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게시물 중 하나는, 남녀의 언어적 차이에 대한 것입니다. 
대체로 남자의 말은 직설적이고 함의하고 있는 바가 없으며, 여성의 것은 좀더 은유적이고 심지어 반어적이며 복잡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하지만 왜 여자들은 서로에게 칭찬을 하거나 맘에도 없는 말을 할까요?

여성학&정치학 전공자인 레이철 시먼스가 저술한< 소녀들의 심리학>은,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따돌림을 견뎌냈던 경험을 떠올리며, 1년이 넘는 시간동안 10개 학교와 작업한 것을 이 책으로 펴냈습니다. 
따돌림의 주축에 서 있는 소녀들은, 왜 다른 소녀들을 괴롭히는걸까요? 

 

 

 


"소녀들의 경우, 공격의 사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공격의 부재다.

소녀들은 공격을 표출할 올바른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표출하지 않는 법을 배울 뿐이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교실을 몇번 관찰하기만 해도, 이들의 갈등 해결 방식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똑같은 갈등이 생겨도 이들은 성별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태도에 따라 각자 다르게 반응하죠.
 

일반적으로 우리의 문화는 소녀들이 갈등을 공개하는 것을 가로막고, 공격의 형태도 비육체적이고 간접적이며 은밀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회는 여성들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이를 '기가 세거나,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억압하고

자신의 장점을 겸손으로 포장하지 않으면, '자기 혼자 잘난 줄 아는 재수덩어리'라고 구분짓습니다.

우리의 책과 영화에서 '착한 소녀'는 모두와 두루 친하게 지내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따뜻함이나 미소 같은 양육자로서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시선은 소녀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줍니다.
 
때문에 여학생들의 문화는 결코 갈등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요.

소녀들은 뒤에서 흉보기, 따돌리기, 소문내기, 욕하기. 조종하기 등을 통해 표적으로 삼은 대상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줍니다.

이들은 주먹이나 칼 대신 몸짓언어나 관계를 이용해 싸웁니다. 우정은 무기가 되며, 주먹다짐 대신 끝없는 침묵과 소외가 시작됩니다.
이유를 물어도 '화나지 않았어', '아무 문제 없어'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난다거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교사나 연구자들의 관심에서도 소외되어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감정을 마음껏 꺼내놓을 수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확신할 수도 없기에 인기가 있는 아이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모두에게 교실은 지뢰밭과 같죠.
 

게다가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하며(쌩얼도 화장한 모습도 예뻐야 함), 자신의 장점은 정치적으로 잘 포장해야 하죠.
'아냐 이건 별거 아닌걸, 네 --가 훨씬 부러워'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미움을 사고 맙니다.
 
여자들의 뒷말은 남자들의 육체적인 폭력보다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데 훨씬 탁월한 방법입니다. 
주로 대상에 대한 흠집내기는 그녀가 ‘걸레’며,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이 여성이 좋은 양육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공식적이고, 확인된 사실로 만들어 버립니다.
즉, 적이 성공적인 짝짓기를 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죠.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몇 대 때리고 꼬집어서 멍자국 좀 남기느니 이것이 훨씬 더 어마어마한 복수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현상은 '여자들은 믿을 수 없고 교묘하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오히려 편하다' 생각을 가져오고,
성인이 된 뒤에도, 마음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문화에서 성장한 여성들은 직장 생활에서도 개인적인 관계에 초점을 잘못 맞추게 됩니다.

게다가 강한 리더의 자질들은 반감을 일으키는 소녀의 특성과 같았습니다.

(똑똑하다, 고집이 세다, 요구적이다. 전문적이다. 진지하다. 강인하다. 독립적이다. 자기중심적이다. 거리낌이 없다. 예술적 조예가 깊은 척한다 등)

여자들은 동료나 상사에게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이를 대인 갈등의 신호로 해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아니'라는 대답이 예상되는 질문은 피하고,

그런 대답은 '상사들과의 관계가 실패한 표시'로 여기죠.
 
많은 여자들이 실제로 아는 만큼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상황, 즉 허세를 부리는 상황을 두려워하므로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습니다.
남성에게 자신감은 미덕이지만,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아이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소녀들처럼
여성 직장인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로 비칠까봐 두려워합니다.
 
또한 '데이트 신청을 받기를, 수업에서 지명되기를' 기다리는 소녀들은 성장해서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는 사람보다 거기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기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행동과 말이 아닌, '단서'를 통해서만 친구들과 의사소통 하는 소녀들은 훗날 어른이 되어

그들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고 상사가 알아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여자가 되어버려요.
 
 

 

소녀들이 자기주장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거나 전혀 배우지 않는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그정도 힘밖에 발휘하지 못합니다.

리더 대신 조력자가 되고, 무대 중심 보다는 무대 뒤에서 일하게 되죠. 사장이나 회장이 되기보다, 부사장이나 부회장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신감 있고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싸울 줄 아는 여자는

종종 '남자답다' '독하다' '냉정하다' 여자가 아니다' '공격적이다' 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애써온 소녀들이 미래에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책에서는 가장 후반부에 부모와 아이자신, 교육계에 가이드를 제시해요.
부모를 위한 조언에서 몇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아이들에게 내 아이와 친하게 지내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
아이에게 '인기 없는 아이'라고 실망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방관하지 말라는 것
(사례에서 본 가장 최악의 태도는, '기도하면 나아질거다.  이 모든 시련도 나중엔 하나님이 좋게 사용하실거야'라고 말한 부모-_-;;)
그리고 학교에 분노한 상태로 전화하거나, 따돌림을 주요 화제로 삼아 찾아가선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소녀들에게 '모든 사람과 친절하게 지내라'고 말하는 것은 '친절하고 상냥함의 폭압을 강요'하는 꼴입니다.
여자아이를 '착하고 얌전한' 틀에 끼워놓는다면,  갈등을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힌트에 의존해 인간관계를 맺는 소녀들과 그렇게 성장한 여성들이 사라지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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