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전이 된 원작을 각색한 영화 레미제라블, 그것도 뮤지컬로 각색한 영화 감상평에 스포일러 주의를 써놓는 건 우스울 것 같고요. 그래도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영화 상영 한 달 전부터 완역본 완독하기 시작했고, 25주년 콘서트 OST까지 사서 들었습니다. 이 모든게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영상 하나 때문이었죠. 바로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 중 팡틴 역의 Ruthie Henshall이 부른 dreamed a dream 말입니다. 오래전에 천공의 성 라퓨타 오프닝만 보고 본편에 대한 기대를 오랫동안 키워온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와 비슷했습니다. 사실 레미제라블은 영화에 대한 기대를 키워왔다기보다 원작에 대한 기대를 키워온 것이긴 하지만요. 저 공연 클립을 보고 난 후 6권짜리 책을 사놓기만 하고 안읽고 있다가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읽기 시작했죠. 어렸을 때 한 권짜리 장발장은 본 적이 있지만 요약본이 아닌 완역본에 대한 사람들의 찬사들을 보니 기대가 안될 수가 없더라고요.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긴 커녕 영화 초반에 원작에 비해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에게 은혜를 입고 뉘우치기까지 이야기가 너무 빨리 진행돼서 이렇게 대충대충 넘어가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볼 때 그럴 수 밖에 없긴 하지만요. 그렇긴 해도 미리엘 주교와 질노르망 노인의 이야기가 상당 부분 잘려 나간 건 아쉽더라고요. 원작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이거든요. 은촛대 일화를 제외하더라도 미리엘 주교가 회개한 후의 장발장에 버금가는 성자였다는 묘사나, 질노르망 노인이 손자 마리우스에 대해 일희일비 하는 묘사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에 비해 떼나르디에의 출연 분량은 꽤 되지만 단순히 탐욕꾼 정도로만 묘사됐더군요. 사실 레미제라블 최고의 악당인데 어정쩡하게 다뤄진 느낌입니다. 등장하는 내내 코믹함만 강조됐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떼나르디에가 마리우스에게 장발장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마리우스가 진실을 깨닫는 장면에서 독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부분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구요. 이건 마리우스가 장발장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과, 마리우스가 자신의 비밀을 밝힌 장발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나오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긴 하겠지만요.

앤 헤서웨이는 초반에 죽는 역할 치고는 출연 분량이 꽤 되어서 좋았고(원작에서 꽤나 비참한 상황에서 죽는 것과 달리 평화롭게 숨을 거두더군요), 마지막에 한 번 더 나와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살을 많이 빼서 더 안쓰러워 보이더군요.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화면에 나올 때마다 너무 예뻐서 탄성이 나올 정도였고 미성의 노래 소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관람하지 않고 넘어간 맘마미아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쉽다는 얘기를 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관람이었고 마지막에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합창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박수를 칠 뻔했습니다. 진짜 뮤지컬 공연장이었다면 마음껏 박수를 쳤을 텐데요. 뻘쭘한 상황은 연출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습니다. 원작을 보고 난 직후의 영화 관람은 아무래도 느낌이 남다를 수 밖에 없군요. 물론 영상화가 잘 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선거 끝난 후에 Vive la France 대신에 Vive la Corée를 속으로 외치며 한 번 더 관람하고 싶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33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87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023
126526 생산성, 걸스로봇, 모스리님 댓글을 읽고 느낀 감상 [20] 겨자 2018.10.24 471195
126525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 - 장정일 [8] DJUNA 2015.03.12 269826
126524 코난 오브라이언이 좋을 때 읽으면 더 좋아지는 포스팅. [21] lonegunman 2014.07.20 189539
126523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의 글 ㅡ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5] smiles 2011.08.22 158081
126522 남자 브라질리언 왁싱 제모 후기 [19] 감자쥬스 2012.07.31 147516
126521 [듀나인] 남성 마사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9] 익명7 2011.02.03 106282
126520 이것은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1] 책들의풍경 2015.03.12 89320
126519 2018 Producers Guild Awards Winners [1] 조성용 2018.01.21 76438
126518 골든타임 작가의 이성민 디스. [38] 자본주의의돼지 2012.11.13 72999
126517 [공지] 개편관련 설문조사(1) 에 참여 바랍니다. (종료) [20] 룽게 2014.08.03 71753
126516 [듀9] 이 여성분의 가방은 뭐죠? ;; [9] 그러므로 2011.03.21 70559
126515 [공지] 게시판 문제 신고 게시물 [58] DJUNA 2013.06.05 69136
126514 [공지] 벌점 누적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45] DJUNA 2014.08.01 62777
126513 고현정씨 시집살이 사진... [13] 재생불가 2010.10.20 62460
126512 [19금] 정사신 예쁜 영화 추천부탁드려요.. [34] 닉네임고민중 2011.06.21 53701
126511 스펠링으로 치는 장난, 말장난 등을 영어로 뭐라고 하면 되나요? [6] nishi 2010.06.25 50930
126510 염정아가 노출을 안 하는 이유 [15] 감자쥬스 2011.05.29 49985
126509 요즘 들은 노래(에스파, 스펙터, 개인적 추천) [1] 예상수 2021.10.06 49887
126508 [공지] 자코 반 도마엘 연출 [키스 앤 크라이] 듀나 게시판 회원 20% 할인 (3/6-9, LG아트센터) 동영상 추가. [1] DJUNA 2014.02.12 4952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