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평이 굉장히 많았던 극이라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생각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언지는 그때그때 설명을 잘해주는 편이라 잘 알겠어요.


말 혹은 이야기가 가지는 힘, 

누구는 이야기로 자신을 드러내고 누구는 이야기로 자신을 숨기는 양상,

진실과 거짓이 말, 이야기, 문장들에 파여있는 함정들로 인해 교묘히 역전되며

말 혹은 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어긋나면서 벌어지는 파국, 

그리고 그 틈새를 이용해 이야기가 화자와 청자 자체를 압도해 버리고 나아가 현실 자체를 압도하려 드는 그 가공할 힘...


또한 현실의 비참함을 굳이 버텨내며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그 이전에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않나?

하지만 겪지도 않고서 그 비참함을 이해하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더불어 그 선택을 조장한 '이야기'가 유죄인가 아니면 그 화자가 유죄인가 혹은 청자가 유죄인가?

이야기에 죄를 부과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 이전에, 이야기에 어떤 실체가 있기나 한 것인가?

이 질문에서 주제는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 그 자체가 가지는 힘에 대한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이 그저 흩뿌려져 있어요. 

극본 내에서 그때그때 설명도 꽤 해 주는 편이고 

배우들 연기나 연출(현실과 이야기를 오가고, 세트와 스크린 등을 이용한 연출이 탁월합니다)도 좋은데도

이야기가 좀체 수렴이 되지를 못하고 그저 산발적으로 제시되다 흩어지고 마는 느낌입니다.

본 사람이 능동적으로 뛰어다니면서 하나하나 다 그러모아서 정리하지 않으면, 

볼 땐 흥미진진하지만 다 보고 나와서 내가 뭘 얘길 본 건가 하기 십상인 극 같아요.


뭐, 돈 아까웠다 시간 아까웠다 이런 건 아니고 따지고 보면 꽤 만족스러운 극인 것도 사실이지만

호평을 너무 들은 탓에 정말 잘 짜여진 극을 기대하고 들어간 탓인가봐요ㅠㅠㅠ 아쉬움이 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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