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쓸쓸하지만

2013.01.06 02:57

푸른새벽 조회 수:1924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청소하고 샤워하고 잠깐 있다가 잠들어서 결국 10시에 깼습니다.

배가 고파 냉동실에 있던 등심을 조금 자르고 개성왕만두를 꺼내 만두국을 끓여먹었습니다.


요즘 거의 집에서 밥을 안 해먹는데-심지어 라면도 컵라면을 더 많이 먹어요.-

그렇다보니 어젠 갑자기 검고 작고 느린 쌀 벌레가 눈에 띄어서 싱크대 아래에 있는 쌀 바께스- 한 5리터 정도 되는 작은-

뚜껑을 열어봤더니 조금 남아 있던 쌀은 거의 화석반 가루반이 되어 있고 쌀 벌레들이 우글거리더군요.

거기서 몇 마리씩 기어나와 눈에 띌 정도가 됐나봅니다. 쌀 벌레는 작고 느려서 그리 징그럽거나 하진 않아요.

손으로 꾹 눌러 죽이는 게 오히려 미안해질 정도로 온순(?)해 보이는 녀석들입니다.

자세히 보면 장수하늘소랑 좀 비슷하게 뿔도 나 있는 것 같은데..

일부는 비닐에 담아서 쓰레기 봉투에 버렸고 일부는 쌀 바께스채로 입구를 비닐로 막아 현관문 앞에 놨어요.

오전에 갖다 버릴려고 보니까 벌레들 움직임이 없더군요. 밤새 다 기어나온 것 같지는 않고 현관문 앞이 추워서 다 얼어죽었나 싶은데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눈에 보여도 그리 징그러운 녀석들은 아니니까.

 

아. 만두국 끓여먹은 얘기를 하고 있었죠. 암튼 너무 오랜만에 집에서 뭘 해먹으려고 했더니

야채는 전무하고 오직 고기와 냉동식품과 조미료 뿐이더군요.

그래도 등심을 넣어 끓여서인지-라기보다는 소고기맛 다시다와 가쓰오부시맛 다시다를 적절히 섞어서 끓였더니 맛이 꽤 좋았습니다.

따뜻하게 만두국 끓여먹고 가만히 있으려니 문득 쓸쓸하구나.

지금까진 제가 외롭고 쓸쓸하던 시기엔 좋은 사람이 먼저 다가와 날 위로해줬죠.

난 그저 쓸쓸하게 지내는 모습을 살짝만 드러내주면 됐어요.


문제는 이젠 쓸쓸하다는 것도 드러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20대 시절이야 쓸쓸해 보이는 남자라면 뭔가 있어보이고 도닥거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다들 기반을 잡고 가정을 꾸릴 시기에 쓸쓸하네 외롭네 해봤자 그저 구질구질하고 청승 그 자체일 뿐이죠.

게다가 스스로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부담만 느끼고 전혀 흥미가 생기질 않습니다.


삶이.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가장 괴로운 건 예전의 나는 먼 훗날 오늘의 내가

이렇게 지내고 있게 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원래 좀 느긋한 성격이라 웬만해선 비관하거나 조바심으로 괴로워하는 편이 아닌데

요즘은 조바심을 갖기에도 늦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꼭 누군가를 만나고 그러는 일 뿐만이 아니라.


이런 와중에 정말 게시판에 털어놓기도 어려울 만큼 재수없고 괴로운 일들도 연달아 생겼고.

아무튼 요즘은 진짜 힘드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58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15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209
60953 [듀나인] 서울 시내 게스트하우스 추천 부탁드립니다~ [3] 침엽수 2013.01.05 2110
60952 [잡담] 타워 감상 [1] 귀검사 2013.01.05 966
60951 글을 찾습니다. [2] 아.도.나이 2013.01.05 1043
60950 듀게 솔로대첩 후기. [24] 취미는공부 2013.01.06 5723
60949 [윈앰방송] 클래식 [2] ZORN 2013.01.06 744
60948 사회적 윤리적인 행위와 본능이 충돌할때 본능을 관철하는건 나쁜짓인가? [3] 살아 움직이는 2013.01.06 1863
60947 [벼룩] 여성 겨울 의류 벼룩합니다. [1] awesome 2013.01.06 1393
60946 집들이 음식 추천 좀 해주세요. [21] 해삼너구리 2013.01.06 3068
60945 [바낭] 먹부림 [29] 세호 2013.01.06 3816
60944 [벼룩] 만화책 벼룩 [1] 누구오빠 2013.01.06 1125
60943 후지타 에미와 비슷한 풍의 노래를 부르는 포크가수 [1] 무비스타 2013.01.06 923
60942 받는 거에 익숙하지 않는 남자. [10] herbart 2013.01.06 3748
60941 왜 제 장은 뭘 해도 튼튼해지질 않는걸까요 [8] dlraud1 2013.01.06 2095
60940 집에서 우동먹기 - 우동면, 육수, 오뎅에 대한 보고서 [9] 오맹달 2013.01.06 4285
60939 [후기] 듀게 솔로대첩...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5] 이인 2013.01.06 4575
60938 (바낭) 필 받아 올리는 롹키 발보아. 록키가 아닙니다. [2] 유우쨔응 2013.01.06 1118
60937 얼마 전 뮤직 바(bar) 추천받고 다녀온 후기 [6] Regina Filange 2013.01.06 2040
60936 듀게 솔로대첩 후기2 [5] 고래밥 2013.01.06 4494
60935 [바낭] 다큐멘터리. [1] 닥호 2013.01.06 928
» 외롭고 쓸쓸하지만 [4] 푸른새벽 2013.01.06 192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