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총선과 대선을 연이어 패배하고 혼돈에 빠져있는 야권에 잔소리를 보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지만 몇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대로라면 5년 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첫 단추를 잘 꿰고 있고, 야권의 기대(?)보다 훨씬 잘 해나갈 것입니다.

1) 우선 87년의 추억을 잊어야 합니다. 50대의 90%가 투표에 나서고 이들 중 다수는 박근혜 당선인을 찍은 현실을 놓고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가 많지만 시대가 변한 걸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2002년 대선때 40대였던 지금의 50대는 더이상 80년대 민주화투사들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2) 유권자를 득표의 대상으로 보기 이전에 먼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예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이든 이들의 참정권을 '꼰대투표'로 폄하하는 시각으로는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가스통할배'들이 거리에서 거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적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고, 품위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할 일입니다. 대중은 자신들을 멸시하는 정치세력을 표로 심판합니다.

3) 정책연구 기능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유권자 구성과 요구의 변화를 얼마나 치밀하게 분석해서 정책공약을 다듬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유권자의 요구를 받아안아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가공해낼 능력에 있어서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갑자기 생긴 능력이 아닙니다. 술자리에서 웅변을 하기보다는 보고서와 통계자료를 뒤적이는 걸 더 좋아하는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의 범생이 연구원들이야말로 야권이 두려워해야 할 존재입니다.

4) 계파간 권력투쟁이 아니라 노선투쟁을 해야 합니다. 한미 FTA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미국 등 주요국가들과의 외교정책의 근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제주해군기지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등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합의와 공감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5) 동종교배를 그만 둬야 합니다. 야권은 지난 4월 총선 때 이미 연말 대선에서 패배하고 있었습니다.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니 국민연대니 온갖 수사를 갖다 붙였지만 결국 친노인사들의 코스프레에 불과했고, 전대협 세대인 486은 청년비례대표를 뽑겠다면서 한총련 세대를 영입하는 통로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의 선거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쪽에 이미 자리가 다 차있고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철수 캠프로, 박근혜 캠프로 갔다는 전문가들을 꽤 여럿 보았습니다.

6) 앞으로 5년 한국사회를 관통할 메가이슈를 2개만 꼽는다면 저는 노동과 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선 이후 해고노동자들이 좌절감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데, 심리적 좌절감은 시간이 가면서 무디어지더라도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같은 문제들은 더 악화될 뿐입니다. 2012년 오늘,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이 <남영동 1985>보다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보와 보수가 모두 중도화 전략을 쓰면서 정책노선상의 구별이 흐려졌는데 '노동'은 그 구분선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또한 재정은 그 추이를 잘 살펴야 합니다. '증세없는 복지 확충' 기조를 유지하는 한 재정 악화로 이어질 위험성이 상존하니 말입니다. 복지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놓은 상태여서 새 정부는 적자재정을 감수하더라도 복지를 늘리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국회와 정당을 10년 이상 취재해온 기자로서, 또 주로 야권을 담당해온 기자로서 소회를 나누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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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맹찬형 정치부 기자의 글인데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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