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앉은 자리에서 친절한 복희씨를 2-3시간동안 완독해버렸습니다. 뭐, 이유는 별 거 없어요. 할 거 많은데도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뗄 수가 없더라고요.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특유의 담담한 전개에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박완서 소설을 읽으면 통속성을 읽어냈지요. 바로 우리  옆집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일들 말이죠. 김수현의 무자식 상팔자를 훨씬 더 깊은 심도의 문학으로 읽는 느낌이 듭니다. 단순히 드라마와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요. 박완서의 이 강렬한 힘, 똑똑하고 당찬 소녀도 되고, 피해자도 되는, 그러나 절대 균형을 잃지 않는 이 필력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 사람의 글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습니다. 과하게 슬퍼하지도, 과하게 기뻐하지도 않아요. 사실 어떨 때 보면 냉소적이고 예리하기도 합니다. ... 뭐, 박완서 님을 예찬하는 것은 이 정도까지 하도록 할게요. 다만 친절한 복희씨를 읽다가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것만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 단편 / 문학과 지성사

 

    p 47 - 요샌 뭐든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돈 버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여봐란 듯이 하는 세상이니까.

> 길거리에서 연인들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보는 나이 든 여성의 시각으로

 

    p 66 - 국가라는 큰 몸뚱이가 그런 자반 뒤집기를 하는데 성하게 남아날 수 있는 백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 한국전쟁 때 서울이 북에 수복되었다가 남에 수복되었다 한 상황을 말하며

 

    p67 - 남이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 내지 않는 애인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을까.

 

 

    p71 - 그가 부산 간 날이면 나는 외롭고 쓸쓸해서 이불 속에서 몰래 숨을 죽여 흐느끼곤 했다. 아무리 시장 바닥에 인간들이 악머구리 끓듯 하면 뭐하나, 그가 없는 서울은 빈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남은 남녀는 절대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

> 전쟁 통에서라도 연애할 사람은 모두 다 한다는 진리...!

 

    p74 -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p77-78 -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은이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마치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꼭지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 애들 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

> 젊은이들에게 왕성한 성적 터치를 (?) 권장하시는 박 작가님....

 

    p118 - 바로 저거다 싶었다. 피붙이간에만 있을 수 있는 건 근본을 안다는 것, 그래서 비록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어릴 적의 천사 같은 미소를 기억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맹목의 믿음, 마지막 보호막 같은 거 말이다.

 

    p209 - 초롱초롱과 아귀아귀가 그렇게 그로테스크하게 들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 자식을 잃은 노인의 장례식장에서의 모습을 관찰한 노인의 친구의 말을 옮기며

 

    p257 - 장차 내 자식이 되기를 바라는 나의 이상형은, 나의 몸이 잠시나마 물오른 한 그루 박태기나무로 변신하는 기적과 환희를 맛보게 해준 대학생같은 남자였다.

> 이 부분은, 직접 보셔야 이해가 될 것입니다!!

 

  

    친절한 복희씨 정말 완전 추천 드립니다. 꼭 보셔요. 너무너무 재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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