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암담한 나날

2012.11.28 09:53

LH 조회 수:1636

 

저 자신의 철칙 중 하나는 너무 많은 기대도 하지 말고 너무 많은 실망도 하지 말자는 겁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역사를 공부하며 늘 배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던 사람이 현실 앞에서 처절하게 찢어발겨지고
이상을 노래하던 사람이 속물이 되며
강하고 고결했던 모임이 권력을 두고 다투는 진흙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가치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요.
꿈을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는 고결한 사람도 있고,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남을 위해 양보하는 아름다움도 있다. 그래서 역사는 아주 조금이나마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금이 막장이네 뒷장이네 해도 신분 높은 사람이 노예 몇 명 죽여도 아무 죄가 되지 않았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 세상은 훨씬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대선이 시작되었네요. 벌써부터 천태만상이 펼쳐지고,
관련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아찔해집니다.

 

기대를 모았고, 나 스스로도 적지 않게 기대를 했던 후보 하나가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 그만두었습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정치는 현실이거든요. 아름답고 멋진 일 뿐만 아니라 꼴사납고 추접한 일도 해야 하지요. 오빠오빠 하는 열광적인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지능지수가 달팽이와 친구 먹어도 되는 꼴통과 꼴페와 좌빨과 우빨들을 모두 국민으로 끌어안고 이 되먹지도 않게 팅팅대며 자기 뱃심만 불려대는 기업가들과 뻗대기만 하는 노조들도 함께 이끌고 심지어 메롱메롱 혀만 내밀고 곶감은 빼가며 도움은 안 주는 외국들마저 상대해야 하는, 그래야 하는 게 나라의 일이고 대통령의 일입니다.
보통 사람이 보통 각오로 달려들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어쨌거나 대선은 시작되었고, 앞으로 5년간 이 나라의 곳간을 지켜야 할 사람을 골라야 하는데... 헌데 왜 이리 마땅한 대통령감이 없습니까.
각 후보들의 정책을 돌아보니 나오는 것은 한숨이요 잡히는 것은 뒷목입니다.
빽빽 울고 있는 아이에게 사탕과 초콜렛과 뻥튀기와 솜사탕을 가지고 이 중에 뭐줄까? 하는 달콤한 내용들이되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균형잡힌 식사와 야채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보이거든요.
이럼 안 되지 않나 하고 목소리를 높이자니, 인기없는 정책을 추진했다간 어떤 짝 날지 뻔히 보입니다.

 

그놈이 다 그놈이라고, 바뀔 건 없다고 시니컬한 말을 퉁퉁 내뱉자니
이게 무슨 스타워즈도 아니고 다가올 암담한 미래가 빤히 보입니다.

아아, 그래도 위안이 가는 말을 하자면 그럼에도 나라는 망하지 않을 거여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절망한 끝에 한강에 몸을 풍덩풍덩 던질 수도 있겠지만.
북쪽 나라와 전쟁이 벌어지고 총알이 난무하며 젊은이들이 팩팩 죽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새로운 사람은 태어나고 이 나라는, 사회는 어떻게든 이어질 겁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그래서 괜찮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아니지요.
렛츠 고 나락이라는 환란의 시기로 굴러가는 나라꼴이 보이는 듯 해서...

지인 한 사람은 나라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뽑겠지, 라는 아주 시니컬한 말을 내뱉았습니다.
그 말대로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 작은 희망을 표에 걸어야 겠지요. 그 수밖에는 없잖아요.

 

...이거 쓰고 올리려다가 선거법 위반한 부분이 있나 열심히 뒤져봤습니다.
일단 아닌 거 같긴 한데 있어도 몰라.
어떻게 이놈의 나라법은 이런데에서는 세심하고 정작 중요한 데는 건성으로 넘어가는 거 같네요.

 

 

p.s : 모 연예인(인가)가 종북은 북으로 돌아가라, 라고 한 트위터 발언을 보고 (당사자는 특정 인물과 당을 지칭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만) 뭔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곱씹어보고 알았습니다. 나와 뜻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나라에서 쫓아내거나 없애버린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대화와 공존의 여지는 언제든지 열어둬야 해요. 전통적인 공법으로 만들어진 주전부리같은 분자라고 해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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