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새로 나온 여행 산문집이죠. 그런데 정말 혐오감이 일어서 책을 덮어버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다름 아니라, 저자가 인도 여행을 가서 라면을 먹은 에피소드입니다.

저자는 인도로 떠나면서 라면 다섯개를 가지고 갔다는데, 막상 가보니 숙소에는 그걸 끓여먹을 수 있는 취사도구가 없더래요. 그래서 숙소 근처의 가난한 판잣집에 들어가서 불을 빌려 라면을 끓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힌 것은, 그 집의 부부와 아이들이 그 라면을 매우 먹고 싶어하는 눈으로 쳐다보는데도 저자는 마지막 국물까지 혼자 다 먹고 나왔다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너무나 소중한 그것을 나눠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그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고요.

가져갔던 다섯 개 라면 중 하나를 다른 한국인 여행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저자에게 남은 라면은 네개였는데 그걸 모두 그런 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나 봅니다. 하루에 한번씩 그 판잣집을 찾아가서 그런 식으로 라면을 하나씩 혼자 끓여먹고 나왔대요. 그 판잣집 사람들은 먹고 싶어하는 눈으로 쳐다보든 말든.... 그런데 세개째를 끓이는 날에 그 판잣집 부부가 대놓고 사정을 하더래요. 그거 우리도 좀 먹고 싶다고. 특히 아이들이 너무 먹고 싶어한다고. 저자는 안된다고 끝내 거절하려 했지만 그 부부가 너무 간절하게 부탁을 하니까 결국 굴복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세개째의 라면이 끓는 동안 허겁지겁 숙소로 달려가서 마지막 남은 라면을 가져왔다는데, 그렇게 허겁지겁했던 이유는 숙소에 다녀오는 동안 혹시 그 가족들이 그 라면을 먹어치울까봐 겁나서였다네요. 그렇게 허겁지겁 돌아온 그는 끓여진 라면을 다 먹은 뒤 그 마지막 라면 봉지를 그들에게 남겨주고 떠났답니다. 알아서 끓여먹겠지 하면서... 


저는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이 사람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 더 이상은 읽고 싶지 않더라고요. 만약에 제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생면부지 동양인 여행자에게 취사도구를 빌려준 게 너무 고마워서, 그 라면들을 한꺼번에 끓여서 그 가족들하고 나눠 먹었을 거예요. 이게 한국 라면인데 대단한 건 아니지만 같이 맛있게 먹어요, 이러면서요. 그게 사람 도리 아닌가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정나미가 떨어져서 다 읽지도 않았지만, 책의 나머지 부분들도 저에게는 별로였어요. 요새 유행하는 여행 산문집이 대개 그렇듯, 파스텔톤 얄팍한 감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았다는 느낌이랄까요.

혹시 이 책 읽어보신 다른 분들 계신가요? 이 라면 에피소드에 대해서 제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 건지, 아니면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아래 댓글에 닭튀김특공대님이 발췌해주신 원문을 다시 보니 냄비는 본인의 것이었고 불만 빌렸군요. 덕분에 수정했어요.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ㅠ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38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90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868
68803 (바낭) 군대하니깐 제가 복무하면서 가진 생각 한가지 [15] 소전마리자 2012.09.15 2169
68802 원곡보다 좋은 COVER [3] Boyfalling 2012.09.15 1638
68801 맥도날드 커플 미스테리 [22] 듀라셀 2012.09.15 5789
68800 잠자는 잠자야 하는데 - 감사는 셀프입니다 [16] 잠자 2012.09.15 2275
68799 군대 이야기는 괜히 봐가지고... [22] 멀고먼길 2012.09.15 3095
68798 오오 지디형 오오 [7] 루아™ 2012.09.15 3728
68797 [바낭] 야, 술주정하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3] 멀고먼길 2012.09.15 1636
68796 혹시 아이폰에서 이런 증상 있으신분 계시려나요? [12] 두근두근 2012.09.15 2315
68795 꼴칰 신임 감독은 조범현 감독! [8] 달빛처럼 2012.09.15 1678
»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정말 정나미 떨어졌던 부분 [44] 낭랑 2012.09.15 4641
68793 홀리 쭈꾸미 배트맨!! 싸이 아이튠스 차트 1위... [7] Q 2012.09.15 2895
68792 남 연애얘기 듣는 것의 곤욕스러움. [8] nomppi 2012.09.15 2952
68791 인생사 새옹지마네요. [7] 자본주의의돼지 2012.09.15 3355
68790 [공공장소 바낭] 오늘 미술관 갔다가 [52] loving_rabbit 2012.09.15 3424
68789 질문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colorism이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30] 케이 2012.09.15 4271
68788 도서관(?)에서 불쾌했던일 [25] catgotmy 2012.09.15 4230
68787 성매매금지를 시켜서 성폭행이 늘어났다는데... [96] 스카드 2012.09.15 5920
68786 <늑대아이> 감독 인터뷰 + 아이들 관객 [3] 가벼운계란 2012.09.15 1877
68785 프랑스 잡지가 윌리엄 왕자 부인 케이트 노출 사진을 [1] 가끔영화 2012.09.15 3424
68784 이스라엘의 경우 남자만 군대5년 VS 남자3년,여자2년 중에 후자를 선택했는데 [18] 스카드 2012.09.15 359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