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리얼리티가 있어 보이는 설정때문이었어요. 방송가 사람들답게 일에 찌들어 있고,

일 때문에 사람들끼리 갈등도 생기고, 가족간에도, 연인간에도 상처를 주고 받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죠. 지오야 중반까

지만해도 꽤나 모범적인 캐릭터로 나오지만 준영이가 일이나 인간 관계에서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미숙한 모습도 공감할 수 있었구요.

 

근데 보면 볼수록 뭔가 좀 맥이 빠지더군요. 지오가 준영에게 지적할 때 쓴 말처럼, 그사세의 세상은 너무 '쉬워'보였거든요. 물론 다들 가족,

일 등 개인적으로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그사세는 일 못하고 끊임없이 사고만 치는데다 성희롱까지 하는

미친 양언니가 멀쩡하게 사회생활하고, 녹내장 걸린 피디가 병을 숨겨 사고를 내어 스탭을 다치게 해도 계속 연출을 맡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각자 성격 있지만 다들 그럴만한 사연이 있고, 알고보면 인간미가 있다는 설정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면이 있었구요.

 

그리고 여러 캐릭터가 나오는 것은 좋았지만 각각의 캐릭터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몇몇 캐릭터는 입체적이라기보다는 분열적으로

보였고요. 대표적으로 윤영. 전 이 사람의 과거 행적과 지금의 모습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어요. 과거의 윤영은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그 사람의

가정을 깬데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민철을 이용하고 양다리를 걸치다 그와 도피를 결정한 당일에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발표하는 종잡을 수 없는

(제가 보기엔 그냥 미친 것 같은) 사람이죠. 양다리에 불륜까진 그냥 어찌어찌 넘어간다고쳐도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닌 바에야 그런 식으로 한 가정

을 깨고,  한 사람을 비참한 방식으로 배신하는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은데 드라마 내내 윤영이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이

없어요. 그리고 현재 윤영은 '배신이 체질'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랑보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고, 준영의 심술을 대범하게 받아주는 퍽이나 쿨해보이

는 캐릭터처럼 굴더군요. 과거를 들어보면 천하의 악녀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현재 행적을 보면 그런 악녀 기질은 거의 드러나질 않고 그냥 세상사에

치이고 야심 있고 배포도 크지만 겁도 많은 사람처럼 굴더군요. 그리고 손규호 피디도 마찬가지에요. 이 사람 어디가 냉혈한에 싸가지라는지 전혀 모르

겠어요. 동생 챙겨, 준영이 아프면 들어가서 쉬게 배려해줘, 양언니가 사고 쳐도 크게 제재도 안해, 일할 때 프로페셔널하고 실력있어, 이런 직장 동료

있으면 참 든든하겠다 싶더군요. 프리섹스주의자라고 나오는데, 도대체 어떤 프리섹스주의자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이별할 때 5일 동안 절에서

묵언수행만 하다 보내겠어요. 설정상으론 마귀할멈이니 프리섹스주의자라니 하는 식으로 드라마에서 스스로 얘기해도 캐릭터들은 실제로 그렇게

불릴만한 껄끄러운 부분은 제거된 인물들에 가까웠죠. 예외라면 준영에게 결별 선언 후의 지오나 미친 양언니 정도겠네요.

 

원래 노희경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제대로 본 적도 없지만 그사세는 그래도 어쨌건 끝까지 봤는데 그건 이 드라마의 메시지랄 수 있는

부분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지오의 녹내장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완치나 해결이 없이 그냥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 많고,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한계로 인해 상처를 주고 받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온기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메시지지만 그런 소소한 얘기가 좋았어요. (그래도 메타포가 아니라면 지오의 녹내장은 피디인 지오에게 너무 가혹한 설정인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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