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남의 말을 잘 듣는 일

2013.03.18 19:11

물긷는달 조회 수:2239

0.

 

한동안 댓글만 쓰다가 짧게나마 글을 쓰려니 매우 어색하네요.

익숙하게 의미없는 번호를 붙이는 사소한 행동이

조금 마음을 풀어줄런지.

 

1.

 

남의 말을 잘 듣는 일이란

 

편협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가려 있는지 알고

근거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빠져 있는지 알고

남을 망하게 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얼마나 정도에서 벗어난 것인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하였는데 저는 어째서 이리도 그릇이 작은 지 모르겠습니다.

 

넘실대는 말을 넘어 이면을 보려는 노력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고

상대가 무엇에 가려 있는지, 어떤 궁지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어도

제 그릇으로 감당할수도 도와줄수도 없는 상황이니 다 무슨 소용이랴 싶고.

 

평소에 그다지 친절하거나 남에 대해 관심이나 애정이 깊은 편이 아니라서

피로해질줄 알고 애초에 선을 넘지 않으려했는데 주위에서 그 사람에 대해 의견을 구하니

'내가 그의 말을 잘 들었는가' 하는 문제에서 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네요.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담을 수 없으니 잘 듣는 것부터 해야겠는데.

 

이래서 남 말 진지하게 하는 걸 안좋아하는데 말이죠.

조직의 일은 세속의 일이라고 주장해 봅니다만,

그래도 사람쓰는 일에는 가능한 한 잘 들어보는 것이 우선이라

그 노력을 멈추게 할 당위를 주장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고민스럽습니다.

 

조직의 여력이 없다 라는 걸 더 마이너스가 될 벽에 부딪히기 전에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도 '잘 들으려는 노력, 잘 듣는 힘'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우선은 듣고 싶은대로 듣지 않는 일만도 자유롭지 못합니다만,

같은 사람을 보아도 많이 다르게 보여요. 아직도 한참 부족하겠지만..

누구도 너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미운 마음도 사라집니다.

 

듀게에서도 온라인이라고 몇 줄 내뱉은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드네요.  

 

역시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보고계시다면,

잘 듣지 못하고 잘 말하지못해 죄송하다는 인사 전합니다.

 

 

 

 

2.

 

요즘은 꿈에 매일 매일 주변 사람들이 나와

저에게 소리를 치고 뭔가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화를 냅니다.

 

꿈인 줄도 알고 달래보거나 구슬러도 봅니다만

사람이 바뀌어가며 매일 그러네요.

 

최근 갑자기 그 동안 남들에게 했던 모든 잘못했던 일

큰 일 작은 일 내가 기억하는 일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떠오르거나 마음이 쓰여서 가뜩이나 속이 시끄러운데

무의식중에 그런게 반영이 되는 것인지.

 

그런데 또 곰곰 생각해보면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을 일들인데

혼자 엄청나게 부끄러워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십년씩 된 일까지 갑자기 떠올라 창피해지는데 그 빈도가 너무 잦아요.

 

 

3.

 

제 결론은

작은 사람이 속도 빈 주제에 시끄럽게 살아 그 댓가가 나타나나보다..라는 정도입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오는 동안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깨지고 모나고 금간 조각들이

그나마 제 생에서 역사의 일부로라도 의미를 갖게 하려면-저에게만 소용되는 일이겠지만-

어떻게든 힘을 채워 큰 그릇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일이 남았으니 오늘 반성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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