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라고 하긴 많이 허술하지만요 어쨌든. 저는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넘어서는 모종의 동질감도 느낍니다.

듀나님은 한국 아저씨 군내, 라고 표현하신 그 묘한 촌스러움과 오그라드는 맛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요 독보적이죠.

장첸이 나온 숨, 너무너무 좋고요. 활은 꿈에서도 이미지가 반복될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빈집의 마지막 장면, 나쁜 남자의 비장함?이랄지 역시나 이미지.

김기덕의 영화가 스타일리쉬하다고 말하면 뭔가 우스운 기분이 들지만요, 저는 그 파열음 같은 미쟝센들이 좋습니다.

감수성은, 다시 말해 독보적이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김기덕 영화 중에 좋아하지 않는, 영화도 있어요.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요.

성현아가 나온 시간, 이라는 영화, 굉장히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는 '한국 아저씨 군내"가 지나쳤다는 생각이고요. 아름답긴 합니다.

 

쓰다보니 제 말버릇이 나오는데, 저는 보통 어떤 류의 평가를 내릴 때 <아름답다>가 굉장히 중요한, 혹은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아름답느냐, 아름답지 않느냐로 호불호가 나뉘는 것 같아요. 반사적으로요.

제 기준에서 김기덕은 대부분 아름답다, 쪽으로 분류됩니다.

꽃과 가을하늘과 미인을 볼 때의 아름답다, 와는 다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아실 거라 생각해요.

 

제가 김기덕에게 느끼는 아름다움은 아마 말로 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표현 가능한 구체적인 부분들까지 굉장히 많을 테지만

그 중 하나가 김기덕의 꼰대 기질입니다.

본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물론 인정할 수도 있겠죠.

혹자는 김기덕을 홍상수나 여타 감독들과 묶어서 <대중적 작가주의>라고 부르더군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김기덕은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어떤 말을 했든, 순전히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라스 폰 트리에의 초기작에서 (현재도 물론 그렇지만) 강렬하게 느꼈던 마음과 흡사한데요,

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질 않습니다. 아니, 숨길 줄을 모릅니다!!

모호함이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따위는 없죠. 크게 봤을 때요. 이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뻔히 다 드러납니다.

굉장히 직설적이고, 단순하고, 나쁘게 말하면 <뭐가 더 없다> 무식한 방식 혹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기만 해,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산 늙은 남자가 방금 휘두른 혁대로 자신의 팔을 내리치며 우는 장면

같은 것이 생각난다면 역시 덕후로서 오바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피에타의 경우, 그런 마음이 굉장히,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폭력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포스터에서처럼 조민수가 피에타의 역할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그것을 보는 관객들이 피에타가 되길 강요받는 기분입니다.

나 씨발 존나 이런 새끼야!!!! ....하지만 당신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나를 보듬어주고 안아줬으면..........................................

하고 말하는 듯 했어요.

 

개봉 첫 날 첫 영화로 봤습니다. 생일 기념으로요! 하하.

함께 본 사람은 김기덕을 좋아하지 않는,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피에타를 볼 생각도 없었다네요.

그 사람 말로, 김기덕의 영화는 카리스마가 없답니다.

그 카리스마가 어떤 카리스마인지는 알아요. 맞죠.

김기덕은 결코 카리스마 있는 감독이 아니고 그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을 가지고 놀면서 쥐락펴락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는 법을 모르죠 (라스 폰 트리에와 가장 다른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하염없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활짝 드러내며 더욱 상처받고 싶어하며 동시에 위로를 원하는

찌질한 방식입니다.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니 오해없이 봐주세요)

그래서 저는 김기덕이 좋은 것 같아요.

 

조민수는 좋았습니다.

초반에 두 주연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어색하다고 느꼈는데, 큰 흐름에서 봤을 때 적절했어요.

이정진도 마찬가지. 크게 뛰어나진 않았지만 기본은 해준 것 같습니다.

같이 본 사람은 그렇게 몸통 크고 긴 사람보다 (자기처럼) 작고 누추한 몸의 남성이 했다면 더 어울렸을 거라지만

전 이정진 같은 몸이라 좋았어요(...)

그러나 머리색과 아이라인은 좀..................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정진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네, 아름다웠습니다.

 

대사가 매우 아쉬웠어요.

제가 좋아하는 김기덕의 영화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대사는 나름 함축적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 말이 너무 많아요.

특히나 그 긴 문어체의 대사들. 사회문제에 관한 설교. 조민수가 그런 대사를 읊을 때는 의자 밑에 기어들어가고 싶었을 정도.

아니 왜 갑자기 사회비판하는 척 하는 상업영화 스타일까지 가버리나요.

이런 문제의식도 가져줘야지, 하는 정도의 얄팍한 언급이라고만 느껴졌어요.

물론 문제의식 없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요, 감독님, 진짜 하고 싶은 얘길 하셔야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너무 길게 해버리니까 김이 빠져요.

 

음악 좋습니다. 평균적으로 어울리는 음악이었어요. 좀 더 이질적으로 음악을 썼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김기덕 영화니까, 그렇게 해줄 수는 없겠지 (하고 포기)

 

공간이 매우 좋습니다.

초반 장면에서 조민수가 엄마라고 찾아와서 나누는 대화, 그 골목길.

온갖 고물과 폐기계들로 가득한 삼거리에서 두 사람을 잡을 때, 오우, 역시 김기덕의 감각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정진이 돌아다니는 거리와, 밀폐된 좁은 방들. 그곳에 있는 사물들과 인물들의 감정선이 매치되며 빚어지는 효과.

 

주변에서 많이들 궁금해하는 잔혹도.

저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원래 그런 류를 잘 견디지 못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면 견딥니다. (식인하는 스너프류 필름도 그 속에 담긴 감정에 동요되고 아름다우면 눈을 못 떼고 봤어요.)

근데 피에타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중간중간 굉장히 많은 장면에서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어버렸습니다;;

같이 본 사람 말로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었다는데, 그 상황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예리한 물건, 칼, 기계 등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몹시 힘드실 것 같고요.

저는 문틈에 손 찧는 것에도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조차 힘들었어요.

깜짝 놀라게 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김기덕은 단순무식(..)하니까요. 그냥 갑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 씨네큐브 한 관이 거의 찼더라구요.

보는 내내 옆쪽 아주머니들의 반응이 계속 신경쓰였습니다.

특히 여성학대 장면이랄까, 그런 류에서 폭발적이더군요. 아침 방송에 매맞는 아내 나올때의 방청객 반응.

나중에는 육두문자까지 대놓고;;;;;

음.. 뭐, 그럴 만 한 장면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엔딩 크래딧 다 올라가기도 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시더라구요.

 

저는 캐치하지 못한 부분인데, 같이 본 사람 말로는

봉준호와 박찬욱을 의도적으로 깐 것 같다네요.

이정진 캐릭터가 박찬욱의 모 영화에서 모 캐릭터의 외모와 상당히 흡사하고

엔딩 전 장면의 건물 역시 봉준호의 모 영화에 나오는 결정적인 모 장소와 흡사하고

의미적으로도 흡사하게 사용되고 어쩌고.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말한 봉과 박의 영화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확실히, 흥행영화의 코드를 미묘하게 사용하며 동시에 비트는 걸로 보이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풉, 하고 웃음이 나오고 손발이 소멸하듯 오그라드는 장면들이었죠.

나도 이런 거 할 줄 안다고, 몰라서 안 하는거 아니라고, 근데 이렇게 하니까 니네 진짜 좋냐? 이런 말이 들리는 듯.

조민수와 이정진의 ....... 장면에서, 티비 단막극에서도 하지 않을 법한 영상을 보고야 말았지요.

아, 아니 어...어...........어째서!!!!! 하고 절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화면이었습니다 (........)

결과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잘 하는, 하고 싶은 것들로 해도 충분했거든요.

피에타는, 그러니까,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가지들도 굉장히 좋아요. 아이디어도 훌륭하고 파격적입니다.

근데 그걸 그런 분노로 풀다니요.

 

영화를 보고 섣불리 감독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감상한 소감으로써,

김기덕은 지금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뽱!!! 하는 것 같습니다.

강심장이라든지 예능 출연, 최근 일련의 모습들을 봤을 때 더욱 그렇게 보이는 걸수도 있지만요.

분노로 들끓는 마음을 영화에 거칠게 눌러담으면서 더욱 좋아질 수 있는 이야기를 산으로 가게 합니다.

피에타를 보고나서 이것이 김기덕의 열여덟 번째 영화라는 생각 대신,

열일곱과 열아홉 사이에 놓인 소품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마 그런 이유였겠지요.

이건 굳이 영화로 드러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린 그의 행간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어째서 점점 자신을 고립시키고 상처를 벌리는 방향으로 가는걸까, 아쉽고 안쓰럽습니다.

 

베니스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글들을 보고 있습니다.

좋은 상을 받을 수도 있겠죠. 그럼 물론 김기덕을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기쁠 거예요.

하지만 역시 안쓰럽습니다. 마음이 아파요.

 

엔딩을 얘기하고 싶어요.

아름답습니다. 무척 아름다와요. 몸에 힘이 풀리고 멍해질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같이 본 사람은 으흠?하는 반응이었고요. 한숨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김기덕은 김기덕이네, 한 방이 있었네, 라는 말을 하더군요.

김기덕다운 엔딩이었고, 그것을 위해 좀 더 김기덕스럽게 달려왔어도 좋았을 엔딩입니다.

산으로 갔던 얘기가 아름다운 엔딩으로 돌아돌아돌아오니 조금은 허무하고 조금은 다행이고 눈물도 좀 나더군요.

 

김기덕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글 같은데, 사실 저는 지금 반반입니다.

상처받은 감수성은 회복될 수 있나요?

피에타는 너무 많이 갔고, 너덜너덜한 아빠 팬티에 묻은 흰 자국을 본 기분이랄까, 뭐 그렇습니다.

 

뭔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두서없이 쓰다보니 이 글도 역시 산으로 가네요.

 

아무튼 쓰다보니까, 전 정말 김기덕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라는 결론이라면 역시 좀 이상한 글이 돼버리겠군요..

 

어찌됐든 잘 됐음 좋겠습니다 피에타. 좋은 상도 받았으면 좋겠고요.

아무쪼록 김기덕 감독님, 계속해서 하고 싶은 영화 실컷 하셨음 좋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어제 일 때문에 파주엘 갔다가 헤이리 김기덕 감독님 댁을 (밖에서만)  구경했지요.

요즘은 그 쪽 집으로는 잘 안 오신다는 이웃분의 제보도 듣고;;;;

구경했는데, 집 참 좋더라구요; 차도 거의 일억 가까이 하는 것이라면서;;;

다행히(?) 일전에 봤던 다 무너져가는 텐트에서만 기거하시는 건 아니라 안도 (라고 하면 지능적 안티 인가요;;)

 

이렇게까지 돼니 결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머엉)

피에타 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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