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6 18:13
제 기억으론 한국어 번역본 출간된 것이 2004년이었어요. 우연히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정말 맘에 들었어요. 그 이후로 여름만 되면 꼭 읽었고 여기에서도 몇 번인가 휴가용 책으로 추천헀던 기억이 있네요.
판타지 어드벤처 소설이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우울하고 어둡죠. 영화가 그 지점을 잘 잡아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험소설인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이번 영상화의 가장 큰 장점이 멋진 풍광을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거라는 데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바다는 물론이고 동물들 모습, 그리고 하늘과 구름!! 정말 많이 나와서 좋았어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 마지막 책을 덮을 때 남는 잔상이 항상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거든요. 어둑한 바다 위의 달빛이나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요.
이안 감독 영화답게 영상미가 끝내주고 3D로 보니까 더욱 좋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만새기 (파이가 우연히 잡은 커다란 물고기)가 죽을 때 무지개 색깔로 빛난다고 하는 걸 처음 알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적도 있었는데 그 부분도 잘 살렸더라고요.
글로만 읽었기 때문에 이미 머릿속에서 영상화가 불가능한 정도까지 상상해 버린 부분이 없진 않지만, 80% 이상 만족스러웠어요.
그리고 스토리를 가지치기해서 뼈대를 잘 살리고 속도감이 생긴 점(특히 리처드 파커를 조련하는 부분이 간결해진 게 눈에 띄더라구요. 전반적으로 바다 위의 생활이랑)도 나쁘지 않았어요.
리처드 파커가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정이 들면서 동시에 거의 끝까지 공포심이 들고 긴장감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도 잘 조절된 것 같고요.
제가 영화 기술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호랑이 대체 얼만큼이 CG인거죠?! 후반에 살이 많이 빠지면서, 그리고 섬 전후로 해서는 눈에 띄는 부분도 많긴 했는데
맨 처음 등장부터 너무 신기했다고 그랬더니 친구 왈 제가 촌스럽다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어요. 초반에 종교 부분을 꽤 많이 다룬 것이 좋았는데 파이가 조난당하고난 직후에도 신들에 대해 생각한 부분이 슬쩍 빠지고 나중에 태풍이 부는 지점에서 슥 다시 등장하는 게금 거슬렸다고 해야하나, 뜬금없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다룬 것도 좋지만 제목처럼 파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게 결국은 메타포로 사용된 종교라는 점도 너무나 좋았거든요.
결말에 대해서는 제가 원작을 읽어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소설보다는 충격의 강도가 더 약하게 처리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해운회사 직원들이 찾아와서 파이를 의심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원작에선 이 직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파이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좀 더 강하게 암시하는데, 영화에선 덜 그런 것처럼 느껴져서요.
사실 작년 여름에는 이걸 안읽고 넘어간데다 워낙 기억력이 안 좋아서 확신이 없습니닷.
영화에선 해피엔딩이네요, 라고 대놓고 말해주고 소설에서도 엔딩 자체는 같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면서 배드엔딩이라고 굳게 믿고있어서, 영화에서 해피엔딩이네요 라고 대놓고 말할 때
좀 바보같지만 어떤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원작에 저 부분이 나오는지 확인해 볼 거에요..
아무튼 영화가 정말 맘에 들어서 한 번 더 보러 갈 예정입니다.
메가박스에서 봤는데 관객들이 많았음에도 정말 100%에 가까운 집중력을 보여주셔서 덕분에 저도 완벽히 몰입해서 봤답니다.
오늘 저와 함께 본 관객분들께 감사하고 박수 드립니다!!! ㅠㅠ
(얼마 전에 레미즈 볼 때 엄청난 관객크리를 겪어서 한동안 극장에 갈 맘조차 안났었거든요ㅠㅠ)
다음에 볼 때도 부디 그런 관객들을 만나기를 대략 3천 2백명의 힌두신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알라신과 부처의 이름으로 빕니다.
PS 1. 센스 앤 센서빌리티 찍고 나서 이안 감독 다시는 동물 데리고 촬영 안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요? 게다가 그 다음에 브로크백 마운틴 찍으면서 양 때문에 고생하고 다시는 절대로 동물 데리고 촬영 안하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던가요?!ㅎㅎㅎ
PS 2. 파이가 불교도 포함해서 4개 신을 섬겼던 것으로 기억하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당황.. 아무래도 원작을 다시 읽어야 겠습니다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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