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상관은 없는 일이기도 한데

6년 전 일입니다.


불알친구가 하나 있는데, 디워 개봉했을때 보러 가자고 엄청 졸르드라구요.

안본다고 안본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끝까지 보자고 보자고 졸라대서 결국에는 보러 갔습니다.

그나마 제가 돈 줄 거 다 주고는 못보겠다, 조조로 보자 하고 타협을 했죠.


그렇게.. 보고 나왔습니다.. (ㅎ 뭔 말이 필요하겠어요)

친구나 저나 둘다 그냥... 묵묵 부답 하면서 극장을 나서다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다이하드 4.0 포스터를 보게 됐지요.

간만에 문화활동 좀 하러 나와서 이대로 갈 순 없다 싶은 생각이 둘 사이에 불끈 솟아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거진 무슨 신의 계시처럼 느껴지네요.


둘 다 돈 없다고 팝콘도 안사들고 조조로 영화 본 주제에 바로 들어가서 제일 빠른 티켓을 두 장 샀습니다.

아침도 거르고 나와서 주린 배를 콜라 큰거 하나 노나먹으면서 달래면서 상영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는 대망의 다이 하드 4.0 폭풍감상.

와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군요.

디워 보고나서는 우리 둘 다 눈동자 알맹이가 빠진것같은 표정으로 말도 없이 괜히 힘빠져있었는데

다이하드 보고 나와서는 우왘 존 맼클레인 킹짱킹짱 낄낄낄 거리면서 영화 얘기로 한참을 떠들었습니다.

극장 가려면 버스타고 한시간 걸리는 촌 사람이라 집에가는 길도 참 멀었는데, 버스에서도 내내 야 그장면 죽이지 않았냐 맼클레인이 여기서 뽱 저렇게 꽝 악당들 피떡피떡 간지 쩔어 숙덕숙덕.


지금까지 영화관에서 본 영화 중에 가장 즐겁게 본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 유치함이나 촌스러움 이라는 키워드가 결코 나쁘게만 들리진 않더라구요.


시트콤 프렌즈의 한 장면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거든요. 남자들끼리 쉬면서 다이하드 1,2 비디오를 빌려와서 일단 1편을 재밌게 봤어요. 근데 1편 다 보고 2편을 넣으려고 하는데 이제 보니 실수로 1편만 두개를 빌려온거에요.

그래서 남자들끼리 또 비디오가게 갔다와야되나 귀찮네 이러고 있는데 조이(로 기억합니다)가 "우리가 지금 원을 봤잖아. 원을 한번 더 보면 원 프러스 원 해서 투가 되니까 다이하드 투가 되는거야." 라고 하니까 친구들은 그걸 또 콜하고 방금 본 1편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돌려보는, 그런 귀엽게 멍청돋는 상황이었죠.

이런걸 키덜트라고 하나요?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엽(징그럽?)게 자기 취향에 몰두하는 모습이요.

대학교 실용 영어 수업 강의하시던 외국인 강사분도 아이언맨이 개봉한다고 하루 수업 내내 아이언맨 얘기만 한 적이 있었죠. 인사 대신 "예에! 아이언맨 커밍 순!" 을 외치며 수업을 끝내셨던 그 양반이나,

프렌즈 친구들이나, 저랑 제 친구나,

꽤 유치하게 노는 모습이지만, 그게 참 재밌습니다.


이런 즐거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유치함, 촌스러움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거든요.



ps.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니까 저 친구가 다이하드 4편에 대해 작게 불평했던 부분이, 전작들보다 CG를 많이 써서 아날로그적 느낌이 덜해졌다는 거였습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놈새기가 보자고 했던 디워는? 이라고 묻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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