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멀리 모임 다녀오다가 버스 끊겨서 택시 타고 제가 사는 지역까지 왔거든요. 

버스 다니는 길목에 내려서 막차 기다렸다 탔는데,  

거기가 칠호선 공사를 몇 년간 해온 곳이라 주변이 좀 음산해요. 

저 혼자 내렸는데, 뒤늦게 어떤 남자분이 따라 내리더라구요.

별 생각없이 껑충껑충 토끼뜀하면서 공사장 옆을 지나고 있었는데 뒤에서 자꾸 절 부르더라구요.

기분이 좀 이상해서 못 들은 척 더욱 활기차게 큰 보폭 토끼뜀으로 횡단보도를 향해 가는데 쫓아와서 절 붙들더라구요.

삼십대 초중반? 술 먹은 것 같진 않았 되게 음.. 멀쩡하게 잘 생긴 분이었........ 쓰다가 갑자기 슬퍼지네요;

아무튼, 의외로 안무섭게 생긴 남자분이 말을 거니까 으음?하게 되긴 하더라구요 흐흑.

버스 타고 가다가 제가 맘에 들어서 내렸다며, 음료수라도 한 잔 먹자며, 

자꾸 쫓아오는데 사실 그때까진 별 경계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빨리 가야된다고 거절하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절 막 끌어안더라구요.

순간 당황, 경직. 이거 뭐지?!?!?!?!?!?!?!?!? 하는데 그 짧은 찰나에 제 외투 속에 손을 넣고 막 등이랑 허리랑 허우적허우적

깜짝 놀라서 굳었는데, 최근 무서웠던 일련의 사건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주머니에 칼 같은거 들고있음 어쩌지, 행인 한 사람 없는데 소리 질러봤자 누가 들을까, 가방으로 휘어칠까 별별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데 막 제 귓가에 대고 속삭이면서

너무 좋아한다고, 처음 본 순간 반했고 자기도 모르게 따라내렸고 어쩌고. 사랑한다며 !!!!!!!!!

술냄새 하나도 안 났고 눈에서 진지빛이 마구마구. 목소리도 좀 떨리고.

이 사람 왕변태거나 여자를 영상으로밖에 못 봤거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계속 절 끌어안은 상태였고 손은 점점 소심하게 위로 올라오고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밀쳐내고, 이러지말라고 부탁;하고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는데 문 연 가게 하나 없더라구요.

그 분은 계속 사랑고백;;같은 걸 하면서 몸을 막 부비부비;

힘으로는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는데다 당황하니까 몸에 힘이 쭉 빠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저도 그쪽한테 호감이 있고 하니까 어디가서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나 좀 하자고 그랬어요.

제 어깨에 파묻었던; 고개를 번쩍 들더니, 진심이냐고, 자기가 좋냐고 묻더라구요 엉엉.

가능한 침착하게 그렇다고 했는데. 목소리가 막 떨려나왔어요; 그 사람이 잠시 절 보더니, 오케이 그럼 어디 들어가서 한잔 하자더라구요.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 겨우겨우 걸었어요. 계속 그 사람은 제 손 잡고 허리 부둥켜안고 있고;;

좀만 걸어가면 번화가가 있고 그쪽엔 사람들도 많을테니 도움을 청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가는 동안 이놈이 다시 똘끼부려서 이상한 데로 끌고가면 어쩌나 계속 후덜덜.

계속 왜 자기가 나한테 반했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하더라구요.

가능한 침착하게 고개 끄덕이며 네네 대답하며 걸었어요. 

누가 보면 진짜 연인 모드로 보였을 거예요; 전 조금 휘청거렸을 뿐이고;

백만년동안 걸은 기분으로 어떻게 번화가 입구까지 왔는데, 그제야 사람들이 좀 지나다니더라구요.

기회를 엿보다가 냅따 가방으로 옆구리 후려치...ㄴ다고 생각했는데 겁나서 힘껏 밀어낸 정도

막 뛰어갔어요. 힐 신지 않았던 게 어디... 도와주세요 말도 안나와서 입 꾹 다물고 전력질주했는데

뒤에서 막 쫓아오더라구요;;;;;; 공포영화에서 보던 그런 모습;;;;

저도 모르게 비명이 막 나와서 으아아아아아악 하면서 뛰어가고, 사람들 쳐다보고,

계속 쫓아오길래 눈에 보이는 가게에 막 들어가서 도와달라고 변태가 쫓아온다고 엉엉 울었어요;

앉아있던 남자분들이 황급히 절 뒤로 돌리고 나갔는데, 그 사람 이미 사라진 후더라구요.

어디서 지켜보면서 또 쫓아올 것 같아서 벌벌 떨면서 한참 앉아있다가 친구 불러서 같이 택시타고 집에 왔어요.

어제는 지쳐서 종일 몽롱하게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눈뜨자마자 문득 그 남자 눈빛이 떠올라서 이불 속에서 또 벌벌 떨었어요.

다행히 심각한 해코지는 없었지만, 몸을 막 더듬던 그 느낌이랑, 도망치면서 뒤돌아봤을 때 쫓아오던 그 얼굴이랑;;

자꾸 생각나서 무서워요.

그런 일 있었어도, 그 사람 금새 군중 사이에 섞여서 평범한 일인이 되었겠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길을 걷고 집엘 갔겠죠; 오늘도 평범한 얼굴로 버스를 타고 사람들을 만나고.

한편으로는 되게 무섭고 화나는데, 또 한편으론 뭔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불쌍하긴 개뿔, 엄연히 범죄를 저지른 놈이 태연히 지내고 있을 거란 생각에 다시 화도 막 나고.

오늘 비도 오고 일찍 귀가해야겠어요. 어제는 괜히 엄마한테 전화해서 해졌는데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하냐고 닥달;

우아 근데 자꾸 생각나네요 그 눈빛. 저 스크래치 좀 생겼나봐요 훌쩍.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36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90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855
110934 [듀게일상] 축하 짤방.jpg [4] EEH86 2011.09.02 3868
110933 [2ch] 살면서 느끼는 이상한 느낌의 순간들 [14] Johndoe 2011.05.06 3868
110932 네티즌 다시 추노하기 시작 [12] 가끔영화 2010.11.12 3868
110931 듀나 인) 경제 관련하여 관심이 생겼습니다.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8] 이미존재하는익명 2010.07.01 3868
110930 하루키 세계와 저의 어긋남. (스포일러 有) [17] catgotmy 2010.06.21 3868
110929 '죽고싶다'는 감정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인지요 [39] 안수상한사람 2015.09.04 3867
110928 여성스런 말투에 대한 조언 [15] 달콤바닐라 2015.01.17 3867
110927 이효리, 2pm 신곡 MV, 나뮤 티져. [11] 자본주의의돼지 2013.05.06 3867
110926 표창원 씨 JTBC 시사돌직구 진행 하차 [11] amenic 2013.04.07 3867
110925 [듀나인] 맛없는 커피 활용법? [16] 오늘도안녕 2012.09.09 3867
110924 프로필 사진을 보고 성별을 착각하는 예술계 사람들은 [6] 가끔영화 2012.07.12 3867
110923 최동훈의 "도둑들" 시사회 반응 중에 서극의 "순류역류"와 비교하는 글이 눈에 띄네요 [12] espiritu 2012.07.10 3867
110922 신동엽과 이효리, 그리고 유희열. [3] 자본주의의돼지 2012.05.28 3867
110921 똥물을 뒤집어 쓴듯한 기분 - 통진당폭력사태 [6] soboo 2012.05.13 3867
110920 [바낭의 끝] 논개 작전 들켰;; [25] 부끄러워서 익명 2012.12.19 3867
110919 엄청난 책이 나왔군요. - 윌 듀란트의 문명이야기 [3] 무비스타 2011.07.16 3867
» 공사장 지나다가 왕왕왕왕변태 만났었어요 훌쩍 [16] 토마스 쇼 2012.09.17 3867
110917 로또 되면 뭐하실꺼예요? [29] 선케 2011.03.30 3867
110916 [바낭] 신은 공평하다? - 조국 교수 편 [5] 사이비갈매기 2011.01.05 3867
110915 열린책들 뽐뿌 [20] 보라색안경 2013.02.14 386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