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진콜

2013.01.09 21:28

눈씨 조회 수:3338

'마진콜'은 2008년 금융위기의 시작이 되었던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모티브로 하였으며 월 스트리트 사람들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금융산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거나 세계의 경제적 흐름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아쉽게도 나는 그 정도 소양은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식은 없더라도 영화에서 묘사하는 '위기'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갈등을 겪는지는 매우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느낌을 바탕으로 볼 때, 금융위기라든가 모럴 해저드와 같은 말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축소하거나 한정시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고 물어봤을 때, 설명하는 어휘로 필수적으로 들어갈 것 같지만, 결국 영화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고 할까.

그러한 맥락에서 이 영화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키워드가 있다면 '예측'이다. 이 '예측'이라는 단어는 내게 '잘 짜여진', '계산(통제)가능한'과 같은 수식어들을 연상시키는데, 다름 아니라 완전무결한 세계를 표상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개발자가 매우 잘 짜여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할 때, 그 프로그램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고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버그나 에러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완전무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발자는 그 프로그램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위기는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예측이 빗나감으로써 찾아온다. 물론 그들도 스스로의 계산이 100%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관리 부서를 두어 발생 가능한 변수들에 대비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예측들조차도 뛰어넘는 위기가 찾아오고 등장인물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계산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된다.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중심으로 등장인물 면면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지점들이 많이 발견된다. 위기관리부서 팀장이었던 에릭 데일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예측했으나, 자신이 회사에서 해고당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한다. 또한 에릭 데일을 해고하는데 승인하거나, 방조한 사람들은 위기관리부서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가 해고되자마자 발견된 위기 때문에 곧장 에릭 데일을 찾는 희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 하루만에 회사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는 소임을 맡는 평사원들은 본인들 중 일부가 결국 해고당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다.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CEO 존 털드이다. 오로지 예측하는 능력 하나로 회장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대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대응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면 누구보다도 빠른 대응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부하직원들을 설득한다.

존 털드의 제안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그것을 반대하지 못한다. 모두 존 털드의 예측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며, 이타심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나는 그대로 빈민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 이 예측은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며 결국 모든 등장인물들이 윤리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내가 살기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모든 예측이 무너진 불확실한 세계에서 그나마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돈)을 부여잡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서글픈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세계의 시스템이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결함을 인정하고 수정하기 보다는 그로 인한 부당 이득을 얻는 쪽에 속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신뢰하는가, 사람을 신뢰하는가. 예측은 다수의 사람들이 무엇을 신뢰하는가로부터 신빙성을 얻는다. 존 털드의 예측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탐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오게 된다. 만약 샘이 회사바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었다면, 그는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존 털드에게 대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김용철 변호사의 사례로 미루어 어떤 예측이 더 설득력을 가지는지, 하나의 답안을 갖고 있다.

당분간은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 세상이 올까? 모르겠다. 다만 그러기를 기대하며 일단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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