 시작하는데….), 등장인물과 감독의 이력이 적혀있더군요. 그 책자를 얻은 것 하나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제가 본 작품만 해서 스포일러 게시판에 내용을 요약해서 적어보고 싶습니다만 이미 머리 속에서 풍화되어 가는군요.


다른 무엇보다도 한 시대에 살고 있는 이제 막 시작하는 감독들의 작품들을 봤다는 것이 알 수 없는 뿌듯함을 가져다 주더군요. 마치 미드나잇 앤 파리에서 유명한 작가들과 함께 지내보는 것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사람 중 몇은 그 당시에 이미 유명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 쪽이 좀 더 흥분됩니다) 영화를 보고 5분 코멘트로 감독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부끄럽다'란 말이더군요. 작품을 출품함과 그 작품을 다 만든게 시간적 격차가 나서 과거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나 봅니다. 그리고 코멘트를 들으면서 생각난 점은 별로 신경 안썼던 부분에 엄청나게 많은 함의를 부여하기도 하고, 굉장히 신경쓰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별 의도없이 장치 할 때가 많았단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감독이 의도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버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관객이 (또는 내가)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하며 말을 꺼내는게 더 올바르겠어요.


제 가 식견이 있다면 영화에 나오는 특정 연기 잘하는 사람을 떠올려서 미래가 창창하다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만, 아직은 사람들을 기억하는건 무리군요. 꽤 많은 영화가 학창시절을 다루고 있었으며, 그리고 또 진지함을 다루는 영화도 많았습니다. 액션 영화는 매우 찍기가 힘들고 그만큼이나 개그 영화도 찍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죠. 찍기 쉬운 장르가 어디있겠냐마는 어설프면 가장 독이 되는 장르는 코미디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확실하고 완벽하게 조리된 요리나, 조율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설픈 쪽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연습한지 얼마 안 된 현대 클래식 피아노 독주를 듣는다거나 하는 거 말이죠. 좋은 요리라고 하며 미식을 하려면 좋지 않은 요리가 왜 좋지 않은지는 먹어봐야 알죠. 영화도 아주 완벽하게 만들진 않았지만 그러한 기교나 실수, 어설픔이 머리 부르게 채워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언론에서는 영화의 모든 상을 누가 받았는지 잘 쓰지 않더군요.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연락이라도 했을 뻔 했어요. 약 20개의 상을 줬는데 그 중에 제가 본 영화는 두 편 뿐이었습니다. (내역을 보면 상 받은 영화의 수는 10편이네요.) 나머지 상 받은 영화들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군요.


P.s. 레드카펫이라는 것은 영화 시상식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이 걸어들어가는 길 아닌가요?

단편 영화제의 레드카펫은 어떤 연유인지 궁금합니다. 얼굴만 비치고 다시 돌아가는 걸까요.

http://cafe.naver.com/dongshin123/4185 - 네이버 검색에서 가장 깔끔하게 나오는 이 단편영화제의 레드카펫.

관계자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언제나 그런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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