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시 시월드 이야기는 폭발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의 영원한 떡밥 중 그 으뜸이 군대와 출산 문제, 버금가는 떡밥이 시월드와 결혼비용 문제인 것 같습니다.

 

두 떡밥이 기반하는 사회문제의 성격이 다르고, 당연히 그 해결책도 달라야 하지만 인터넷상 논의는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군대생활(시집살이) 해봤냐?  ........   그렇다면 너는 출산(신혼집 마련) 해봤냐?  ..........  옥신각신...  내가 더 억울해.

 

 

사실 논의를 이렇게 단순화하는 것은 해당 문제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저렇게 흘러가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구조적 모순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개인적 잡상 몇가지 얘기하려구요.

 

 

 

2.

 

생각해보면 저희 부부에게도 시월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댁에서 바라는 며느리의 고전적 상이 있죠. 순종적이고, 부지런하며, 예의바르고, 어른들에게 잘하고... 등등

 

처가에서 바라는 사위의 상도 있습니다. 믿음직스럽고, 아내에게 잘하고, 한눈 팔지 않으며, 맛있게 밥을 먹는... 등등

 

두 가지 이상향을 비교해보면, 시댁이 바라는 며느리 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과 특별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반면 사위 상은 회사에서 짤리지 않은 상태로 가끔씩 처가집에 가서 밥만 잘 먹어주면 됩니다. '사위되기 미션'의 난이도가 훨씬 쉽죠.

 

그런데 저도 제 아내에게 시댁에서는 저런 며느리 상이 되길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굉장한 억압이 될 것 같아요.

 

그럼 이걸 뭘로 보상하느냐? 시댁에는 1년에 4번만 가지만 친정에는 1년에 10번 이상 가는 걸로 보상하는 것 같아요. 이런 걸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춰가는 중.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상적인 며느리 상에 대하여 수십년의 세월동안 고정되어 있던 부모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아 불가능해.. 연기라도 하자."

 

구조적 모순의 해결과 가장 거리가 먼 변명이죠.

 

 

 

3.

 

결혼문제와 관련하여 나오는 얘기 중에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성에게 결혼은 여러가지로 손해일 수 있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이 결혼은 사회생활을 통한 여성의 자아실현을 제한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개인적인 의문은 '직장을 자아실현의 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입니다.

 

사실 이런 의문 역시 구조적 모순을 희석시키는 좋지 않은 질문이기는 한데, 저는 그게 정말 궁금해요.

 

저희 부부는 맞벌이 입니다. 둘 다 매일 같이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항상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둘 모두의 꿈이 전업주부이죠.

 

하지만 서울에서 부모님 도움없이 외벌이로 살아가는건 정말 어려워요. 외벌이로 전환하면 내집마련의 꿈은 영원히 안녕.

 

그래서 우리 부부는 매일 다짐합니다. 우리 힘들지만 버텨보자.

 

그렇습니다. 저와 제 아내에게 직장생활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버티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버티는 거죠.

 

그리고 제 주변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어보겠다거나, 이 일로 승부를 보겠다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죠.

 

일이 잘 풀릴때 짜릿한 기분은 있지만, 그건 2,000피쓰짜리 레고를 완성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한 기분보다 못합니다.

 

정말 직장을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을까요?

 

 

 

4.

 

백플 넘게 달린 '시집살이 회피하기' 글을 보고 문득 사회학에서 이 주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비용에 대한 신랑/신부의 부담비율과 시잡살이/처가살이에 대한 상관관계는 재미있는 사회학 연구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사실관계는 확실하죠.

 

일반적으로 남자가 더 많은 결혼비용을 부담한다.

 

일반적으로 처월드에 비해 시월드가 훨씬 힘들다.

 

두 가지를 요소를 연결시켜서, 결혼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라는 변수와 시집살이/처가살이의 부담이라는 변수간 상관관계를 측정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번째 변수는 정성적인 요소가 강해서 측정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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