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생일 케잌들
눈송이의 맛, 그리고 12월의 불꽃
클로이라는 예쁜 소녀와의 첫키스
교실에서 그녀에게 글을 써줬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지
고통에 시야가 흐려질 때
가만히 머릿속에 되뇌이는 기억은
너랑 나랑 나무 아래에서의 K-I-S-S-I-N-G
그 기억들만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면
밥을 먹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졸업식날
부모님이 써준 편지
비에 젖은 파리
모든 사진 속에 등장하는 친구들
눈물에 젖은 베개닛 위로 함께 앉아 있었고
늙은 버드나무 위에서 영원한 잠이 들었던
그 기억들이
고통으로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너랑 나랑 나무 아래에서의 K-I-S-S-I-N-G
머릿속에서 그 기억들만 영원히 재생시킬 수 있다면
평생 굶어도 배고프지 않을 것 같아
내 첫 번째 어쿠스틱 기타
나의 첫사랑
아빠의 낡은 자동차
구겨버렸던 내 바보같은 시들
지워버렸던 엉터리 그림들
말했어야 했던
혹은 말해놓고 후회했던 그 모든 단어들
내 머릿속에 눌러붙어 떨어지지 않던 노래들
교실에서도, 침대에서도 되뇌이던 노래들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희미해지고 싶지 않아
네가 날 놓아 보내줘
이 노래를 페이드 아웃 시키고 싶지 않아
그러니 네가 대신 해줘
나는 페이드 아웃되고 싶지 않아
네가 날 페이드 아웃시켜줘
난 페이드 아웃되고 싶지 않아
//
라세 린드는 어디선가 '그 여름의 마지막 날'이라고 노래했었죠
왜인지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사실 여름은 가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가버리고
가을은 또 모호하게도 오는 것인데
하지만 그것을 무언가의 비유로 읽는다면 꼭 아닐 것도 없습니다
어떤 날은 틀림없이 여름의 마지막 날이고
갑자기 모든 것이 동결되지요
계절을 탄다는 건 참으로 성가신 일입니다
자유 의지를 잃은 대자연의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거든요
여름의 습기가 거짓말처럼 증발한, 건조하고 서늘한 기운이 폐포에 닿으면
저는 어김없이 가을을 앓습니다
일종의 감정적 재채기 직전의 상태, 실제로 재채기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와는 무관한
해소 불가능한 재채기 답보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겁니다
이럴 때는 미치도록 살고 싶은데, 물론 이미 살아있기 때문에 이 살고 싶은 감정은 해소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목적지를 향하다가도 목적지로 걷기보단 걷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싶어지거나
등 뒤로 돌맹이를 던져 방향을 정하거나, 나뭇가지를 쓰러뜨려 가리키는 쪽으로 가고 싶어지거나
전봇대마다 전단지를 찢어 날리며 큰소리로 웃어제끼거나... 점점 이상해지네요,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