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결론부터 말 하자면 전 별로였습니다.

 

길고 자세히 써 보려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거칠게 대충 막 던져 봅니다. -_-;;

 

 - 이병헌과 최민식의 대결을 보면서 계속 헛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건 뭐 수퍼 히어로와 금강불괴의 대결 같아서요.

아니 뭐 액션 자체는 긴장감도 있고 연출도 좋았는데. 이병헌의 폼잡는 액션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영 따로 노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리 영화 전개상 어쩔 수 없었다지만 최민식 아저씨의 무한 회복 빠와~ 를 보고 있자니 저 인간은 비닐 하우스에서 선두라도 키우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떤 부분은 현실적이고 어떤 부분은 말도 안 되는데 그게 무슨 논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 전개에 편할 대로 가는 것 같단 느낌이 들어서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는 얘깁니다.

 

 - [복수는 나의 것]과 [추격자]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애매한 영화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폭력을 통한 '복수'가 불러오는 황량, 삭막, 허망한 느낌에 중점을 둔다면 [복수는 나의 것] 쪽이 비교도 안 되게 강하고 인상적이었구요.

변태 연쇄 살인자에게 복수하는 처절한 드라마가 불러오는 정서적 감흥이나 쟝르적 재미 쪽으로 비교한다면 [추격자] 쪽이 몇 수는 더 위였다고 생각해요.

위의 두 영화보다 [악마를 보았다]가 나은 점이라면...

...화면의 땟깔? -_-;;

그나마도 그러한 땟깔이 영화의 내용과 어울렸는가, 혹은 영화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는가를 따져본다면 전 이도 저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나 김지운이야!' 라는 본인 확인 도장 정도.

 

 - '아무리 열받고 억울해도 사적인 복수에 집착하면 너도 x되고 에브리바디 모두 다 함께 x된다' 라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만. 그 결론 자체도, 그러한 결론이 나오는 과정도 아주 단순합니다. 물론 단순한 건 나쁜 것이 아니겠습니다만, 그렇게 단순하게 밀어 붙일 거였다면 그 상황, 인물들을 보면서 뭔가 절절히 와닿는 감정이 있어야 했을 것 같은데... 주인공의 '간지'가 너무 쩔어서였는지 시나리오의 부족함이었는지 그런 감정은 별로 느끼지 못 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와 신하균을 보면서 느껴지는 그런 감정 말입니다.

 

 - 이병헌의 캐스팅은 실패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운 감독이 이 배우를 맘에 들어하는 것도 알겠고, 이만큼 '센' 영화를 만드는 데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좋다는 것도 알겠고, 또 이병헌이 연기를 못 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병헌은 영화에서 많이 에러였어요. 

 이 배우는 '미남 스타'로서의 아우라가 너무 강합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면은 없지만 왠지 어떤 연기를 하고 있어도 '내 간지가 어떠함?' 이라고 묻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사실 김지운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에도 그런 느낌이 좀 있어서 서로 어울리는 감독과 배우라고 생각하고, [달콤한 인생] 이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는 영화 분위기나 본인이 맡은 캐릭터와도 잘 어울려서 괜찮았습니다만. 이 영화에선 아니었어요. 결말이야 어쨌든 간에 적어도 주인공의 '심정'에는 깊이 공감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 놈이 복수하면서도 끝까지 간지를 잡고 있으니 감정 이입이 되질 않고, 그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 응당 느껴야할 딜레마(저 노마가 하는 짓이 뻘짓인 건 맞는데 심정은 이해하니 뭐라고 못 하겠...)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느낌의 이미지 내지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뭐 덕택에 막판에 천호진에게 혼나는 장면에선 신나게 이입해서 깔 수 있었긴 합니다만;

 

 - 최민식의 연기는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에서 비슷한 연기를 보였던 터라 평가면에서 손해를 봤다는 느낌.

 

 - 학원 승합차의 천사 날개라든가 신우회 유니폼(?) 같은 건 무슨 생각으로 넣었는지 모르겠더군요. 올드보이, 금자씨에 대한 농담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걸로 뭔가 풍자나 상징이라도 하고 싶었다면 [공공의 적] 수준이었다고 감히 외치고 싶습니다.

 

  - 화제를 일으켰던 고어씬들에 대해서는... 글쎄요. 그냥 눈에 들어오는 고어씬의 강도로 말하자면 확실히 한국의 A급 제작진이 만들어낸 영화들 중에선 가장 세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충격이나 거부감으로 말 하자면 역시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감정 이입의 문제죠. 그리고 외국 영화들까지 비교에 포함한다면 그냥 좀 쎈 정도라고 밖에 할 수 없구요.

 

 - 시나리오...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좋다고는 하지 못 하겠습니다. 첫 부분에서 했던 말과 겹치는 얘기지만, 어정쩡해요. 건조하고 황량한 비극이라기엔 액션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고. 그렇다고해서 그냥 쟝르물이라고 보기엔 또 '뭔가 있는 척' 하는 부분들이 위화감을 자아내구요. 중간중간 투입된 농담들은 그 자체로선 훌륭했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깬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예 작정하고 사악한 블랙 코미디로 만들었담 모르겠는데 그건 또 아니었으니.

 

 이야기 중간중간에서 느껴지는 구멍들도 거슬렸습니다. 경찰 조직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던 최민식을 이병헌이 바로 찾아내버리는 것부터 좀 이상했지만 그거야 국정원 빽으로 어떻게 했다 치더라도. 도대체 최민식은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이병헌 약혼자의 가족 주소를 알아낸 건지. 또 30년간 강력계에서 근무했다고 자랑하시던 약혼자 아버지께선 최민식의 얼굴까지 알면서도 어쩜 그리 순진 무구하게 문 열어주고 희생당하신 건지. 그리고 가족을 노린다는 걸 알면서도 약혼자의 동생에겐 아무도 연락을 주지 않는 건(설마 핸드폰이 없다는 설정?-_-;;) 도대체 무슨 생각들인지도 모르겠고. 뭐 기타 등등등... 뭐 [추격자] 여형사의 미스테리한 행동에 비할 바는 아니겠습니다만. -_-;;

 

 - 최민식을 죽이기 전에 이병헌이 담배를 피운다는 설정은 좀 귀여웠습니다. 악마가 되면 담배를 피우나봐요.

 

 - 그냥 대충 정리하자면 뭐. 특별히 떨어지는 부분은 없지만 특별히 대단한 부분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강렬하게 부각될만한 포인트도 없는 그냥 고어와 막장 설정이 좀 튀는 연쇄 살인마 영화...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거나 만들어도 평균 이상은 만들어낸다'는 김지운 감독의 명성에 부합하는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뭘 만들어도 걸작이 되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김지운 감독의 또 다른 명성(?)에도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라고나 할까요.

 애초에 감독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의도를 갖고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나 이번엔 고어 한 번 해 볼래' 정도? 나오는 희생자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예쁘더라는 부분에서 이러한 심증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어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팬들이 좋아하던 김지운 감독의 개성적인 면들은 점점 약해져간다는 느낌이었구요.

 

 김지운이니까 이만큼 칭찬 받고 김지운이니까 이만큼 까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용면에서나 완성도면에서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렇게까지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이 아닌데 감독의 이름빨로 과하게 화제가 되고 있다는 느낌. 결국 저도 일조하고 있습니다만. -_-;;

 

 + 쓸 데 없는 얘기지만. 최민식이 잠시 타고다녔던 '재수 좋은 택시'는 경기도 콜택시더군요. 장거리 뛰고 있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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