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0%

2013.01.26 18:40

bete 조회 수:3860

바람 좀 쐬고 들어오니 기분이 조금 낫네요.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마음을 털어놓을만한 사람이 없어요.
제 어두움 때문에 듣는 사람이 피곤해 하는 걸
보기 싫어서요.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을 데가 여기 밖에 없네요.
그냥 넋두리이니 잘못 들어오신 분들은
바로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는 기분이네요.




일과 삶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위축되고 뒷걸음치면서
맡은 일과 인간관계를 잘못하고
그래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욕도 없어지는 악순환이에요.

그렇다고 겉보기에 조건이 나쁜 건 아니에요.
제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하면 많이들 부러워 하거든요.
대학도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데 나왔구요.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가난하거나 하지도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다들 배부른 고민이라고 핀잔을 주겠죠?
사실 저는 자라면서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열심히, 꿋꿋이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해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들 아시겠지만 사람의 행복은
스펙 순서대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제 자신감 부족과 열등감은 뿌리가 깊어요.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거든요.
인간관계가 저한테는 상당한 스트레스였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친구도 별로 없었고
외모적 컴플렉스도 있어서
인간관계에 굉장히 수동적이었어요.
은따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아요.
또래집단에 속하고 싶어서
마치 재밌는 사람이라도 된 양
나를 포장하려는 헛된 노력도 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네요.
맘씨 나쁜 애들한테 이용만 당하구요.
하지만 공부는 곧잘 해서 대학은 좋은 데로 갔어요.

대학 갈 때는 꿈이 컸어요.
좋은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해보고, 배낭여행도 가보고...
어두운 고등학교 시절을 보상받고 싶었죠.
하지만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때보다 더 참혹했어요.
발단은 새내기 MT 때 중간에 혼자 도망간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도저히 사람들이 부대끼는
그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어요.
특히 술 마시면서 게임하는 건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다들 골아 떨어진 새벽에 말도 없이
서울로 도망갔어요.
그 후로 대학생활은 끝장났죠.
제가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거든요.
그 후로 대학에서는 투명인간같이 지냈어요.
지금도 대학 친구는 한 명도 없어요.
연애 경험도 물론 없죠.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저는 그 기회를 완전히 낭비한 거에요.
저 때문에 그 대학을 떨어진 다른 분께 저는 몹쓸 죄를 진거죠.
따지고 보면 저는 운좋게 공부를 잘 했을 뿐
대학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되었던 거에요.
고등학교 때까지 필요한 사회화 과정을
저는 제대로 밟지 못한 거죠.
어쩌면 공부보다 더 중요한......
기초가 없는데 갑자기 잘 하기를 바란게 바보였어요.

이러면 당장 취업하기도 어려울 인성이지만
괜찮은 자격증을 하나 따서 나름 전문직으로
좋은 회사에 취직했어요.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으니까요.
제 사회화는 그 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네요.
여전히 자신감 없고, 열등감 있고, 수동적이었지만
그럭저럭 버틴 것 같아요.
하지만 미숙한 인간관계 때문인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게 됐고 나중엔 우울증까지 생겼어요.
정말 죽어버려도 별 아쉬움이 없겠다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제 삶이 무너지기 전에 저를 구한 건
이번 회사로 이직했던 거에요.
정말 탈출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면접을 봤고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좋았죠. 직장도 남들이 다 아는 좋은 곳이구요
잠시 성취감도 들고 자신감도 생겼었어요.
성격도 밝아진 것 같았구요.
하지만 얼마 안 돼서 다시 좌절을 겪었어요.
제가 예전에 대학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환상을 가진 것처럼,
이번엔 이직이 만능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지금 제 부장님은 저를 별로 마음에 안 내켜 하세요.
부장님은 굉장히 액티브한 사람인데
저는 정반대거든요. 그래서 힘든데
사실 제가 봐도 제가 일을 못해요.
결국은 제 성격 문제인데 30년동안 누적된
단점을 고치기가 힘드네요.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내가 주도하여, 사교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살라는 말.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에너지가 나오질 않아요.
성격이라는 게 공부같이 외워버려서 바꿀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부질없지만 온전히 날려버린 제 20대가 회한으로 다가오네요.

이직하면서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생활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위축되면서
다시 예전의 어두운 자신으로 복귀한 것 같아요.
사실 내가 그동안 변한게 별로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서럽기도 하구요.

부장이 갈구는 거 그냥 넘겨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죠?
저도 알아요. 하지만 감정적으로 그렇게 안 되는 걸 어떡하나요?
제 중심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가타부타 해도 흔들리지 않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나를 인정해 주는 것에 목말라 한다는 건
그렇습니다......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이죠.
그동안 이직 성공에 취해서 의식적으로는 몰랐지만,
무의식의 수준에서 제 어두운 성격은 별로 변하지
않은 거에요.

힘이 쭉 빠지더라구요.
어두운 과거를 끊고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과거는 제 성격에 각인되어 있어서 제 발목을 잡고 닜어요.
이걸 한번에 끊어버려고 생각한게 순진한 거겠지만요.

한 때는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저같아도 컴플렉스에 묶인
이런 사람과 결혼하기는 싫으니까요.
저 자신의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관계의 상대방의 마음에도 상처를 주는 거니까요.

제 억눌린 마음이 풀려야
일이든 삶이든 바람직하게
꾸려나갈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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