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6년 전. mbc와의 인연이 아주 조금 있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단과대 신입생 환영회를 하고 뒷풀이를 2차까지 하고 이동하던 중 후배 한 명이 만취해서 뻗었습니다.

어디든 데려다 재우고 보자고 낑낑 끌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기자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취재를 하려 하길래 뻗어 있던 녀석이 신경쓰여 거절을 했죠.

그랬더니 촬영은 하지 않겠다, 그냥 질문만 좀 하자길래 다른 녀석들이 질문을 받았습니다.


Q: 지금 무슨 행사 있나요?

A: 네 뭐 단대 환영회요.

Q: 그런 행사 하면 몇 명이나 와요?

A: 거의 백명 가까이 왔죠.

Q: 그럼 술은 얼마나 마셨어요?

A: 소주 X박스에 맥주 X박스 정도...

Q: 지금 저 분은 얼마나 마시고 취한 거에요?

A: 술 잘 못 마셔서 소주 두 병 정도?


이런 대화였는데.

그 주에 바로 방송을 탔습니다. -_-; 아마 PD수첩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대학생 음주 문화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일단 숨겨뒀던 카메라로 뻗어 있던 후배 녀석을 집요하게 찍어서 얼굴을 그대로 다 내보내는데서 한 번 경악.

그리고 단대 환영회니 백명 정도 왔니 하는 내용은 다 빠지고 인터뷰 앞을 요상하게 편집하고 나레이션을 넣어서 대여섯명이 모여서 술을 마신 것처럼 만든 후


Q: 그럼 술은 얼마나 마셨어요?

A: 소주 X박스에 맥주 X박스 정도...


...가 방송을 타더군요. 

졸지에 그 후배들은 한 명당 소주 1박스씩 마신 괴물들이 되어 버렸고 뻗어 있던 녀석은 부모님이 티비를 보는 바람에 기숙사를 나와 집으로 들어가야했다는 슬픈 전설이... -_-

이후로 MBC, PD수첩이라고 하면 아주 진저리를 쳤었죠.


2.

그러던 MBC가, 특히 PD수첩이 갑자기 괜찮은 언론으로 생각되게 된 사건은 뭐 다들 기억하시는 황우석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PD수첩은 정말 무슨 영화에나 나오는 탄압 받는 정의의 언론인들 같은 이미지였죠.

맨 처음에 적었던 사건에서 8년이나 흐른 후였으니 그 때 그 사람들이 계속 만들고 있었는지 어땠는진 모르겠지만...

사실 뭐 황우석 사건 즈음에도 저런 식의 무리수 취재는 당연히 있지 않았겠나 싶어요. 대표적으로 '쓰레기 만두' 사건 같은 것도 있었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프로가 그 프로일 텐데 사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작질하는 언론 권력으로 보이기도 하고.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하고. 그런 거겠죠.


암튼 그래서 황우석 사건 당시 대학 친구들끼리 낄낄대며 옛날 음주 사건 얘길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략 '개XX들인 줄 알았는데 괜찮은 구석도 있네 ㅋㅋㅋㅋ' 뭐 이런 가벼운 농담들이었어요.


3.

그러고 한동안 이미지 좋았던 MBC가 이번 정권 들어, 특히 재철 아저씨 부임 이후로 또 가장 꼴보기 싫은 언론이 되었죠. -_-;

아직 결판난 건 없다지만 어제의 안철수 논문 표절 어택과 (안철수측의 해명은 개무시하고) 오늘 이어진 '틀린 공식까지 똑같아!' 콤보를 보니 참 착잡하면서 괜히 위의 일들이 생각이 나서 쓰잘데기 없이 깨작깨작 적어 봤습니다.

(오늘 뉴스는 이랬습니다.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149496_5780.html )


언론이란 게 참 재밌어요.

요즘 그나마 공중파 방송 중에 정부 비판 성향 기사를 가장 많이 방송 내보내는 게 SBS인데, SBS가 이런 이미지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요즘 MBC를 까는 사람들이 즐겨쓰는 엠XX이란 표현도 제가 기억하기론 MBC가 좌빨 방송 소리 듣던 시절에 그 쪽(?) 사람들이 만든 표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걸 이제 이 쪽(?) 사람들이 쓰면서 MBC를 까고 있으니 참으로 언론만사 새옹지마. -_-;


4.

암튼 요즘 엠비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대략 이러한 기분이 됩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또 카덕질해서 죄송합니다!! (_ _);


+ 덤으로.

언론에 희롱당한 가련한 사연 하나가 더 있습니다.

막걸리로 유명한, 하지만 신입생 환영회나 다른 학교 학생들과 단체로 놀 때가 아니면 사실 소주와 맥주를 주로 마신다는 모 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동아리 사람들과 술집에서 맥주를 부어라 마셔라하며 즐겁게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제가 기잔데 막걸리 마시는 장면이 필요해서...' 라고 말하며 술 값은 내 준다길래 신나서 콜을 외쳤답니다. 그래서 테이블 전체에 공짜 막걸리를 받아 사발에 부어들고 해맑게 웃으며 '마셔라!'를 외쳤는데.

며칠 후 신문에 그 모습 그대로 얼굴 모자이크도 없이 기사가 실렸고 기사 제목은 무려 '죽음을 부르는 대학생 술 문화' 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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