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휴가가 끝나가네요 외

2012.12.27 02:40

에아렌딜 조회 수:1710

1.

휴가가 끝나가네요. 이제 하루 남았어요.

여기 있는 동안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던지요. 잠깐 정신 차리면 두세 시간이 훌쩍 가 있어요. 

하루가 12시간 정도 줄어든 것 같아요. 세상에.


이제 하루가 지나면 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아마 1년 정도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겠지요.


일본이 살기 힘든 건 아닌데, 아니 오히려 마음 편하고 행복하기도 했는데...

근데 막상 집을 떠나려니까 또 가슴이 먹먹해요.

익숙한 곳을 떠나간다는 것은 왜 이렇게 슬픈지...


꿈에서도 몇 번이고 이곳을 보았죠, 집 앞 횡단보도, 여름에나 겨울에나 서 있던 정자나무 앞 길...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라요.

즐거운 일보단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 훨씬 많았는데도. 왜 꿈에서 보는 풍경은 한결같던지요.

왜 이렇게 심란한지 모르겠어요.


가족도 없고 혈연도 없는 땅이라서 그럴까요.

어차피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고 어디 간들 한 몸 누일 데야 없겠냐마는...

그래도 또 막막하고 갑갑해요.

나는 거기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 잘리면 난 또 어딜 가야 하나?

나이는 점점 먹어 가는데... 안정적인 직장이란 대체 뭘까요? 

공무원 같은 소위 철밥통이라 말하는 직종이 아니면 어딜 가도 불안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럼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다 미래가 불안할까요?

그렇다고 내가 뭐 내세울 게 있나요.

한국 내에 직장을 얻을 수 없는 것도 내가 워낙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다, 이런 생각이 드니 또 씁쓸하네요.

사실은 일할 직장이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겠지요.. 

그래도 사람 마음은 자꾸 불안하기만 하네요. 


올 한해 제 인생에 과분하도록 행복했습니다만, 그만큼 마음 졸이고 아파한 날은 얼마나 많았던지요.

죽기 전에는 조금은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그런 류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2.

일본에 있다가 한국에 와 보니 확연히 느낍니다만... 확실히 일본 서비스 업계 사람들은 좀 친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에요.

왜일까요? 여기가 경상도라 그런가(지역 감정이 있어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단지 경상도 사람으로써 느끼는 경상도민?에 대한 느낌이에요) 경상도 사람들은 대체로 좀 무뚝뚝하고 말투도 억양도 왠지 딱딱하고 퉁명스럽게 들리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작은 편의점 직원조차도 비교적 나긋나긋하게 얘기를 해 줘서 한결 편했어요. 

일반 서비스 응대도 정중하기 그지없고요. 일본에는 경어체가 여럿 있는데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은 매우 정중한 어법을 구사해요. 

그러다보니 한국 돌아와서는 괜히 깜짝 놀라곤 하네요. 오늘 택배를 부치러 우체국에 들렀는데 주소기표지 기입을 잘 몰라서 대충 적어서 드렸더니 직원 아주머니가 '이리 주면 어쩝니꺼?' 하고 딱딱하게 내뱉는데 너무 불쾌하게 느껴져서 좀 놀랐네요. 물론 바쁘셔서 그러셨겠지만... 확실히 말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일하다 보니까 일상부터 정중하게, 항상 숙이고 들어가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딱히 잘못하거나 그런 건 아니어도 일단 공손하게 말하면 상대 쪽의 기분을 거스르는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서에요. 

손님은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요. 좋은 사람들은 정중한 태도로 모시면 자신도 황송해하거나 좋은 분위기로 응해주시지만 좀 거만하거나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는 손님도 있으니까요.

근데 한국 손님들이 오시면 저보고 '교포냐, 일본인이냐' 하고 묻곤 하시더군요. 한국 사람이 보기엔 확실히... 일본 사람들이 좀 지나치게 굽신거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 어렵네요.

어쨌든 경상도 말투는 참 거친 것 같아요. 나쁜 건 아니겠지만 저같은 종이멘탈에겐 어쩐지 화내는 것처럼 들려서 무섭네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왜 다들 화내는 것 같지... 하고 생각했었더랬어요.




3.

올 한해가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어떠셨어요?


저는 지옥과 천국을 오갔네요.

죽겠다고, 죽고 싶다고 몸부림을 쳤었는데... 그렇게 괴로웠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이 생겨서 참 역설적이랄지 뭐랄지....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앞날은 불안하기만 합니다만

그래도 지금, 행복하다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게 작은 관심 하나씩 주셨던 듀게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정말...


인터넷을 하면서 가장 신기하고도 따뜻할 때가 그런 때지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위해주는 말 한 마디씩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도 따뜻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데 제가 돌려드릴 수 있는 건 그저 고마웠다는 말뿐이네요....

고맙습니다.




4.

어쩐지 쓸쓸하고 가슴아픈 밤이네요.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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