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요새 리움 전시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보러갔다왔거든요. 무지 추운 날에 안떨어지는 걸음을 억지로 옮기면서 다녀왔어요. 

집하고 리움은 정말로 가까운데 왜 억지로냐면 미술관이 워낙 오랜만이기도 하고 괜히 내가 이것 보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냐라는 잡생각 같은것이 들었기 때문인것 같아요. 

이상하게 전 영화를 볼때도 그렇고 전시를 볼때도 그렇고 이렇게 처음에는 굉장히 박한(?), 예술에 대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 상태를 가지게 돼요.


저는 현대 작가를 잘 몰라서 아니쉬 카푸어가 인도 출신의 여성 작가라고 알고만 있었거든요. (하지만 남자더군요.. 왜죠(?))

전시를 보기 하루 이틀 전에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던 차였고, 간략한 전시 리뷰들을 통해서 굉장히 종교적인 느낌을 기대했었어요. 

특히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볼때 제 나름대로 인도적 종교관이 시각화된 것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스스로 정리하고 있던 참이어서요. 

아니쉬 카푸어전도 약간 연결된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같아요. 


이번 기획전은 아니쉬 카푸어가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갖는 전시고, 그가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던 1970년대의 가루안료 작업과 보이드 시리즈, 

건축물을 유기적으로 해석한 작품과 거대한 모노크롬 작업,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 작품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네요. 

리움의 야외전시 공간에 이례적으로 부르조아의 작품 대신 기획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어요. 

이건 효율적인 선택인것 같아요. 거대한 크기의 스테인레스 스틸 공들이 무수하게 하늘을 반사하면서 서있는 풍경이 괜찮더라구요. 


기획전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은 '보고 또 보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을 마음껏 보는 쾌감' 을 느꼈다는.. ^^; 좀 얼빠진 것이군요. 


일단 처음에 가졌던 기대와 조금 다른 작품들을 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종교적이거나 인도 특유의 문화적인 정체성과 느낌을 풍부하게 쏟아내는 작품들이라기 보다.. 굉장히 순수하게 조형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느낌이었어요.

전시개요에서는 그가  "특정한 예술 형식을 좇기 보다는 보편적인 예술 개념과 정서를 작업에 담아 왔다"고 설명하던데

'보편적인 예술 개념과 정서' 라는 부분에서 몇 번 생각을 더 하게 만들더라구요. 지금도 궁금해요.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서 말할때, 자연스러운 전략이겠지만 특정 예술 형식에 속하거나 분류될 수 없을만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건 

그냥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지곤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될지.. 


물론 특히 제게는 이번 전시의 스타? 같이 느껴진 보이드 시리즈들이 주는 특유의 숭고함, 존재와 부재에 대한 테마 같은 것들은 

충분히 '종교적인 것' 또는 서구인 기준에서 '동양적인 정신'으로 연결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도 같지만, 

거대한 노란색의 작품이 주는 인상은 역시 인도나 종교적인 세계보다는 모노크롬 추상화, 뭐 로드코 같은 화가의 작품에 더 가까웠던것 같아요.

 

어쨌든, 좋았던 부분은.. 

'보고 또 보기만을 위한 것' 이라는 게, 사실 전시를 위한 예술작품을 만들 때는 당연한 것인데 관람자 입장에서 그 본질을 순수하게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은것 같거든요. 

사람들은 '보는 것' 자체의 쾌감을 느끼기보다는 봄으로 해서 얻어지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로 곧 넘어가게 될 때가 많잖아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시각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거의 물리적으로 시선을 정말 흡수하고 빨아들이게끔 만들어져 있는것 같아요.

예를 들면 보이드 시리즈는 작품 자체가 깊숙이 뚫린 하나의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다든지, 또는 아예 빛과 함께 시선을 빨아들이는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서

관람자의 시선이 실제로 작품 내부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을 체험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것을 천천히 느끼고 음미하는 자체가 상당한 쾌감이 되었어요.


저는 사실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해 그렇게 큰 경외감? 같은것을 가지는 편은 아니고, 오히려 상당히 시큰둥한 기분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편인것 같은데

오래오래 시간을 들여 하나의 만들어진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것과 가까워지고, 어떤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즐거움인지 다시 느끼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거기에 '인도' 와 '종교'와 '색'과 '재료'에 대해 여러 의문을 가져본 것은 부가적인 소득인듯 싶네요. 


붉은 왁스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에서는 갑자기 타셈 싱 생각도 났어요.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html/exhibition/main.asp#category=10&id=25


제 별 내용이 없는 리뷰가 제공하는 정보가 부족하시거나 이미지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링크로 들어가시면 될듯 해요.


전시 보고 나와서 주변 카페를 찾아 어슬렁거렸는데 사람이 정말 많더라구요. 

요새 전시를 보러 나오면 사람들이 참 많아요. 저는 좋아요. 뭔가 파티같은 느낌,

리움 근처는 왠지 비쌀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서 결국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으로 와버렸는데 괜찮은 곳이 있을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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