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이나 지지리 책을 안 냈음에도 불구하고 문단에서는 늘 핫할 수밖에 없는 작가, 김영하의 신간을 읽었습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검은 꽃』과 연극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오빠가 돌아왔다』를 제외하고 김영하의

소설을 다 읽었는데요, 사실 대학 들어가기 전만 해도 김영하는 굉장히 재기발랄한 이미지였어요, 또한 실제로

그의 글이 그러했죠. 2002년, 무지 비루한 판형으로 출간되었던 얄팍한 산문집 『포스트잇』에서 그의 글이 어찌나

재밌었던지. 마음속으로 찜꽁해두고 에퉤퉤 내꺼임 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하자니 이미

김영하는 대세 중의 대세가 되어있었죠. 지금의 김연수나 박민규가 그렇듯이 상도 많이 받고 OSMU 분위기를 타서

소설이 영화화되기도 하고 말이죠. 돌이켜보면 한국 문단에서 김영하의 존재 의의는 통신/인터넷 문화를 가장 자연스럽게

문학에 끌어들여 문단과 대중 양쪽을 자유스럽게 호흡했다는 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가교 역할로서 그의 문학은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빛의 제국』,『퀴즈쇼』, 그리고 이번 단편집을 읽고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그의 문학이 한국문학에 가져왔던 신선한 바람의 의미를 생각하면, 지금의 그의

글은 여전히 재밌게 읽힐지언정 결코 그만큼의 파급력을 가지진 못한다는 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즉 '김영하는 김영하'

라는 아주 공고한 브랜드 가치는 현존해요. 앞으로 그가 낼 장편 두 권이 열쇠인 것 같아요. 밀레니엄의 아이콘에서 출발해

이제는 엄연한 중견작가로서 그 브랜드 가치에 상응하는 문학세계를 전개해 보일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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