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나치의 망령을 피해 1940년 미국으로 이주하고, 곧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합니다.

이 책은 당시의 강의록 및 기타 여러 자료를 엮은 책으로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가 6인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와 그의 작품 분석에 대부분을 지면을 할애합니다.

 

고골과 투르게네프 부분도 찬양 일색의 여느 평론들과는 달리 독특하다 싶었는데, 도스토옙스키 부분으로 접어드니

나보코프가 그의 문학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그의 작품을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후손한테 해코지 당한 적이라도 있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총론 부분에서만, 그것도 일부만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 아래 내용인데

다음에 기회 있으면 각 작품별 비난(비평이 아니고 비난!) 부분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작품별 각론은 주로 본문 인용 30%, 애매보호한 뉘앙스의 칭찬 비스무리한 것이 10%, 나머지 60%는 혼신의 힘을 다한 비난으로 이루어 진다고 보면 됩니다.  총론보다 더 재미있어요.)

 

도스토옙스키 다음에 소개되는 톨스토이 부분에서는 또 '험버트가 롤리타의 미모를 찬양하듯' 침이 마르지 않게 (거의 종교적으로) 칭찬을 하여, 도스토옙스키를 두 번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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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나는 다소 난처하고 곤란한 입장이다.

모든 강의에서 나는 천부적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문학에 접근한다. 이렇게 보면 도스토옙스키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다.

훌륭한 유머가 번득이긴 하나 문학적 진부함이라는 황무지를 지닌 평범한 작가에 불과하다.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에서 라스콜니코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당포를 하는 늙은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죽인다.

경찰의 모습을 한 정의가 거침없이 그의 목을 조여 와 그는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 범죄 사실을 고백하고, 숭고한 창녀와의 사랑을 통해 정신적 갱생을 얻는다.

이런 내용은 책이 쓰인 1866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엄청나게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요즘에는 교양 있는 독자들이 숭고한 창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 입장이 곤란한 이유는 이런저런 강의에서 만나는 독자들이 모두 교양 있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중 3분의 1은 말하자면 문학과 사이비 문학도 구분할 줄 모르고, 미국 역사 소설이나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같은 졸작, 여타 하찮은 소설들보다 도스토옙스키를 더 비중 있고 예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실로 탁월한 수많은 예술가들에 대해 긴 시간에 걸쳐 강의할 것이다. 바로 그런 높은 기준에서 봤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를 가르칠 만큼 학술적인 교수가 못 된다. 나는 도스토옙스티의 정체를 폭로하길 간절히 원한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일반 독자들은 이 가치 체계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p.194~195)

 

 

 

 

 

도스토옙스키는 유럽 추리 소설이나 감상주의적 소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감상적 영향이란 그가 좋아했던 갈등 구조, 즉 선량한 사람들을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한 다음에 그 상황으로부터 일말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를 말한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이후 그의 핵심적 사상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것은 죄를 통한 구원, 투쟁과 저항에 대한 고통과 굴복의 우위, 형이상학이 아닌 도덕적 명제로서의 자유 의지 옹호, 그리고 적그리스도적 유럽 대 인류애 가득한 그리스도적 러시아라는 극단적 이기주의다.

이런 그의 사상(많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이 소설 전반에 팽배했지만 서구적 영향은 아직 남아 있었고 서구를 그토록 증오했던 도스토옙스키야말로 가장 유럽적인 러시아 작가였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p.202)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에 보이는 취향 부재, 프리-프로이트적 콤플렉스를 보유한 인간의 고통에 대한 단조로운 해석, 짓밟힌 인간 존엄의 비극에 대한 탐닉, 이 모든 것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죄를 지음으로써 예수에게 다가가는' 혹은 이반 부닌의 직설적 표현대로 '온 천지에 예수를 흘리고 다니는' 등장인물들의 이런 트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듯 안타깝게도 나는 예언자로서의 도스토옙스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p.203)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가 될 운명을 부여받았으나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소설을 쓰게 된 사람처럼 보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늘 내게 가지가 제멋대로 뻗어 있는 연극, 소도구와 무대 소품이 딱 필요한 만큼만 갖춰져 있는, 물기 젖은 둥근 컵 자국이 남아 있는 동그란 식탁과 햇빛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노랗게 칠해진 창문, 그리고 스태프가 서둘러 가져와서 털썩 내려놓은 듯 보이는 관목이 있는 연극을 연상시킨다. (p.204)

 

 

 

 

 

기본적으로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인물을 이미 완결된 특징과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등장하고 나면 끝까지 변하지 않게 만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복잡한 체스 판 위의 체스 말과 같이 취급하는  추리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얽힌 플롯을 만들어 낸 작가로서 도스토옙스키는 독자의 관심을 잡아 두는 대에 성공한다. 절정으로 치닫게 하고 훌륭한 기술로 긴장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한번 읽어서 그 놀랍고 복잡한 구성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라면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긴장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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