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마음.

2012.12.13 14:42

난데없이낙타를 조회 수:2601

고등학생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외갓집은 상가집이 되었죠. 상주들은 곡을 하다가도, 가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문상객들은 슬퍼하다가도 종종 농담을 하곤 했었어요. 꽃상여를 메고 떠나는 길에 통곡하던 상주들이, 또 몇시간이 지나서 무슨일이 있었냐는듯이 삶을 살아갔었어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례식에서, 장례의 슬픔은 죽음 앞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기때문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러고보면 어릴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어요. 할머니 손에서 컸던 저는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지만,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나온 육개장을 먹으면서, 참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열살남짓한 나이었는데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고요.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음식의 맛을 자연스레, 당연한듯이, 무심결에 평가하는 저를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육개장을 거의 먹지 못해요. 먹기가 참 어려워요. 어려울 때마다 길지 않은 삶에서 마치 죽음과 죽음 사이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지난주에는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작은 아버지의 빈소도 비슷했어요. 죽음 앞에서 삶은 또 별개로 이어지는구나 싶어서, 장례의 슬픔은 삶과 죽음이 별개로 공존하는 걸 목도하는 게 아닌가 싶었죠.

 

엊그제, 지금은 고인이 되버린 이재영동지의 문병에 갔었습니다. 가족들이 지키는 병실에서, 가족들이 주고 받는 일상의 대화를 보며, 외려 일상의 대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흔한 대화가 삶과 죽음이 별개로 공존하기에 진행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목도하는 사람들의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진보진영에 대한 걱정을 하던 이재영 동지 앞에서, 한 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제가, 그저 인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찾아간 문병이 내 욕심이겠다 싶더군요. 같이간 동지가 집회 라는 단어를 꺼내자, 명료하지 않은 의식에서도 고개를 번쩍 들며 즉각 반응하는 걸 보고 많이 무거워졌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이재영 동지가 끝내,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45세, 참 젊은 나이였습니다.

 

이재영 씨는, 진보신당 전 정책위의장으로 민중당에서, 국민승리 21, 민주노동당에서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비현실적이라고, 이상에 불과하다고 이념이라 비웃던 주장들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만들었고  그 정책들은 지금 대선후보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진보정치의길 위에있는 사람들 중에 이재영 동지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죠...그분이 만든 정책이 관철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 태도와 자세로 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아파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실무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여야하기에,온몸으로 애도하면서도 진행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지켜보기가 괴롭습니다. 마음이 자꾸 서늘해져요. 그 와중에 밥을 먹고 또 살기 위해, 아니면 죽음을 인정하기 위해, 움직여야하고, 또 정치까지합니다.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온전히 죽음이 되는 걸까요. 답답합니다...아니 무겁습니다. 마음이 무거운만큼, 단단해지면 좋겠습니다.

 

김정진씨가 쓴 추도사입니다./www.redian.org/archive/47711

이재영 국장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대의 이상은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지속될 것입니다.

 

 

 

기록될 그대의 이상을 기억하며, 함께 추모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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