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황



 교통사고 후 장장 15개월만에,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취직해서 일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어서 일단 몸상태 간만 보려고 이틀 나가는 학원 파트강사 알바를 구했어요.

뭐 어차피 회사 다닐 무렵 사표내고 다시 하려고 했던 일도 이거라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죠. 이력서 등록해 놨더니 면접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고, 우왕 집에서 짱 가깝다! 마을버스 10분! 하고 가봤더니 건물 세 층을 쓰는 꽤 큰 규모의-_-;;학원이길래

와오 씐나씐나 면접보러 갔더니 나오라고 해서 눈누난나 출근한 지 일주일째.

주 이틀 나가는 거지만 말하는 것처럼 널널하지 않아요. 수강생 규모가 800명이 넘는지라 시험기간인 지금은 정신업뜸. 

옛날과 달리 교과서 종류가 무지막지 늘어나 학교마다 다 달라서 원래 같은 반이던 애들을 학교별로 나눠 네 반이던 제 담당이 여덟 반으로 늘었죠. 

말이 이틀이지 사나흘 나가고 있어요. 온전히 이틀만 나가려면 중간고사 종료인 시월 중순꼐나 돼야 할 듯. 

고작 며칠 파트인 저도 꽤 바쁘네, 하고 느낄 정도니 전임들은 눈코뜰새가 없죠. 얼굴마담 부원장님은 일주일 내내 일해요. 

그치만 이 바닥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우직하게들 일합니다. 

이틀이지만 일단 사나흘 나가고, 명함도 나오고, 목에 사원증 비슷한 거 걸고 그러니까 알바지만 그냥 회사 취직한 느낌이에요. 


  저는 어떠냐면, 일하니까 신나요. 쌍문동 이사와서 8개월동안 침대에 둔눠 컴터랑 술마시기만 하고 있다가 바깥에서 뚜닥뚜딱 돌아다니니까요.

일하기 싫다고 8월달 내내 벱후님한테 징징댔는데, 막상 일 구하고 시작하니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쌩쌩하고 기운차진 저를 보며 어이없어해요.

생각해보니 독립하고 교통사고 나기 전까지 저는 늘 깨알같이 촘촘하게 살았었는데, 그런 거에 스트레스 받는 성격이 아니었단 걸 까먹고 있었음.


  어쨌든 일해서 신나는 건 둘째치고, 강북바닥이 좁다 좁다 하지만 진짜 이럴 수는 없어요.

오른쪽 옆에 앉은 선생님은 알고 보니 즤집 건넛건넛골목, 오십미터 안짝에 사는 옆집여인이었고(우와 동네친구 술친구)

왼쪽 옆에 앉은 선생님은 알고 보니 제 초중고 1년 선배로 11년 동안 월요일 조회를 같이 들은 사이. 학원은 그 동네랑 그리 가깝지도 않은데!

뒤쪽에 있는 슨생님은 제 청춘의 동네 의정부에 사심. 동네 얘기하면 서로 다 알죠.

오늘은 출근 안 하는 날인데, 국어과 슨생님들이 모여 제 환영회를 하겠다고 그들이 퇴근하는 열시 반에 회식 시작하기로-_-;;

초중고 슨배님과 술취하면 교가 메들리 부르기로 했어요.

우짜든동, 새삼 세상 좁고 착하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스빈다. 절친 중 1인은 그 얘기 하니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니...'라고-_-.





2. 절연



  착하게 살아야겠다, 는 얘기 하니 떠올라서. 

요즘 인간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로 가져왔던 생각들을 돌이키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에 한 친구가 제게 이래저래 섭섭했던지, 이제 보지 말자고 절연을 선언했는데, 저는 그의 섭섭함이 크게 공감되지 않았고, 사실은 그와의 관계가

끊어진다 해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응, 섭섭했다면 미안해, 잘 지내, 라며 그러마고 받아들였죠(-_-...).


  이런 식으로 끊어진다면 결국 그 정도 관계였다는 거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관계가 끊어진 그보다는(;) 그간 저를 지나간 인연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저도 누군가와의 인연을 일방적으로 잘라낸 적이 있었고, 절로 소원해진 인연을 애써 복원하거나 

유지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결국 안 보게 된 사람들도 수없이 많고, 이번의 그애처럼 저한테 일방적으로 관계의 종언을 고한 사람들도 있죠.

그 모든 인연들을 유지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전혀 들지 않고,-사실 인간관계 유지에 관심이 있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기도 힘들잖아요-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돌이켜보니, 저는 그동안 '관계'에 대해 기본적으로 예의라는 게 참 없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냥 나만 뒤끝 없고, 나만 신경 안 쓰이고, 내눈에 안 띄어 상관 없게 되면 다 괜찮겠지, 알아서 모든 게 되어 가겠지, 라고 내깔겨두고

버리거나 방치하는 것 이외의 어떤 포즈도 취하지 않았던 것. 제 의지와 상관 없이 떠나가는 인연들에 대해서도, 금세 고개 돌리고 잊어버렸던 것,

저는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내 인생 감당하기도 빡세니까' 같은 저한테만 말이 되는 말들로 덕지덕지 칠하고 살아왔지만,

이번에 다시 되짚어 본 어떤 인연들은 그떄 그러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저는 앞으로 잘 하면 되지, 라며 스스로 토닥토닥했어요. 벱후님한테 이 모든 얘기를 늘어놓으며 

'나 이러다 늘그막에 혼자 볕도 안 들고 여름에 물 새는 지하 단칸방에서 몸 다 망가져가지고 똥오줌 지리며 죽어갈득 엉엉 흑흑' 징징댔더니

'응 넌 그래도 싸...'라고 했던가 아니던가...가물가물.


  -어쨌든 이리 되새기고 반성한 덕에, 십 년 넘은 인연이지만 최근 1년 정도 연락을 서로 안 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카톡과 주소록에서 이름 번호를 

삭제한 지인에게서 급히 제 도움을 청하는 연락이 왔을 때, 무심하게 쌩까지 않고 도울 수 있었습니다. 전 이제 주변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테에요.

네, 정반합. 역사는 이렇게 형성되고 인간은 이렇게 성장하는 거예요(걸까요?).




3. 조민수



  그제 벱후님과 심야로 피에타를 봤는데, 바로 황금사자상 소식이 들려와 신기했스빈다. 벱후님이랑 저랑 손 마주 부여잡는 게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데, 중간중간 대사와 상황이 너무 오글거려서 우리는 손발을 꼭 붙이고 고개를 떨궈 히끅끅거렸습니다. 투박하고 촌스러웠지만 

몇몇 장면들이 좋았습니다, 회화적으로. 마지막의 트럭 주행이라든지, 추심중인 이정진의 눈동자가 노란 전구조명에 빨갛게 보여 마치 악마처럼 

보였던 장면이라든지. 벱후님과 저는 전부터 조민수를 몹시 좋아했는데, 그녀의 연기는 제겐 TV드라마스럽게 보였고, 그래서 더더욱 김기덕의

영화와 어울렸어요. 그녀의 생김 역시, 또렷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묘하게 청승맞고 찌든 사연이 어울리고 촌스러운 느낌이어서 청담마녀

같은 역보다는 사연많은 시골 요정 마담 이런 느낌이 어울리죠. 그려보고 싶어서 그렸는데 너무 졸려서 눈 부비며 그렸더니 하나도 안 닮게 되었습니다.

영화보고 나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얼굴은 밀양의 전도연, 아이앰러브의 틸다 스윈튼, 피에타의 조민수, 정도인데 전 쩌는 사연, 처절한 표정의

중년 언니들에 끌리나봐요. 읭, 써놓고 나니 진짜 일관성 있네. 취향발견!




4. 루이죠지 


   날 추워지니 꼬닥꼬닥 붙어 있는 남매. 열흘 있으면 생일이에요, 곧 만 네 살이 됩니다.

딸내미의 그윽한 눈매♥

하릴없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노닥거리다 에미와 눈이 마주치자 냐앙-애법 앙칼지게 울어제껴 보는 딸.


+) 동(네)친 모님과 먼(동네)친 모님과 얼마 전에 먹은 스시혼 정식 코스 중 셋. 인당 2만원에 모듬사시미+초밥+튀김+조림+우동(모밀)

코스를 즐길 수 있는 동네 핫플레이스죠. 전 많이 갈 때는 하루 두 번씩 가기도 했고, 일이주에 한 번은 가요. 소개하면 실패가 없는 곳이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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