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잡설부터. 전 무비꼴라주 큐레이터 시스템을 썩 좋아하지 않아요. 특정 시간에만 해설이 있어서 관객이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좋겠는데, 매 회마다 큐레이터의 해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닌가?? 제가 무비꼴라주 갈 때마다 하던데... 저는 영화든 책이든 작품을 보고나서 바로 그 해설을 접하는 게 싫어요. 작품을 접하고 바로 그에 대한 누군가의 해설을 읽거나 들어 버리면, 제 나름의 작품 해석이 불가능해지고 남의 해석 틀 안에 갇혀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무비꼴라주에서도 큐레이터 해설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무비꼴라주에선 정말 일부를 빼 놓고는, 영화 끝나자마자 나가거나 혹은 아예 죽치고 앉아서 해설까지 듣기 때문에, 저처럼 크레딧 올라가는 건 다 보되 해설 안 듣는 사람들은 무지무지무지 민망해요... 오늘도 크레딧 다 올라간 다음에 큐레이터 분 나오기 전에 나가는 사람 저랑 제 친구 뿐이더라고요.



영화는 좋았습니다. 마고 캐릭터가 이해 안 간다는 글을 듀게에서 읽은 바 있는데, 저는 남자에다 결혼해 본 적도 없지만 그 심정이 이해는 됩니다. 다만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저렇게 있는 대로 흔들려 대며 배우자와 내연남 둘 모두에게 심적 피해를 입히다 훌쩍 내연남에게로 떠나버리는 건 욕 먹어도 할 말 없는 행동이긴 하죠. 그러다가 또 새 남자랑 권태에 빠지니, 다시 돌아올 수 있냐고 떠 보는데... 제가 실제로 그 남편이었으면 욕했을지도 몰라요. 감정이 흔들린다고 해서 그 감정 움직이는 대로만 살면 안 되는 거잖아요.


영화는 마고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짚어내더라고요. 배우 출신 감독이라 그런지 배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법도 잘 아는 것 같아요. 사실 정 주기 힘든 캐릭터인데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던 것도,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와 사라 폴리의 연출이 탁월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마고가 사실을 고백했을 때 루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이 꽤 인상 깊었어요. 마고의 카메라 밖에서 목소리로만 가끔 존재를 알리는 한 편, 카메라는 계속 루에게 고정된 채로, 루의 리액션을 파편화해서 늘어놓듯 보여줍니다. 저는 그게 권태기에 빠진 마고가 남편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그 때 그 때마다의 루로만 남편을 인식하고 실망하는 마고로서는 마지막 남편의 모습마저도 하나의 연속된 감정 흐름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러 감정이 파편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그 무언가'인 거예요. 


그 뒤 새 남자와의 행복한 때를 빠르게 요약적으로 처리한 부분도 좋았어요. 처음엔 쾌락으로 가득한 섹스를 연달아 보여주다 점점 일상의 모습들로 이어지는 게... 


첫 장면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면과 이어놓은 것도 주제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남편인 줄 알았던 실루엣이 알고보니 새로운 남자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새로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익한 발버둥인지 확 와닿더라고요. 그 뒤 스크램블러에서의 에필로그는 마고가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서의 '빈 공간 있는' 삶을 긍정하는 일종의 성장으로 보였어요.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쫌 편하게 간 게 아닌가 싶긴 했는데, 영화가 마고를 그냥 철없는 미숙아로 놔 두지 않은 건 고마웠습니다.



덧붙여서, 영화 초반에 보이는 루와 마고의 결혼 생활은 ('펀치 드렁크 러브'를 바로 연상시키는 그 게임까지 포함해서) 정말 예뻐 보이더라고요. 저도 저런 결혼 생활 하고 싶어요. 제 미래의 동반자가 마고처럼 그러는 건 싫지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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