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보광동), 헬카페 로스터즈

2013.03.14 11:31

beirut 조회 수:4679

좋은 카페의 3요소는 뭘까요. 스페셜티 생두, 간지나는 로스터기, 수상경력 화려한 바리스타. 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카페의 요소는 안정적인 부동산, 개념있는 사장, 한 잔에 최선을 다하는 바리스타입니다. 커피 드링커 8년차의 소견이네요.

한 잔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바리스타는 개념없는 사장님 덕분에 맛없는 원두를 살리느라 정신없고, 근로기준법은 깡그리 무시당한채 착취당합니다. 좋은 사장님 밑에는 거만한 바리스타가 앉아있어 손님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죠. 기껏 개념사장과 바리스타가 카페를 열면 재개발이라고 쫓겨나기 일쑤입니다. 카페 해먹기 참 힘든 나라입니다.

헬카페는 이 3요소가 잘 어우러져 탄생한 카페입니다. 두 젊은 사장은 각각 홍대와 종로에서 수많은 팬을 양성했던 개성넘치는 바리스타입니다. 이태원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혹은 안정적으로)자리잡은 카페에는 몬테베르디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커피는 스스로 부끄럼이 없습니다.

헬카페 옆에는 폴리텍대학앞 왕돈까스 학과와 토스트집이 있습니다. 밥은 굶고 가셔도 걱정 없습니다.

 

지옥의 문을 엽니다.

두 주인장이 사나운 얼굴로 맞이합니다.

곰다방 출신의 통돌이 장인 권요섭 바리스타는 브루잉과 로스팅을 담당합니다. 곰다방때 쓰던 유키와 포트 그리고 유니온 샘플로스터를 들고 이태원에 왔습니다.

제가 처음 본 WBC국가대표 선발전이었습니다. 일전에 소개한 커피템플의 김사홍 바리스타와 한 무대에 섰던 바리스타죠. 그 대회에서 김사홍 바리스타는 2위 그리고 헬카페의 임성은 바리스타는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인상깊은 시연을 펼쳤던 두 바리스타의 카페에 이제서야 발을 들여봅니다. 임성은 바리스타는 뎀셀브즈에서 오랬동안 근무하기도 했었죠. 탬퍼만 들고 보광동으로 왔네요.

 

주변 물가에 비하면 조금 비싸다는 평도 있네요. 하지만 생두의 퀄리티등을 생각했을때 비싼 가격은 아닙니다. 테이크아웃 할인이 2천원이나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당근쥬스와 티라미스는 헬카페에서 직접 만든 메뉴입니다. 일단 커피를 마시러왔으니 다른 메뉴는 쿨하게 무시하고 에스프레소와 드립커피를 주문합니다.

엘살바도르 놈브레. 2차 팝핑을 넘긴 원두를 보기 힘든 요즘, 강한 인상을 남긴 놈브레였습니다. 좋은생두 뭣하러 강배전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2차를 넘긴 중강배전커피의 중후한 바디감과 달달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그런 얘길 못하죠.

 

에스프레소 블렌드는 당분간 매드커피의 라임바리스타가 공급합니다. 조만간 헬카페만의 에스프레소 블렌드가 탄생한다니 기대하셔도 좋을것 같네요.

  

두 잔을 마시고 가게를 둘러봅니다. 시네소머신과 로버 수동 그라인더가 눈에 띕니다.

 

시네소 2그룹입니다. 냉수와 온수 유입조절이 가능합니다. 그 외에도 섬세한 기능들이 많죠. 기회가 되면 저는 바리스타에게 머신에 대해 물어봅니다. 이 머신은 왜 선택했는지,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떻게 쓰고있는지. 좋은 바리스타라면 머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습니다.

 

자동그라인더라고 다 좋지는 않습니다. 타이머에 맞춰 일정한 시간만큼 그라인딩을 해주는 자동그라인더는 종종 편차가 심한 커피를 만들어주죠. 임성은 바리스타는 그날의 원두 상태와 머신 컨디션을 생각해 그라인딩을 하고자 합니다. 고집스럽게 수동 그라인더를 가져다놓은 이유가 있죠.

 

실제 로스팅에 쓰이는 샘플로스터는 밀폐형 유니온 샘플로스터. 드립포트도 굵은 물줄기로 유명한 유키와가 쓰입니다. 선반위에 놓여진 타공형 유니온과 동드립포트는 디스플레이용. 하지만 종종 쓰기도 합니다.

조만간 단테의 신곡을 이곳에서 완독하려 합니다. 정말 지옥이 있습니다. 커피지옥, 헬커피에선 지옥보다 더 깊은 커피맛을 느낄수 있습니다.

 

두 사장은 사이좋게 브롬톤을 타고 출근합니다.

엘피를 틀어주는 몇 안되는 카페죠.

이어서 마신 에스프레소. 상큼한 오렌지에 풍부한 과일향이 느껴집니다. 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약중의 바디감도 있었구요.

요플레의 시큼달달함이 느껴지는 카푸치노 한 잔입니다. 포도맛도 조금 나는것 같네요. 여운이 잔잔하게 이어지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습니다.

커피를 충전하고 다시 카페를 둘러봅니다.

권요섭 바리스타의 팬이 그려준 그림.

곧 있으면 싱글몰트 위스키도 공식판매에 나섭니다.

 

리브레에서도 헬카페의 오픈을 축하합니다. 엘살바도르 엘 아우솔이네요. 곧 통돌이로 볶은 엘 아우솔을 맛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안철수도 헬카페의 오픈을 축하합니다.

브라우니 이에 질세라.

 

헬카페 한정 원두 패키지. 200g보다 인심 후하게 조금 더 담아 12000원.

 

이곳 스피커는 유난히 여성보컬의 목소리를 잘 뽑아줍니다. 몇번이고 들었던 엘피판입니다. 헬카페의 또 다른 장점은 음악. 바로크 이전의 고전음악부터 심수봉까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감동의 플레이리스트가 있습니다.

이곳의 당근주스는 정말 당근만 들어갑니다. 놀랍게도 너무나 달고 은은하죠. 빈속에 헬카페에 들어섰다면, 당근주스 한 잔 들이키고 커피 마시는걸 권유합니다. 든든한 속 달램에 안성맞춤입니다.

종종 영업중에 콩을 볶기도 하는 권요섭 바리스타. 매장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새벽내내 콩을 볶았던, 곰다방때의 경험은 그의 자산입니다. 통돌이 로스팅은 변수가 많습니다. 변수들을 컨트롤 하는것도 대형 기계 로스터와는 차원이 다르게 힘들죠. 생두의 상태는 고스란히 로스터의 손에 전해집니다. 로스터는 감각적으로 그걸 느껴가며 콩을 볶죠.

 

임성은 바리스타는 권선생이 볶은 콩들에서 못난놈들을 골라내는 핸드픽 작업을 합니다. 고된 노동이죠. 때마침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잊었던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쪼그려 핸드픽 하는 저 분은 이 카페의 에스프레소를 담당하는 임성은 바리스타입니다.

 

조금씩 따라서 다 마셔보고 싶습니다. 어떤 잔에 마시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제 혀가 정신을 못차린 탓이겠죠.

 

오늘 볶은 콩들입니다. 애타게 손님들을 기다리는 모습이네요.

페마의 변천사를 담은 책.

밥 같은 커피, 커피 같은 밥. 지옥같은, 끝을 모르는 아름다운 맛의 향연입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커머셜 만델링의 깊은 맛을 느끼며 카페를 나섰습니다. 마지막 잔은 남달랐습니다. 곰다방의 향수가 느껴집니다. 쌉사름뒤에 달려오는 신맛 2차 크랙까지 몰고간 다양한 얼굴의 만델린은, 이곳에서만 맛볼수 있습니다.

쿠엔틴타란티노의 영화가 인생의 영화가 될 순 없죠. 하지만 매력있고 강렬한, 한 편의 좋은 영화인건 분명합니다. 곰다방은 저에게 인생의 커피를 내려줬습니다. 그리고 헬 커피는 쿠엔틴타란티노의 영화같은 강렬한, 훌륭한 커피 한 잔을 선사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이곳의 커피를 찾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 곳에서 인생의 커피를 맛 볼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만간 '밥->커피' 베스트 코스에 대한 포스팅을 진행하겠습니다. 헬카페 옆에는 쫄깃쫄깃한 꿔바로우와 양고기 꼬치가 빈 속을 달래줍니다. 헬카페의 커피와 훌륭한 마리아주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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