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재밌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였어요.
이번에 친구가 전시회 하나를 추천하길래 찾아보니, 이 책을 쓴 인문학자 김진송씨더군요.

국문학과 미술사 전공자.

하지만 인문학만으로는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어 시작한 목수일이
이렇게 관련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열정도가 되었다는 것에 감탄해버렸습니다.
 
 
과연 인문학자가 다듬은 나무들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고,
예전 동화에서나 보던 목각인형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철학과 이야기가 있는 나무라...멋지지 않나요? :) 

세종문화회관에서 하고 있는 '상상의 웜홀: 나무로 깎은 책벌레이야기展'입니다.
이번달 27일까지 열리니 부지런히 가보셔야 할거에요.

 
 
 
일단 결론 먼저 말하자면.
작품에 실려있던 글과 작품전체를 담은 대도록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정도로 좋은 전시였습니다.
세세한 이야기를 원하시면, 도록이 아닌 김진송씨가 쓴 관련 책을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작품수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고,
목각제품 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이 있어서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의도에 따라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질감이 변화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어요.
 
요즘 아이들처럼 저 역시 자연을 직접 맞닿으면서 자란 편은 아니라,
각 나무의 느낌이 어떤지, 나무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질감은 어떻게 다른지를
느낄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제와서야 이런걸 깨닫다니 하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게다가 사진촬영이 허용되서, 마음껏 작품을 찍을 수 있어요
목재 하나하나를 톱니바퀴처럼 껴맞춰서
움직여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 굉장히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전시공간이 넓고 자유로운 분위기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좋은 전시회입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몇 작품들만 추려볼게요.
작품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깃들여 있어서,
마치 전설이 있는 자연물들을 보는 것처럼 재밌고. 찡했어요. 


 

나는 해골이 무서워서 이불속으로 숨지만,
오히려 해골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무섭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어떤 존재에게는 폭력적이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겠죠..
상대방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덮어놓고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요.
 
 
저 손잡이를 돌리면 해골과 침대보가 움직입니다 :)





책벌레가 별명인 아이.
그리고 어느날, 그 아이의 꿈에 나타난 진짜 책벌레.
 
책벌레가 모두 책을 먹어버릴까봐, 더 열심히 책을 읽게 된 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이 작품 말고, 책의 바다에 빠지는 아이를 묘사한 작품도 좋았어요.
나사를 움직이면, 책 속에 퐁당 빠지게 만들었더라고요 ^^

 


책벌레에게 모두 먹혀, '가!'라는 글자 하나만 남아버린 책.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한글자 '가!'를 내뱉어 보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벌레는 무심히 자기 할일을 할 뿐입니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책도. 사람도. 벌레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신은 어느날 불완전한 우주를 창조해보려 했으나,
별은 자기나름의 궤도를 찾고 법칙을 만들어 버립니다.
 
 
 
왜 불완전해 지지 않는가. 왜 엉망진창인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가를 아무리 고민해도
이것만은 답을 찾을 수 없었죠.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신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불완전한 것은 결코 만들 수 없다는 역설


 

허무하게 사라진 그녀. 라는 작품입니다.
보면서 만 레이의 '파괴할 수 없는 오브제'가 계속 생각났어요.
 
내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그래서 언제나 내 마음을 갈기갈기 꺽이게 만들었던 사랑..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녀의 모습도 희미해져
가만히 애써 생각해야 떠오르는 앙상한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겐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너무 낡은 추억이라 관에 든 근골처럼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오이씨아이.
 
원래는 저 오이씨가 닫혀있는 모습인데,
손잡이를 돌리면 저렇게 씨가 열리면서 아이가 나타납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굉장히 신기해하면서 좋아했어요 ㅎ
엄지공주 생각도 나고 :) 
 
 
생명탄생의 순간이지만, 톱니바퀴 아래엔 해골이 숨겨져 있습니다.
죽음이 한번 등장해야 생명이 한번 탄생해요.
 
우리의 삶의 뒤골목엔 언제나 죽음이 존재한다는걸까요.
生死의 길은 여기에 있다...라는 말처럼.


메뚜기병사.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군대지만,
성격이 급해 제각기 튀는 웃기는 메뚜기병사들입니다
 
아래 톱니바퀴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나사를 돌리면
제각기 요란하게 튀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ㅎ
 
소리가 커서, 한번 움직이면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서 구경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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