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시절 김용옥 선생이 쓴 '도올세설'을 들고 휴가 복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창 활자에 목말라 하던 시절이라 아버지 책장에서 뒹굴던 책을 별 생각없이 들고 갔었습니다.

'불온서적에 걸릴래나' 하는 염려도 아주 조금 들었지만 사상적 문제가 이슈화 되던 시절이 아니었고, 당시 시점에서도 철지난 책이라 별 걱정을 안했죠.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엔 대형 서점에서 위문 서적을 주기적으로 보내주곤 했었는데 거기엔 체게바라 평전 같은 것들도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휴가 복귀 후 일주일이 지나도 책을 보내주지 않는겁니다. 이런쪽을 담당하던 부사관이 여자 하사였는데 (사병과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고, 나중에 사실로 밝혀짐 -_-)

이런걸로 문제잡을 사람은 아니었기에 전화를 했었습니다. 대충 상황 설명을 했고 책을 왜 안주냐고 묻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 없네'라고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그거 비싼거야?'라고 하는겁니다. 여 부사관들과 대화를 해보신분들을 공감할지 모르겠는데 여부사관들 특유의 말투가 있죠. (저만 느꼈던건지도)

 

 

보안성 검토필을 해주지 못하겠다는 사유였다면 크게 문제 삼지않고 수긍했을텐데 잃어버렸다 해놓고 무심하게 나오는 태도는 어이가 없더군요.

이런 분노 프로세스가 좋은 태도는 아니지만 저보다 군 경력도 짧았고 나이도 어렸는데 원사급의 무심함을 보여주니 기분이 참. (당연히 보상 같은 건 안해줬습니다)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하는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했었죠. 그렇다고 화를 내기도 애매하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었습니다. (하지만 불쾌함은 이후로도 좀 지속)

 

쓰다보니 지금도 욱하네요 -_-

 

 

당시 인트라넷내에 몇몇 흥미로운 곳들이 있었죠. 청평병원 사이트가 볼거리가 많았고 공군 모 사이트에는 노래를 공식적으로(군 내부 인정, 저작권과는 무관) 올려둬서

당직 근무때 즐겨듣곤 했었습니다. 선곡들이 좀 제한적이어서 그나마 들을만한게 산타나의 유로파였는데, 입대전엔 너무 끈적해서 싫어하는 노래였지만  새벽 근무때 듣는

유로파는 정말 감정을 요리하는 짜파게티 요리사더군요. 역시나 공군 사이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학 청년들이 모이는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의 연간 독서 일지를 정리해서

올린다든가 몇몇 이슈들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죠. 당시 주요 필진들이 대부분 듀게를 할만한 캐릭터인데 실제로 그런지도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남자는 참 이상한 동물인가봐요. 어떤 소재에서든 군대 이야기를 이끌어내다니.

 

반성하는 밤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66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20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302
59999 [듀나In] 소프트웨어 정품, 어디서 구입하나요? [4] espiritu 2013.01.21 1344
59998 다이어트 19일째 [4] 루비 2013.01.21 1030
59997 컴퓨터쪽 잘 아시는분 계신가요? (악성코드관련) [3] 유은실 2013.01.21 1155
59996 레미제라블 전곡 가사만 볼 수 있는 곳 있을까요? [1] turtlebig 2013.01.21 1562
59995 [독서중 책바낭] 열하일기 - 김혈조(역) 돌베게 [1] 오맹달 2013.01.21 1512
59994 [레미제라블]어릴 땐 코제트가 불쌍했는데... [8] 구름진 하늘 2013.01.21 4102
59993 3.5캐럿 다이아 결혼반지면 [4] 가끔영화 2013.01.21 3729
59992 [듀나인] 외국 아가들이랑 서울 관광할 만한 곳은 어딜까요? [7] 아실랑아실랑 2013.01.21 1877
59991 [기사] '일밤' 정명현, 사망 알려져…'충격' [6] 쿠도 신이치 2013.01.21 5949
59990 베를린 평이 괜찮네요. [4] 매카트니 2013.01.21 3728
59989 [건프라] 만들다 만 뉴건담 사진 몇 장 [11] 로이배티 2013.01.21 2002
59988 이동흡 청문회 "5.16은 군사반란입니까? 혁명입니까?" [13] 닌스토롬 2013.01.22 3839
59987 본격 시사인만화, 에바Q 특집 [3] beyer 2013.01.22 2886
» [바낭] 불온서적하니 떠오르는 에피소드 [1] sonnet 2013.01.22 1103
59985 [단문바낭] 확산성 밀리언 아서 카드 대백과란 게 있군요 [3] 로이배티 2013.01.22 2065
59984 좋은 소녀시대 리믹스 두곡. [15] 불가사랑 2013.01.22 2144
59983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월광> 특강 [3] 오늘은테레비 2013.01.22 1245
59982 목젖 [1] 폴라포 2013.01.22 3637
59981 친절한 금자씨 내용 중 궁금한 점 (스포일러?) [10] 닥호 2013.01.22 3708
59980 요즘 파리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자녀 양육, 입양법 옹호/반대 시위에 관한 생각들... [71] 슈삐유삐 2013.01.22 831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